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솔져 오브 포츈 : 팍스 프랑세즈
· 솔져 오브 포츈 : 팍스 프랑세즈(Pax Française) - 1


BGM
Marie laforet - Marie douceur marie colére

솔져 오브 포츈: 팍스 프랑세즈 -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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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라 마르세예즈

"일어나라, 조국의 아들딸들이여!" 프랑스의 국가 '라 마르세예즈'는 한때 자유와 혁명의 상징으로 전 세계에 울려 퍼졌다.
억압받던 자들의 가슴에 희망의 불꽃을 지피던 18세기 말의 그 웅장한 선율은, 20세기 중반 아프리카 대륙에 당도했을 때 섬뜩하리만치 기만적인 의미로 변질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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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의 엘리제궁은 겉으로는 구 식민지들의 독립을 허락하는 관대한 제스처를 취했다. 펄럭이던 삼색기가 내려지고 새로운 국기가 게양되던 그 순간, 신생 독립국가의 탄생을 알리는 환호성 속에서 '라 마르세예즈'는 승리와 해방의 노래처럼 들렸다.

그러나 이는 거대한 연극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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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제궁의 밀실에서는 음험한 손가락이 아프리카 지도를 따라 움직이며, 새로운 지배의 끈을 은밀히 엮고 있었다. 이른바 '프랑코포니'라는 문화적 연대 뒤에는 경제적 종속과 정치적 통제를 위한 교묘한 올가미가 숨겨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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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례로, 독립 후에도 프랑스 재무부가 아프리카 국가들의 외환보유고를 통제하는 '프랑스 CFA 프랑' 시스템은 명백한 경제적 종속의 증거였다. 자유의 선율이 흐르는 동안, 아프리카의 운명은 파리의 심장부에서 조작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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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 자유: 그림자 속의 독립

1960년대, 아프리카 대륙을 휩쓴 식민지 독립 운동은 거대한 파도처럼 밀려왔고, 수많은 국가들이 자유를 쟁취한 듯 보였다. 그러나 진정한 자유는 허락되지 않았다. 프랑스 정부는 수많은 비밀 국방 협정과 재정 지원 조항들을 통해 독립국의 주권을 옭아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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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르 봉고, 가봉의 2대 대통령이며 42년이나 집권한 독재자.)

가봉의 오마르 봉고 대통령처럼, 아프리카의 지도자들은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혹은 파리의 보이지 않는 압력에 굴복하여 '형님'으로 자처하는 프랑스에 고개를 숙여야 했다. 봉고 대통령은 무려 42년간 집권하며 프랑스의 아프리카 정책에 충실히 협력했고, 그 대가로 프랑스는 그의 장기 집권을 묵인하고 지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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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독립국의 내정에 깊숙이 간섭했으며, 경제적, 정치적 통제를 위한 은밀한 네트워크를 구축했다. 겉으로는 새로운 국가가 탄생했지만, 실제로는 프랑스가 여전히 '그림자 정부'로서 군림하고 있었다.

서구 기자들이 묘사했던 "인간의 땅" 대신, 아프리카는 프랑스의 이익을 위한 거대한 체스판이 되어갔다. 겉으로만 번쩍이는 독립 선언문 뒤에는 프랑스의 이해관계로 가득 찬 수많은 비밀 문서들이 숨겨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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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I. 평등: 분열의 씨앗

프랑스는 아프리카 국가들이 독립 이후에도 민족적, 부족적 갈등에 시달리도록 의도적으로 설계했다. 식민 통치 시절부터 사용해온 '분할 통치(Divide and Rule)' 전략은 독립 이후에도 교묘하게 이어졌다. 그들은 여러 민족과 부족을 하나의 인위적인 국가 경계 안에 묶어둠으로써 긴장과 분쟁의 씨앗을 뿌렸다. 평등과 통합이라는 미명 아래, 현실에서는 혼란과 갈등이 끊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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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고, 르완다, 코트디부아르 등은 독립 직후부터 참혹한 내전과 학살을 겪었다. 특히 1994년 르완다 학살에서는 프랑스가 후투족 정권을 군사적, 외교적으로 지원한 정황이 드러나며 그들의 간접적인 책임론이 불거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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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프랑스군은 후투족 극단주의자들에게 무기와 훈련을 제공했다는 비판을 받았으며, 학살이 진행되는 동안에도 개입을 주저하며 수많은 인명 피해를 방치했다는 의혹을 받았다. 아프리카의 피는 프랑스의 이익을 위한 잉크가 되었다.

프랑스는 이 갈등을 이용하여 자신들이 '중재자'나 '안정화 세력'을 자처하며 지속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완벽한 명분을 얻었다. 혼란은 개입의 명분이 되었고, 분열은 지배의 도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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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V. 박애: 위선적인 가면

프랑스 정부는 자신들의 아프리카 정책을 '박애(Fraternité)'라는 고귀한 이름 아래 정당화했다. 그러나 그 가면 뒤에는 추악한 진실이 숨겨져 있었다. 본국 시민과 구 식민지 출신 아프리카인들 사이의 차별은 명백했고, 프랑스의 번영은 아프리카의 희생 위에서 이루어졌다. 아프리카 출신들은 사회 각 분야에서 차별받고 소외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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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기업들은 아프리카의 풍부한 자원, 즉 우라늄(니제르), 석유(가봉), 다이아몬드(중앙아프리카공화국) 등을 독점적으로 착취했으며, 그 막대한 수익은 고스란히 파리의 금고로 흘러들어갔다.

니제르의 우라늄은 프랑스의 핵발전소에 안정적으로 공급되었고, 가봉의 석유는 프랑스 정유사의 배를 불렸다.

아프리카의 젊은이들은 프랑스의 '명예'를 위해 머나먼 전장에서 총알받이가 되었고, 아프리카의 지도자들은 엘리제궁의 부름에 따라 움직이는 꼭두각시에 불과했다. 그들이 내세운 박애는 실상 자신들의 이익을 위한 위선적인 표현이자, 약자에 대한 교활한 착취의 가면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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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 엘리제궁과 교황: 은밀한 동맹

프랑스 정부는 아프리카에서 홀로 움직이지 않았다. 가톨릭 교회는 프랑스의 비공식적 협력자로 활동하며 이 은밀한 공작에 깊이 관여했다. 엘리제궁과 바티칸은 복잡한 끈으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프랑스 정부는 가톨릭 교회의 광범위한 선교 및 교육 네트워크를 이용하여 아프리카 국가들에 대한 문화적,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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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는 표면적으로는 학교와 병원을 세우고 인도주의적 구호를 제공했지만, 그 이면에서는 프랑스의 전략적 이점과 일치하는 정치적 메시지와 지시가 은밀하게 전달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비밀스러운 연결의 중심에는 바로 로버트 데나드라는 인물이 있었다. 그는 단순히 총을 든 용병이 아니었다. 때로는 교회의 대리인으로서, 때로는 프랑스 정부의 보이지 않는 손으로서 아프리카의 정치적 지형을 흔들었다. 종교는 때로 가장 강력한 통제의 도구가 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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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 나는 대홍수 뒤에 있다(Après moi, le déluge): 그림자 속의 용병

"Après moi, le déluge." (나 죽은 후에야 홍수가 오든 말든.) 프랑스 국왕 루이 15세의 자기 뒤에 무슨 일이 일어나든 자기는 죽고 없으니 알 바 아니라는이 섬뜩한 말처럼, 프랑스 대통령들은 아프리카의 혼란을 외면하거나, 심지어 이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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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로버트 데나드는 그 대홍수 속에서 프랑스의 그림자 칼날 역할을 했다. 수십 년간 프랑스 정부의 최고 지도자들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며, 그는 아프리카의 정치적 환경을 프랑스에 유리하게 조정하는 데 활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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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를 드골(1959-1969)은 아프리카를 '프랑스의 뒤뜰'로 여겼고, 데나드는 1960년대 콩고 카탕가 분리주의 사태와 비아프라 전쟁에서 드골의 정책을 위한 중요한 도구였다. 드골은 공식적으로 부인했지만, 그의 아프리카 셀은 데나드의 활동을 면밀히 주시하고 필요에 따라 지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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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레리 지스카르 데스탱(1974-1981) 시기는 데나드가 코모로에서 여러 차례 쿠데타를 일으키며 사실상 '국가 위의 용병'으로 군림했던 때였다.

1978년 코모로 쿠데타 후, 데나드는 대통령 경호실장이라는 공식 직함까지 얻었는데, 이는 엘리제궁이 데나드를 얼마나 깊이 신뢰하고 활용했는지를 보여주는 증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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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베델 보카사, 스스로 황제를 칭하고 중앙아프리카 공화국을 제국으로 선언한 괴이한 독재자.)

데스탱은 중앙아프리카공화국의 장 베델 보카사 '황제'와의 다이아몬드 스캔들로도 악명 높았다. 데스탱은 보카사로부터 수백만 프랑에 달하는 다이아몬드를 선물로 받았다는 의혹에 휩싸였고, 이는 프랑스 대통령이 아프리카 독재자들과 맺었던 밀월 관계와 그 추악한 대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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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수아 미테랑(1981-1995)은 사회당 출신으로서 아프리카 정책의 변화를 약속했지만, 현실은 달랐다. 겉으로는 데나드를 비난했지만, 1989년 코모로에서 데나드가 대통령을 암살하고 정권을 장악하려 하자 프랑스는 데나드를 무력으로 축출했다. 이는 데나드가 더 이상 '쓸모 있는 도구'가 아닌, 국제적 비난을 초래하는 '골칫덩이'가 되었음을 의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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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나드는 자신이 대홍수 뒤에 남겨진 존재이자, 역사의 거대한 파도 속에서 희생된 도구임을 깨달았다. 결국 그는 모든 흔적을 남긴 채 역사의 파도 속으로 사라졌다.

그가 개입했던 니제르, 차드, 가봉, 토고, 베냉, 코모로 등 수많은 프랑코포니 국가들의 정부 전복 뒤에는 항상 엘리제궁의 의지가 드리워져 있었다. 그는 총알받이가 된 아프리카 젊은이들처럼, 결국 프랑스 이익의 또 다른 희생양이었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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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I. 아프리카 셀: 끝나지 않은 그림자

프랑스 대통령 직속의 특별 기관인 '아프리칸 셀(African Cell)'은 오로지 아프리카 문제를 다루는 비밀 조직이었다. 이 기관은 프랑스의 아프리카 정책, 즉 신식민화의 척수와 같은 존재였다.

그들은 아프리카 국가들의 정치적, 군사적 움직임을 철저히 감시하고, 필요할 때 개입과 조정을 수행했다. 로버트 데나드는 이 아프리카 셀과 직접적인 연결을 가진 핵심 인물이었다. 그는 셀의 명령을 수행하고, 때로는 직접 보고하는 등 프랑스 권력의 가장 어두운 그림자 속에서 움직였다. 아프리카 셀의 결정은 곧 프랑스의 정책이었고, 신식민주의의 핵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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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데나드가 세상을 떠난 이후에도, 아프리카 셀과 프랑스 정부의 신식민주의 정책은 여전히 지속되었다. 프랑스는 계속해서 아프리카의 그림자 속에서 움직였고, 새로운 데나드와 같은 인물을 찾아 나섰다.

그 시스템은 여전히 살아있었고, 새로운 꼭두각시와 새로운 희생자를 계속 만들어냈다. 아프리카 대륙 위에서는 자유, 평등, 박애의 노래가 끝없이 왜곡되어 울려 퍼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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