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가 펴낸 <6.25 전쟁사>를 뒤적이다 보면 그 때의 아픔이 되살아온다. 책에는 중국 지도부가 참전 초반에 상정한 전선 이야기가 나온다. 책의 저자들이 중국 자료를 입수해 밝힌 내용에 따르면 후방에서 전쟁을 총괄해 지휘한 마오쩌둥은 참전 직후의 주(主) 전선을 평양 이북으로 생각했다고 한다.

 평양과 원산을 잇는 평원선(平元線)에서 미군을 주축으로 하는 유엔군과 국군이 전선을 형성할 것으로 봤고, 그에 따라 자국 군대를 평북의 덕천 이남으로 섣불리 내려 보내지 않을 작정이었다고 한다. 그들은 아군이 당연히 평양과 원산을 사수할 것으로 보면서 그 상황에 따라 평북과 함경도의 원산 이북에 중공군을 배치할 생각이었다는 것이다.


중국도 평양까지 내려올 생각이 없었다


 그래서 북진을 서둘렀던 당시의 아군 사정이 통한(痛恨)으로 남는다. 우리가 좀 더 침착할 수 있었다면, 청천강 너머 적유령 산맥 일대의 이상한 기운을 좀 더 면밀히 관찰했다면, 그래서 북진을 멈추고 평원선을 견고하게 지켰더라면, 상황은 많이 달라졌으리라는 생각 때문이다.

  길이 270㎞에 불과한 평원선에서 숨을 고르고 먼 시각으로 한반도의 전쟁을 저울질할 수 있었다면 우리는 지금 적어도 평양과 원산을 대한민국의 품 안에 안고 있지 않을까.



"평양을 너무 빨리 내줬다"


 국방부의 군사편찬연구소가 펴낸 <6·25 전쟁사> 역시 미 8군의 당혹감을 전하고 있다. 책은 중공군 2차 공세에 밀린 아군의 전술적 오류를 지적하고 있다. <6·25 전쟁사>는 우선 평양에 주목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아군은 너무 빨리 평양을 포기했다는 것이다. 아군이 지닌 압도적인 공습력(空襲力), 그리고 탁월한 전선 물자 보급력 등을 두고 볼 때 평양으로부터의 철수는 너무 성급했다는 얘기다.

 따라서 평북 일대에서 중공군에게 밀린 뒤라도 전열(戰列)을 가다듬어 평양 고수 작전을 벌였다면 중공군을 그 북쪽 전선에서 막아낼 수 있었다는 분석이다. 책은 아울러 당시 미 8군의 일부 장군들은 평양을 왜 빨리 포기하는지에 대해 매우 회의적인 생각을 지니고 있었다고 소개했다.

(중략)

 미군도 중공군의 실체를 과대하게 평가했던 중공군의 실체를 과대하게 평가했던 것이다. 낯선 군대의 매우 기이한 전법에 일부 아군 전선이 무너지자 중공군의 실체를 과도하게 부풀려 상상함으로써 거대해진 공포감이 미군 지휘부의 냉철한 작전지휘를 가로막았던 듯하다. 역시 후퇴를 예상해 미리 상정할 수 있었던 방어선을 제대로 설정하지 못했다는 점이 그 이유다.

 만약 한반도 북부에서 방어선을 설정한다면 평양과 원산을 잇는 라인이 가장 적당했다. 아군은 공세를 벌일 때에도 간과했던 그 라인을 후퇴 국면에서도 역시 놓치고 말았다. 전장 약 270㎞인 평양~원산 라인에 후퇴한 병력을 축차적으로 투입해 견고한 방어선을 구축했다면 아군의 급속한 38선 후퇴를 막을 수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출처

백선엽의 6.25.징비록-軍은 어떤 존재인가 1권, 백선엽 저, 유광종 정리, 책밭, 2016년, 217~225, 267~26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