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우스 상급대장은 1913년 발칸전쟁 당시 지중해에서 함대를 이끌고 무력시위를 하면서 문제 하나를 절감했는데, 바로 함대가 기동할 때 쳐먹는 석탄의 양이 생각보다 엄청나다는 거였음.
그래서 하우스는 그해 말에 석탄을 존나게 플렉스함. 도합 405,302톤의 석탄을 구매했는데 이건 전년도인 1912년에 오헝이 구매한 153,248톤의 거의 세 배에 가까움.
75%인 약 30만톤 가량은 영국산, 12.1%는 독일산이었고 11.6%는 미국 버지니아산이었음. 오스트리아 내에서 구매한 석탄은 주로 체코 오스트라바에서 나왔는데 1.6%밖에 안됨.
오헝해군은 이때 구매한 석탄을 바탕으로 1차 대전을 이어나갈 수 있었음. 물론 전쟁이 터지자 영국과 적이 됐으니 비축분과 동맹국 내에서 산출되는 석탄으로 근근히 버텨야 했음
또 함대가 한번 출항할 때마다 한시간에 천톤씩 석탄을 퍼먹어댄 덕에 오스트리아는 마음껏 해군을 기동할 순 없었음.
설상가상으로 전쟁 초반에 휘하 지휘관들이 순양함 SMS 젠타 함을 날려먹고 몬테네그로 해안에서 졸렬하게 전투를 벌이자, 하우스는 성질이 폭발해서 일선 지휘관들을 존나게 갈궈댄 다음 전 함대를 풀라 항에 집결시켰음.
하우스는 심지어 잠수함대마저 풀라를 못 빠져나가게 했음. 이 때문에 잠수함대 사령관 티에리 대령은 카타로항에 잠수함 좀 배치하자고 상부랑 옥신각신하기도 함. 독일도 아니 시발 님들 가만히 계시지 말고 뭐 좀 해보라고 닦달했고.
그래도 1914년 말 에곤 레르흐 중위가 이끄는 잠수함 U12 함이 프랑스 순양함 레옹 강베타를 뇌격해 격침 직전까지 몰아붙이면서 첫 성과를 거뒀음. 이 이후 몬테네그로 해안에서의 작전이 위험하다고 여긴 프랑스 해군이 봉쇄선을 뒤로 물리게 됨
1915년에는 트랍 중위가 프랑스 순양함 레옹 강베타를 격침시켰고, 이 이후 프랑스 해군의 활동은 더욱 위축됨. 하필 갈리폴리 작전이 한창이라 영국령 몰타는 터키 전선의 후방기지로 기능하고 있었기 때문에 프랑스 해군은 저 멀리 튀니지까지 가서 재보급을 받아야 했음
물론 이 상황은 1915년에 이탈리아가 협상 편으로 참전하면서 급변함
출처
The Naval Policy of Austria-Hungary
시리즈
https://m.dcinside.com/board/war/48557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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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간에 천톤이라니 괜히 연료가 없는 해군이 있는게 아닌 ㄷㄷ
연료 없으면 떠다니는 고철이지 - dc App
저러다보니 해군은 돈 많은 나라가 아니면 제대로 육성을 못하지. 북쪽도 최현급 건조할 수 있었던 게 아마 러시아 도움이 클 거임. - dc App
ㄹㅇ - dc 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