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에 만약(If…)이 없다는 것은 만고불변의 진리다. 후세 사람들은 이랬었다면... 저랬었다면... 등 하는 이야기를 술안주 삼고는 하지만, 그 이야기들이 별다른 의미를 갖지 못한다는 것 쯤은 알고 있다.
하지만 현실이 지루한 사람들에게 흥미로운 망상거리를 제공하는 것 역시 ‘만약...’이란 소재가 아닐까.
그래서 오늘은 이 이야기를 할까 한다. ‘만약, 그때 소련이 홋카이도 북부를 점령했더라면?’
소련과 일본의 합의
‘지구상에서 공산주의를 절멸시키겠다!’는 아돌프 히틀러(A. Hitler)의 야망은 ‘바르바로사 작전(Operation Barbarosas)’으로 시행됐다. 연전연패를 거듭하며 국가 존망의 위기에 선 소련은 ‘모스크바 공방전’에서 독일군을 패퇴시키며 간신히 한 숨을 돌리고, ‘스탈린그라드 전투’와 ‘쿠르스트 전차전’에서 독일에 큰 타격을 입히며 전황을 반전시킨다. 이후 ‘바그라티온 작전(Operation Bagration)’으로 대공세를 펼치며 독일에 빼앗긴 땅을 수복하는 한편, 나치 독일의 심장부, 베를린을 향해 칼 끝을 겨눈다.
이 와중 연합군은 ‘노르망디 상륙작전(Operation Overlord)’을 성공시키며 제 2전선을 만들게 된다. 독일은 동쪽의 소련군과 서쪽의 연합군을 동시에 상대해야 하는 양면전쟁에 몰리게 된다. 이때 독일의 운명이 결정된 셈이다.
한편으로 소련은 서쪽에서 진격해온 독일군을 상대하면서도 뒷통수가 간지러울 수밖에 없었다. 그 이유는 일본이 만주에 주둔시킨 관동군 때문이었다. 일본군 중에서 가장 정예부대로 꼽히던 관동군의 존재는 소련으로서는 여간 신경쓰이는 일이 아니었다. 실제로 히틀러는 독일이 소련과의 전면전에 돌입할 경우, 일본이 그 똥꾸멍을 찔러주기를 기대한다는 의향을 몇 차례 일본 측에 전달하기도 했다. 일본이 히틀러의 바람대로 만주의 관동군을 진격시켰더라면, 소련으로서는 두 개의 전선을 운용하게 돼 대단히 불리한 상황에 빠졌을 것이다.
그러나 일본에 파견한 스파이 리하르트 조르게(Richard Sorge)의 첩보에 따라 일본이 대소전쟁에 나서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한 소련은 독일과의 전쟁에 전력을 집중할 수 있었다. 실제로 소련보다는 태평양에 더 관심이 많았던 일본은(그리고 할힌골 전투에서 한 번 데여보기도 했던) 독일이랑 소련이 지지고볶던 뭐하던 관심을 끊고 태평양 전쟁을 발발한다. 히틀러로서는 속 터지는 노릇이었겠지만, 독일이 ‘게르마니아’란 야망을 실현하는 것처럼 일본 역시 ‘대동아공영권’을 확장하는 것이 궁극적 목적이었기 때문에 양자의 이해관계가 일치하지 않는 것은 당연했다.
사실, 독일이 소련과의 전쟁에 나서기 이전에 일본과 소련은 ‘일소중립조약’을 맺어 상대국과 제 3국과의 전쟁에 개입하지 않기로 합의한 상태였다. 물론 서로서로 뒷통수를 치는게 미덕인 전시상황에서는 이런 조약 같은건 한 순간에 휴지조각으로 만들어 버릴 수도 있다. 실제로 일본군내 일부에서는 독일군이 모스크바로 진격하는 동안 관동군을 움직여 소련의 뒤꽁무니를 털어야 한다는 의견이 제시되기도 했다. 앞서 설명한 것처럼 실행되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보면 알겠지만 일본은 소련에 똥침을 놓기 매우 좋은 위치를 갖고 있다
일본을 향한 스탈린의 야욕
어찌됐건 전쟁 중반부를 넘어서서 독일도, 일본도 패망에 점점 가까워져갔고, 이에 연합국과 소련은 전후처리를 논의하기 위해 모여들게 된다. 1942년 2월 4일, 얄타에서 미국의 프랭클린 D. 루스벨트(Franklin Delano Roosevelt) 대통령, 영궁의 윈스턴 처칠(Winston Churchill) 수상 그리고 소련의 이오시프 스탈린(Joseph Stalin) 서기장이 모이게 된다. 이 얄타회담은 종전 이후 패전국 처리와 더불어 세계의 국제질서를 어떤 방향으로 확립할 것인가를 결정한 중요한 사건이다.
이 회담에서 결정된 중요한 사안은 바로 독일의 분할, 그리고 소련의 대일본전 참전이다. 눈 앞의 독일을 상대하느라 일본에는 큰 관심을 주지 않고 있었지만, 사실 스탈린은 이번 전쟁을 통해 최대한 많은 이득을 취하겠다는 야망을 가지고 있었다. 동북아로의 세력 확장은 태평양에서부터 영향력을 뻗쳐오는 미 자본주의 진영을 견제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일이었다. 추축국인 일본을 공격할 수 있는 명분은 충분했다. 스탈린은 독일이 정리되고 나면 소련이 일본을 공격할 수 있다는 의사를 전달한다.
스탈린의 이러한 야망을 알고 있던 처칠은(극렬 반공주의자이기도 했다) 당연히 불쾌하게 생각했겠지만, 루스벨트는 스탈린의 이러한 계획을 환영했다. 어떻게든 전쟁을 빨리 끝내야 한다고 생각하던 루스벨트는 소련이 연합국의 부담을 덜어주는 것을 긍정적으로 여겼다. 스탈린을 한 술 더 떠 카라후토(사할린 섬 남부)와 치시마 제도(쿠릴 열도)를 소련이 가져가겠다는 의사를 전달했다. 사할린 섬은 러일전쟁 이후 일본이 승전국 자격으로 남부 절반을 점유한 상태였고, 쿠릴 열도 역시 과거 양국(일본과 러시아)의 조약에 의해 일본령이 돼 있던 상태였다.
그런데 스탈린과 루스벨트 사이에 은밀하게 언급된 내용이 또 하나 있다. 바로 홋카이도를 분할, 북부를 소련의 관할로 한다는 것이었다. 스탈린이 제시한 내용은 쿠시로(釧路)와 루모이(留萌) 사이에 선을 긋고, 그 북부를 소련이 차지한다는 것이었다. 이렇게 되면 삿포로, 오타루, 하코다테 등 주요 도시는 미국에게 떨어지기 때문에 미국으로서는 크게 손해보지 않는 조건이라고도 할 수 있다. 다만 더 크게 보았을 경우, 소련의 차지가 된 홋카이도 북부는 동북아 전체를 겨냥하는 공산주의의 칼 끝이 될 수도 있기 때문에 마냥 좋게 볼 수만은 없다.
빗금 친 지역이 스탈린이 요구한 지역. 키타미 시를 포함하고 있다
루스벨트가 여기까지 동의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스탈린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기 위해 대놓고 부정적으로 대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만큼 루스벨트는 전쟁을 빨리 끝내고 싶어하고 있었고, 소련의 대일전쟁 참여를 매우 원하고 있었다. 이날 회담에서는 독일 패망 후 3개월 후에 소련이 일본을 공격하기로 합의가 이뤄진다.
그런데 ‘홋카이도 점령’을 계획하고 있던 스탈린에게 한 가지 악재가 발생한다. 대소유화정책을 펴던 루스벨트가 갑자기 사망한 것이다.(원래부터 건강이 별로 안 좋았다.) 급사한 루스벨트의 뒤를 이어 당시 부통령이던 해리 S. 트루먼(Harry S. Truman)이 대통령이 되었다. 그리고 잘 알려져있다시피 트루먼은 공산주의를 매우 혐오하는 사람이며 소련의 동북아 영향력 확대 계획에 진저리를 치던 사람이다. 아마 루스벨트가 더 오래 살았더라면 홋카이도의 운명이 바뀌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 이 빨갱이 새끼들아"
몰락작전(Operation Downfall)
1945년 5월 9일, 독일이 결국 연합국에 항복한다. 인류 역사상 최악의 악마 아돌프 히틀러는 자살로 생을 마감하고 나치 독일은 패망했다. ‘민족’을 구심점으로 전 유럽 정복을 이룬다는 ‘게르마니아’의 꿈은 산산이 부서졌다. 전범들은 뉘른베르크 재판정에서 차례차례 죄의 대가를 선고받았고, 한때 흑해 연안에서 북해, 대서양까지 광활한 땅을 정복했던 독일은 둘로 쪼개져 각각 연합국과 소련의 통치를 받게 됐다.
이제 남은 것은 일본이었다. 독일의 항복 후에도 일본은 ‘결사 항전’을 외치며 항복을 거부하고 있었다. 일본이 끝까지 항복 의사를 밝히지 않자, 미 수뇌부는 ‘몰락작전’을 계획한다. 바로 일본본토진공계획이다. 이 계획이 실행되었더라면 연합군과 일본군, 그리고 민간인들의 엄청난 희생은 피할 수 없었을 것이라는 예견이 지배적이다. 당시 일본은 자원난과 식량난으로 제대로 된 전쟁을 수행할 수 없는 상태였다. 일본 본토에서 연합군과 일본군의 전쟁이 발생한다면 상상을 초월한 피해가 발생했을 것이라는 의견이다. 또한 작전을 주도한 연합군측 피해 역시 굉장히 컸을 것으로 예상된다.
사실, 루스벨트는 전후 일본을 미국, 영국, 소련, 중국의 4개국이 분할해 통치할 계획을 세워두고 있었다. 이 안에 따르면 홋카이도 전체는 물론 도후쿠 지방까지 모두 소련의 관할이 된다. 소련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길가다가 돈다발을 줍는 셈이었다. 몰락작전이 예정대로 실행되었더라면 루스벨트의 이 계획대로 일본의 분단이 일어났을 가능성이 있다. 스탈린의 야망이 현실이 되는 것. 물론 이미 루스벨트가 사망한 이후이기 때문에 스탈린의 생각대로만 되지는 않았겠지만 이미 얄타회담에서 대일전쟁을 천명한 소련은 얼마든지 일본본토점령전에 개입할 명분이 있었다. 이렇게 되면 트루먼은 내키지 않더라도 어쩔 수 없이 소련에 ‘전리품’을 안겨줄 수밖에 없으며 그 전리품은 홋카이도가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붉은색은 소련, 푸른색은 미국, 초록색은 영국, 노란색은 중국이 점령하기로 계획된 곳. 소련은 그야말로 차려진 밥상에 숟가락 얹은 셈이다
그러나 소련으로서는 아쉬운 일이겠지만 몰락작전은 실행되지 않았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투하되고, 8월 15일 히로히토 천황이 무조건 항복을 선언한 것.
8월 6일과 9일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각각 원자폭탄이 투하된 직후, 소련군도 관동군을 향해 진격을 시작한다. 이른바 ‘만주작전’이다. 독일이 항복한 후 정확히 3개월이 지난 시점이다. 이미 4월에 소련은 ‘소일중립조약 연장을 거부한다’는 메시지를 보낸 바 있다. 껍데기만 남은 관동군은 소련군의 공격에 차례차례 무너지며 일본은 동북아에서의 영향력도 완전히 상실했다. 일본의 항복 이전에 최대한 많은 지역을 차지하려는 것이 스탈린의 욕심이었을까? 일본의 항복이 더 늦었더라면 소련군은 한반도 전역까지 들어왔을 가능성이 있다.(ㄷㄷㄷ)
만주작전과 원폭투하라는 타격을 입은 일본은 패전국이 됐다. 그리고 이 시점에서부터 이제 세계의 중심으로 떠오른 두 초강대국, 미국과 소련의 기싸움이 시작된다.
홋카이도의 운명은 어떻게?
흔히 8월 15일 일본의 항복 이후 2차대전의 모든 전투가 종결된 것으로 알고 있지만, 항복 선언 후에도 치러진 전투가 또 있다. 바로 소련의 쿠릴열도 점령전. 얄타 회담에서 스탈린과 루스벨트의 밀약 내용(홋카이도 절반과 쿠릴열도, 남사할린의 소련 점유)을 알지 못했던 미 합동참모본부가 쿠릴열도 북쪽은 소련이, 남쪽은 미국이 점령한다는 안을 소련에 제시했던 것이다.(알았어도 들어주지 않았을 게 뻔하지만)
분노한 스탈린은 극동군에게 쿠릴열도와 어불어 홋카이도 북부를 무력으로 점령하라는 명령을 내렸고, 소련 극동군은 캄차카반도에서 가장 가까운 섬(쿠릴열도에서 가장 북쪽에 있는) 슘슈섬을 시작으로 쿠릴열도의 섬들을 차례차례 점령해가며 남하했다.
"서기장 동무는 왜 그렇게 홋카이도에 집착하는 거요?"
"시로이 코이비토가 맛있다고!"(실제로 단 것을 매우 좋아했다고 함)
쿠릴열도에 진주해 있던 일본군 소련군을 맞아 피터지게 싸웠지만 애초에 패전국이 이길 수 있는 전투가 아니었고 쿠릴열도는 모두 소련의 손아귀에 들어가게 된다. 이후 현재까지 쿠릴열도 중 '북방 4도’는 일본과 러시아의 영토분쟁 지역이 돼 있다.
캄차카 반도에서 홋카이도를 연결하는 쿠릴 열도. 붉은 점선 안의 섬들이 일본이 러시아로부터 반환을 요구하는 지역이다
다만 소련의 가장 큰 목표였던 ‘홋카이도 북부 점령’만은 이루지 못했다. 쿠릴열도 최남단이며 홋카이도와 매우 인접해있는 시코탄과 하보마이까지 점령한 소련군은 홋카이도에 만큼은 상륙하지 못했다.
점령군 사령관이자 공산주의라면 치를 떠는 더글러스 맥아더(Douglas McArthur)가 ‘소련군이 홋카이도에 상륙하면 미국에 대한 선전포고로 간주할 것’이라고 으름장을 놓은 것이다. 맥아더의 이 으름장 덕분에 홋카이도는 소련의 손아귀에 넘어가지 않았다. 다만 연합국 사령부는 홋카이도를 제외한 쿠릴열도를 소련이 점령한 것에 대해선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는데 ‘쿠릴열도를 소련에 넘겨주는 대신 홋카이도를 지키자’고 결정한 것으로 보인다.
"홋카이도에 상륙하면 너희를 모두 찾을 것이다. 찾아서 죽일 것이다."
스탈린은 종전 직후인 8월 16일부터 9월 2일에 걸쳐 미국 측에 홋카이도의 북쪽 절반 점유(위에서 언급한 쿠슈로와 네무로 연장선 이북)를 인정해달라고 여러 차례 이야기했지만 루스벨트와는 달리 소련을 그닥 좋게 여기지 않는 트루먼은 이를 묵살했다. 사실 일본과의 전쟁에서 홀로 대부분의 역할을 수행한 미국 입장에서 소련이 홋카이도를 먹겠다는 것은 날강도짓이나 다름 없었다. 미국 입장에서는 몰락작전이 실행되기 전에 일본이 항복한 것이 매우 다행스런 일이었던 셈이다.
홋카이도를 소련에 넘기지 않은 덕분에 일본열도는 공산주의의 태평양 진출을 막는 방어막 역할을 할 수 있었고, 대신 공산진영과 자본진영의 직접적인 대립(과 충돌)이 일어나는 지역은 한반도가 되었다.
"홋카이도를 지키는 대신 한반도를 반으로 뚝 잘라서 북쪽을 소련놈들한테 줘버려"
"그런데 거기서 전쟁이 나면 어떡하죠?"
"전쟁은 무슨 놈의 전쟁."
만일 몰락작전이 실행됐다면, 루스벨트가 좀 오래 살았었다면, 맥아더가 홋카이도에 상륙하겠다는 스탈린의 계획을 손 놓고 보고 있었더라면, 홋카이도 북부는 아마 소련의 영토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쿠슈로-루모이 라인을 보면 알겠지만, 이 라인 북쪽 지역은 키타미(北見) 시를 포함하고 있다. 소련이 이 지역을 점령했더라면, 여기선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소련이 동독을 위시한 동구권에 자행한 사례를 통해 대강 유추해보자면, 홋카이도에는 친소괴뢰정부가 세워졌을 가능성이 높다. 홋카이도 주민들은 고려인들에게 그랬던 것처럼 다른 지역으로 강제이주시키거나 2등 국민으로 지위를 격하시켜 차별대우를 했을 것으로 예상된다. 냉전에서도 패배하고 서방국가들에 비해 경제적으로 큰 발전을 이루지 못한 소련의 사례를 보면 이 지역 역시 낙후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물론 계속해서 소련 땅으로 남지는 않았을 것이다. 1991년 12월(삿쨩 생후 7개월) 소련의 해체와 함께 이 지역도 소련으로부터 떨어져 나오게 되지 않았을까? 물론 러시아가 이곳만은 해체시키지 않고 그대로 자국내 영토로 눌러 앉혔을 가능성도 있다. 이 경우엔 체첸처럼 분리독립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져 분쟁지역이 돼 버렸을 수도 있다.
혹은 소련 해체 후, 하나의 독립국가가 되어 러시아도, 일본도 아닌 신생국이 되었을 수도 있다.
혹은,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모습대로 해체 후 다시 일본에 편입 되었을 수도 있다.
어쩌면 우리는 평창올림픽에서 JAPAN이 아닌 OAR의 유니폼을 입은, 그도 아니면 ‘홋카이도 무슨 무슨 나라’ 유니폼을 입은 삿쨩을 보게 되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아니면 아예 못 보던지)
이 미소를 볼 수 없었다고 생각한다면 그저 끔찍할 뿐...
물론 맨 처음 이야기했듯 역사에는 만약이 없다. 한반도 대신 일본이 분단되었더라면, 독일과 일본이 소련을 협공했더라면 따위의 가정은 아무 의미도 없다.
역사라는 건 지난 일이지만, ‘있었던’ 일이기도 하다. 우리가 더 좋은 미래를 열어가기 위해선 반드시 역사를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원인이야 어쨌건, 홋카이도에 평화가 온 것만큼은 좋은 일이라고 생각된다. 그 평화가 동북아 전체로, 나아가 전 세계로 확대된다면 참 바람직한 일이겠지만...
아마 그렇게 되려면 몇 천년은 걸리겠지.
갑자기 컬링 쟤가 왜..?
대체 무슨 컨셉임? 비틱?
만약 북해도가 소련 영토가 됐담 사할린 & 쿠릴 마냥 일본인들 다 쫓아내고 러시아 인민 공화국에 편입시킬듯. 독일 & 폴란드첨 몇백만 인구 추방쯤이야 신경 안쓸터니
소련 해체 후 깔리닌그라드첨 러시아 땅이 됐을터. 글구 진즉 러시아식 명칭으로 바꿔서 북해도란 명칭도 안쓸터지
드디어 ㅂㅅ말투 버린거임? 아님 사칭?
근데 북해도 뺏기면 일본 식량생산이 좆되긴할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