국제무역은 그것이 진행되는 경위와 장소에 따라 사행무역(使行貿易)과 국경무역(國境貿易)으로 구분되며 그것은 다시 공무역과 사무역으로 나누어진다. 사행무역은 동짓달에 중국 연경으로 사절이 가고 올 때 이루어지던 무역이다. 이때 은, 종이, 수달피 등의 가죽류, 가는새 명주와 모시, 무늬놓은 자리, 검, 각종 수산물, 은행씨 잣, 곶감 등이 수출되었고 채색비단, 말안장, 책등이 수입되었다.
18세기 와서는 공무역보다 개별적인 상인들에 의해 진행되는 사무역이 더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되었다 예를 들면 사신 일행이 10만 냥어치의 물품을 가지고 갔다면 그 중에 6만 냥어치는 상인들의 품목이었다.
조선시대에 이루어진 국경무역은 크게 5가지로 나누어지는데 첫째가 중강개시(中江開市)이다. 1593년 국내의 기근을 타개하기 위해 의주 부근에 있는 압록강 안의 섬인 중강에 시를 열고 교역을 허락하면서 공식화 되었다. 당시 우리나라에서는 무명 한 필 값이 곡식으로 한 말도 되지 않았는데 이를 중강에서 팔면 쌀 20여 말을 얻었으므로 이전부터 이 일대에는 교역을 통해 큰 이득을 얻는 자들이 많았다. 두번째는 중강후시(中江後市)다. 중강개시에서의 공매매 뒤로 사상들의 교역이 있었는데 이를 중강후시라 한다. 이것은 숙종26년(1770)에 없어졌다. 세번째는 책문후시(柵門後市)이다. 사신 일행이 책문 즉 국경 문을 출입할 때 난두(欄頭)라고 하여 중국 북경을 방문하는 연행사 일행의 물자를 도맡아 대던 의주상인과 개성상인이 이들을 먼저 나가게 한 후 그 뒤에서 사사로이 매매하고 돌아왔는데 이를 막기 위해 단련사(團練使)라는 감독관을 딸려보냈는데 단련사가 도리어 상인들과 짜고 후시를 한다고 하여 \'단련사후시\'란 말도 생겼다 단련사후시는 그 폐단이 심하다고 하여 1729년에 정부에 의해 금지되었으며 책문후시도 한때 중단된 적이 있다.
네번째는 북관개시(北關開市)다. 태종6년(1406)부터 경성과 경원에 여진과의 무역소를 개설하였다. 그러나 청대 이후에는 중강후시와 책문후시의 영향을 받아 인조16년(1638)에 회령과 경원을 무역소로 삼고 회령에서는 매년 10월 이후에 개시하였고 경원에서는 격년으로 1회 개시하였다. 공시에 이어 사시가 허용되었는데 처음에는 수일 동안 이루어졌으나 이후 이것이 번창함에 따라 사사로운 밀무역이 80~90일까지나 계속되었다. 조선에서는 소, 가마솥, 소금 등을 수출하였고 모피나 청포 등을 수입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