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40부대와 한국전쟁의 유격전 – 11. 윌리엄 에이블 기지(p.41~43)


Dark Moon : Eight Army Special Operation in the Korean War

다크 문 : 한국전쟁기 미 8군 특수작전

Ed Evanhoe 저



3. 윌리엄 에이블(레오파드) 기지 – 1951년 1월-2월(2)

(p.41~)




백령도의 레오파드 기지 사령부. 헬기장에 헬기가 착륙해있다.


버크는 귀환 직후, 백령도를 첫 번째 유격대 사령부로 제안했다. 당장 피난민 중심지로 사용되고 있음을 차치하고서라도, 여러가지 이유들이 이 제안을 실현시켰다. 제일 먼저 고려된 것은 통신이었다. 섬은 38선에서 바로 아래에 위치해, 인천에서는 약 110마일, 압록강 하구로부터는 근 130마일 거리였다. 해안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백령도와 이북의 서남 해안을 둘러 싼 다른 섬들 사이 오가는 무선 신호를 간섭할만한 건 아무것도 없었다. 이는 비교적 저출력의 앵그리-나인(AN/GRC-9) 무전기를 이용해도 신뢰할 수 있는 무선망을 구축할 수 있다는 의미였다. 또한 백령도의 고출력 통신기지는 육지의 미 8군 통신기지와 연락을 유지하는데 많은  문제를 겪지 않을 것이라는 의미기도 했는데, 대부분의 거리를 수면 위로 지나칠 것이므로, 육지에 도달하기 전까지 신호를 감쇠하거나 왜곡할 만한 요소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AN/GRC-9 무전기는 동키 부대 명칭의 유래 중 하나로도 꼽히는데, 무전기를 지고 가는 모습이 당나귀 같다,

혹은 무전기의 발전기에 올라타 페달을 돌리는 모습이 마치 당나귀 등 뒤에 올라탄 사람같다 해서 대원들이 스스로를 당나귀라 부른 것이 이름으로 붙여졌다고 함.

AN/GRC-9은 앵그리 9 등의 별명으로도 불리며 국내 수기에는 앵글로 나인, 앵글리 나인 등으로도 지칭됨.




백령도 사곶해변


다음으로 고려된 건 보급이었다. 백령도의 남동쪽 사면에는 넓게, 2~3마일 너비로 펼쳐져있는 단단히 다져진 모래사장이 있었다. 이 해변에는 간조 때 C-46 혹은 C-47기가 착륙하거나 이륙할 수 있었다. 조석 중간(mid tide)이나 만조 때는, LST가 해안에 접안해 양륙할 수 있을 만큼 수심이 깊어졌다. 모래사장은 커다란 암초로부터 자유로웠고, 그 말은 LST가 조류가 낮아질 때 까지 양륙을 마치지 못했더라도, 선체에 손상 없이 그대로 해변에 내려앉을 수 있다는 의미였다.







백령도의 사곶해변은 천연 활주로로써 정식으로 K-53이라는 식별코드를 부여받아 유격대의 보급, 기체 이상 시 비상착륙 등에 사용되었으며, 지금도 K-53이라는 식별코드가 유지되어 군사기지 및 군사시설 보호법 시행령 상 지원항공작전기지로 분류되고 있음. 한편, 현재는 북한 지역인 초도 섬에도 K-54 비행장이 운용되었음.



위는 백령도에 추락한 커세어, 아래는 초도 섬에 추락한 C-47.



아래는 2006년의 사진.


섬은 큰 만을 초승달처럼 감싼 모양이었다. 만은 간조에는 커다란 갯벌이 되었다가, 조석 중간과 만조에는 간조 시의 좌초를 견딜 수 있도록 설계된 소형 연안 목선들이 만에 들어왔다가 나갈 수 있었다. 이는 특히 나중에 들어올 상륙주정(LCM)이나 더 큰 다목적 상륙주정(LCU)의

경우에도 유효했다. 이들 상륙주정은 상륙돌격시의 좌초에도 견딜 수 있게 설계되었으므로, 갯벌 위에 얹히는 것 쯤은 문제가 아니었다.




등식에 추가된 세 번째 계산은 다음과 같았다. UN 해군은 한반도 인근 해역을 통제했고, 서해에서는, 백령도로 몇 시간 이상 걸리는 일이 없었다. 어떠한 적의 상륙 시도도 요청된 UN 해군이 격퇴할 것이었으므로, 섬은 적의 침공으로부터 안전했다. 새 유격대 사령부는 또한 남한지역의 공군기지로부터 전투기와 폭격기 지원을 요청할 수 있을 것이었다.


맥기 대령은 버크의 제안을 수용해 백령도를 새 유격대 사령부로 만들었으며, 또한 놀랄 것도 없이 버크 소령을 윌리엄 에이블 부대(Task Force William Able)*의 지휘관으로 임명했다. 버크는 참모진을 소집했는데, 부지휘관이자 작전장교인 아서 J. 제이콥슨 소령, 정보 및 군수장교인 도날드 마우스 중위, 통신장교인 레이먼드 커츠 중위였다. 두 명의 무전병, 찰스 가너 병장과 성명 미상의 이병이 파견단을 완성해, 1951년 2월 12일 부산항을 출발했다. 이들은 2월 15일 백령도에 도착했다.


(*) William Able Base 라고도 하며, 국내에서도 기지사령부, 부대의 호칭이 혼용됨.


버크의 1월 정찰은 일정에 쫒겨 급하게 이뤄졌었다. 파견에서 버크는 백령도에 수백의 유격대원들이 있고, 다른 섬들에도 유격대원들이 더 있음을 알게되었지만, 어느 섬에 얼마나 많은 대원이 있는지는 알지 못했다. 정확히 무엇과 일해야 하는지를 파악하는 게 도착 이후 그의 첫 번째 과제가 되었다. 한국인 선견 참모진과 지역의 국군 첩보대가 여러 공백을 채웠으나, 아직도 더 많은 공백이 남아있었다. 누군가가 황해도 서남 해안 일대의 유격대 치하 섬들을 방문해 알아보아야만 했다. 버크는 그 누군가가 자신이어야 한다고 판단했다. 곳곳에 구멍이 난, 이가 우글거리는 한국 어선들만이 가용할 수 있는 유일한 수송 수단이었다. 이들은 날씨가 좋을 때에도 거의 안전하지 않았는데, 지금은 2월이고 날씨는 좋지 않았다. 

(~p.41)





유격대는 다양한 형태의 목조 범선(정크선), 발동선(모터보트), 상륙주정 등 가용할 수 있는 배들은 모두 운용했음.


그럼에도 불구하고, 버크는 다음 며칠간을 섬에서 섬을 오가며 직접 현지 유격대 지휘관들과 접촉하는데 시간을 보냈다. 그가 알아낸 내용은 고무적이었다. 그의 첫 번째 파견에서는 연안의 섬들에 도합 1천에서 2천여 명의 유격대원이 흩어져 있으며, 보통 조직되지 않은 상태인 것으로 여겨졌다. 이제 버크는 각각의 북한 서부 지방을 연고로 하는 세 유격대 집단이 이미 존재함을 알게되었다. 이들은 평안북도의 평북 집단과 평안남도의 평남 집단, 황해도의 황해 집단이었다.




각 집단 아래에는 10여명에서 수백 명 사이 어딘가의 인원으로 구성된 “부대*”들이 있었다. 평북 집단(최북단에 있는 부대)은 애도부대**라는 이름의 단일 부대로 구성되었다. 이 이름에는, 다른 모든 부대 이름처럼, 대부분의 대원들이 출신한 지역이 반영되었다. 애도부대(백마부대)에는 애도, 신도, 신도***, 소화도, 대화도에 흩어진 대략 400여 명의 대원들이 있었다.


(*) 원문은 “regiments“로, 창설 초기 기지사령부 예하 유격대는 연대급(동키) 부대로 편성되었으나 이후 기지사령부가 연대 단위로 재편되어 부대로 통일됨. 그러나 이 부분에서 나오는 연대는 동키 부대로 편성된 이후의 편제와 일치하지 않는, 창설 초기의 과도기적 분류로 보임. 이하 알려진 ~부대와 행적이 일치하는 경우의 regiment는 부대로 번역했으며, 그 기원이 명확하지 않은 경우에는 연대로 번역했음.


(**) 원문은 Aedo-dong Regiment로, 대화도에서 활동했던 백마부대를 가리키는데, 이 시기에는 애도에서 창설되어 애도부대라고 불리웠음. 한편, 이후에 백령도에서 조직되어 애도에서 활동한 평북부대도 별개로 존재함. 이하 동키 15로 재편되기 전 시기의 Ae-do Regiment는 애도부대로 번역하되, 잘 알려진 명칭인 백마부대를 병기했음.

(***) 원문은 S’in-do와 Sin-do인데, 정확히 어떤 섬을 지칭하는지는 모르겠음. 서해안의 신도는 만주에 맞닿은 압록강 하구의 평안북도 신도군, 북한의 황해남도 옹진군의 신도, 인천 옹진군의 신도가 존재함. 대화도나 애도 일대의 비슷한 지명으로는 신미도가 있는데, 신미도는 이후 책에서도 Sinmi-do로 등장함.




당시 초도의 모습


평남 집단 또한 하나의 단일 부대인 평남부대*로 이루어졌다. 이 부대는 황해도 서부에서 국군 육군 김 대위가 이끄는 지연전을 수행했었다**. 1월 말 육지에서의 철수 이후, 부대는 약 1200여명으로 팽창했으며 초도, 석도, 덕도에 휘하 부대를 가졌다. 석도와 덕도 섬은 북한의 서해 주요 항구인 진남포로 향하는 수로의 양 쪽에 위치했다. 이 섬들은 수로와 상당히 가까워, 남포만으로 진입하는 모든 작은 배나 선박들은 섬의 박격포나 무반동포의 사거리 내로 지나가야만 했다***.


(*) 원문은 P’yongyang Regiment인데, 평안남도 출신의 평남부대를 지칭하는 것으로 보임. 이하 평남부대로 번역했음. 책의 오기인지는 알 수 없는데, 이는 후술.


(**) 국군 김 대위는 구월부대장(연풍부대) 김종벽 대위를 일컫는 것으로 보임. 김종벽 대위는 육군 정보국 첩보장교였는데, 육본 연락 차 후방에 갔다가 원대 복귀 도중 중공군 개입으로 부대 위치를 잃고, 고향 장연에서 무장대의 추대로 연풍부대를 창설했음. 유엔군 철수 당시 은율, 장연, 안악 등 구월산 일대에서 구월부대 등 다수의 황해도 출신 무장치안대(유격대)들이 활동했는데, 평남부대도 안악, 은율부대 등과 합동으로 작전을 수행했다고 함.


(***) 책에 서술된 내용과 부합하는 섬은 덕도가 아닌 취라도에 가까움.



평남부대는 초도를 본부로 덕도와 취라도, 애도 인근의 운무도에 파견대를 보내 활동했는데,

보다시피 남포로 가는 수로의 양쪽에 위치한건 석도와 취라도이고, 덕도는 초도에 부속된 무인도였음.

한편, 구월부대를 비롯한 북 레오파드 지역의 유격대 또한 이 일대에서 활동했음.



황해 집단은 가장 거대해, 5개 부대가 남부 황해도 해안에 걸친 해주 만의 섬들로부터, 백령도, 북쪽으로는 초도까지 흩어져 있었다. 이들 부대는 바로 월내도의 신천연대, 해주 만에 있는 연평도와 그 동쪽의 섬에 있는 해주연대, 순위도의 구미포연대*, 기도**와 기린도의 구월연대, 그리고 백령도, 대청도, 소청도의 장연연대였다.*** 이들 황해도 출신 유격대는 도합 2400여명에 달했다.

(~p.42)


(*) 원문에는 Kyomi-do로, 후술할 표에는 Kyomipo로 표기되어있으나, 교미도 및 교미포라는 지명은 확인할 수 없었고, 황해남도 용연군(장연군/당시 은율군) 구미포를 지칭하는 것으로 추정했음.


(**) 원문은 Kinn-do and Kirin-do인데, 기인도, 긴도, 기은도, 김도, 금도 등등은 없었고, 용호도(용위도) 근처 기도(기섬)이나, 기린도에 부속된 하기도(아래기도)가 존재해 기도로 번역했음.


(***) 앞의 평남부대 부분에도 언급되었듯이 연대의 명칭에 관해서는 의문스러운 부분이 있는데,




56년 존스홉킨스대 (극동군사령부 작전연구소)에서 편찬한 보고서 ”UN Partisan Warfare in Korea, 1951-1954.”의 표에도 해당 명칭이 그대로 등장하며, 이는 윌리엄 에이블(레오파드) 기지 사령부의 51년 3월 5일 편제 보고에 나타난 명칭이라고 함. 따라서 이는 책의 오류가 아닌 미군 측(혹은 최초 보고 당시 버크 소령이)이 파악한 이름이 국명과 달랐거나, 아니면 초기 부대의 명칭이 실제로 평양부대, 평양치안대 등 평양에서 비롯한 이름이었을 수 있는 것으로 보임.


더해서, 비교적 연결이 수월했던 앞의 평북, 평남 출신 부대와는 다르게, 이 부분에서는 섬과 소재 부대의 연결에도 의문스러운 부분이 많은데,

  

1. 먼저 월내도의 경우 장산반도 및 장연군 일대와 인접해 장연 출신의 장연부대(백호부대, 동키 4)가 주둔했음. 


2. 연평도에는 청년방위대 옹진여단, 벽성군 치안대, 용매도 향토방위대 등을 주축으로 창설된, 나중에 울팩 3부대로 개편되는 구 동키 13부대나 옹진학도의용대(동키 11) 등의 대원이 주로 있었음. 한편 해주 출신의 해주부대(구 동키 8부대, 울팩 4부대)는 인근의 소수압도에 주둔했음.


3. 순위도에는 옹진청년방위대였다가, 옹진지구 국민방위군, 을지2병단으로 편입, 이후 동키 11과 동키 13으로 흩어진 옹진 출신의 대원들이 있었으며, 이후 한번 더 울팩 8부대로 재편되어 주둔했음. 한편, 구 동키 8부대가 울팩 4부대로 개편된 후, 송림의 무궁회 회원을 주축으로, 옹진 출신 대원이 많았던 송림호남부대가 새로 동키 8부대로 재편되어 순위도에 주둔했다가 다시 해체되기도 했음. 한편, 이후 신천부대(동키 1) 일부도 용호도, 순위도에 주둔해있다가, 52년 백령도 방위를 위해 잔류했던 신천부대 일부가 신 동키 13부대를 조직해 순위도에 주둔하였음.


4. 기린도에는 당시엔 옹진학도의용대(동키 11)가 있었고, 52년 용호도 피탈 이후 신천부대(동키 1)가 주둔했음.


5. 이 시기, 동키 2로 개편되기 전의 구월부대는 모체인 연풍부대에 더해, 구월산 일대의 여러 유격대와 평북의 애도부대(백마부대) 등 이후 별개의 동키 부대로 독립하는 여러 유격대가 연합한 대형부대였으며, 취라도, 석도와 응도 등 여러 섬에 흩어져 주둔했음. 모체인 구월부대(연풍부대)의 경우 동키 2, 버크와의 갈등으로 인한 조난사건 이후 동키 20로 재편되어 초도, 취라도 등에서 주로 활동했음.


6. 백령도에는 레오파드 기지사령부 창설 전 여러 유격대원들이 피신해있었음. 상술된 부대들도, 원래는 후퇴 시기 일단 백령도로 피신했던 인원들이 이후 간부진이 되어 부대 조직 후 다시 각 도서로 돌아간 경우가 대부분으로, 사실상 대부분의 유격대는 백령도에도 있었다고 봐야 함. 


또한, 하나의 유격대가 하나의 섬에 주둔했던 게 아니라, 여러 유격대가 여러 섬에 흩어져 대부분의 활동 영역이 겹쳐있으므로 원문의 부대가 정확히 어떤 부대를 지칭하는지는 불명확한데,


1. 책의 뒷부분에는 ‘신천무장대’가, 후퇴 당시 백령도로 철수 후 장연연대 소속이 되어 이후 동키 1로 편성되었다고 나와 있으며, 실제로 당시 신천무장대는 해병대 의용대로써 백령도 방위를 맡고 있었음. 즉 장연연대=신천부대(동키 1)이라면 백령도에 있었다는 서술은 일치함.


2. 신천연대의 경우, 장연 출신의 동키 4(백호부대)에 대한 서술에서 Sinchang Regiment의 인원으로 결성되었다는 부분이 있는데, Sinchang이 신천의 오기라고 간주한다면 책에서는 신천 출신의 신천부대를 장연연대로, 장연 출신의 장연부대를 신천연대라고 뒤바꾸어 서술한 것이 되며, 이를 정정하면 장연연대가 월내도, 신천연대가 백령도로 사실과 부합하게 됨. 다만 장연연대, 신천연대에 소속된 다른 부대도 있었는지는 알 수 없었음.


3. 구월부대는 주로 초도의 북 레오파드(이후 드래곤기지->6유격연대) 지역에서 활동했으므로 기도, 기린도의 ‘구월연대’와 관련성을 찾기 어려우며, 정확히 어떤 부대를 지칭하는지 알 수 없었음.


4. 구미포연대의 경우 가장 기원이 불분명한데, 유격대의 활동에서 ‘구미포’, ‘구미리’, ‘구미’등의 지명은 찾을 수 없었음. 구미포연대가 있었다는 순위도에는 상술했듯 옹진 출신의 대원이 많았고, 구미포와 가까운 섬은 장연군 일대의 월내도, 육도 등인데 여기에는 장연부대가 주둔했음. 


5. 해주연대의 경우 연평도와 인근 소수압도 등에 해주 출신 대원들이 있었음은 일치하나, 정확히 어떤 부대로 연결되는지는 알 수 없음. 




초도에는 다수에 유격대가 주둔해 북 레오파드 지역으로 묶였으며, 이후 드래곤 기지사령부가 설치됨.


버크가 다른 섬에서 유격대 지도자들과 만나고 있을 때, 윌리엄 에이블 부대에 배속된 두 번째 미군 그룹이 도착했다. 이들 중에는 얼마 전 해체된 미 8군 레인저중대에서 지구전과로 배속된 찰스 번 중위와 브랑코 게이지크 병장이 있었다. 또한 윌리엄 틸 대위, 윌리엄 고어 중위(전 187공수연대), 그리고 무전병 예닐곱과 여타 지원인력도 포함되었다. 고어와 게이지크, 그리고 2명의 무전병은 며칠 뒤 부대의 전방 지휘통제소 구축을 위해 얼마 뒤 초도로 향했다. 번과 틸은 교관으로써 백령도에 남았다.


버크가 도착했을 때, 기타업무단의 또 다른 장교가 이미 현장에 있었는데, 바로 밀양유격대대*의 고문이었던 윌리엄 S. 해리슨 중위였다. 해리슨은 육지에서 철수하는 비정규군들의 재조직을 지원하기 위해 1950년 12월에 KMAG(주한미군사고문단)에서 파견되어 있었다. 1월 말, 해리슨은 KMAG에서 기타업무단으로 전속되었다.

(~p.43)


(*) 장사상륙작전에 투입된 육본직할 독립 제1유격대대(명부대)를 외서에서 주로 부르는 명칭. 자세한 내용은 장사상륙작전(p.25~30)편 참고.




-12. 레오파드와 동키부대의 창설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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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Dark Moon : Eight Army Special Operation in the Korean War는 95년에 출판된,

전쟁 전 미군이 운용했던 이북 출신 한국인으로 구성된 첩보부대 켈로부대와

이북에서 자생하던 여러 반공유격대를 미군 휘하로 편입하여 통합한 부대인, 

미 8240부대가 한국전쟁 당시에 수행한 비정규전에 대해 다루고 있는 책임.


국내 서적 및 논문에도 참고문헌으로 사용되는 등 연구사적 가치가 있으나, 지금 기준으로는 오래되어 정확성이 떨어지는 부분이 많고, 특히 한국인 대원의 인명 등이 부정확한 경향이 있음.


위 번역글은 여타 책의 참고문헌에 있는 원문의 서술이 궁금한 경우에 참고하는 것을 의도로 작성되었으므로

내용 상 오류가 있음을 양지하고 읽어야 하며,


최신화되고 정확한 내용은 군사편찬연구소 발간 한국전쟁의 유격전사나,

(군사편찬연구소 홈페이지에서 열람 가능)

미 특수전사령부 역사실 홈페이지의 한국전 부분 기사가 이 책보다도 충실하고 비교적 정확하게 설명되어있으므로 이 쪽을 찾아보는걸 권함.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홈페이지

https://www.imhc.mil.kr/user/indexSub.action?codyMenuSeq=70543&siteId=imhc&menuUIType=top

미 특수전사령부 역사실 홈페이지 

https://arsof-history.org/arsof_in_korea/index.html


번역에 이상한 부분이 있거나 글 가독성이 좋지 않다면 마음껏 건의해주시면 감사하겠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