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음. 물론 그것만 이유는 아니고 세계대전급 전쟁이 당분간 일어날리가 없고 그런 일이 혹시 발생하면 핵으로 처리하겠다는 미국의 오판 때문에 미군을 1차대전 끝날때처럼 해산에 가깝게 줄여버린 탓도 큼.
익명(46.101)2018-08-11 20:28
1945년 종전후에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미국의 군축 덕분에 아직 쓸만한 무기와 장비들이 운송비가 비싸다는 이유로 현지에 버려지거나 파괴하는 바람에 막상 한국전쟁이 터지니까 수중에 남아있는 현역 동원 가능한 무기와 장비의 숫자가 많이 적었음. 물론 실제로는 그보다는 한참 더 많았지만 어디 박혀있는지 알 수도 없거나 오랫동안 관리 안되서 수리 및 정비가 필요해서 당장 투입할 수 없던 경우가 많았음.
익명(46.101)2018-08-11 20:31
그렇군요..
양산형기병맨(gmcannon)2018-08-11 20:31
그러다보니 일단 잡히는대로 한국에 무기와 장비를 보내다보니 저렇게 1차대전에 더 잘 어울리는 수냉식 기관총 같은게 많이 들어가게 됨. 원래대로라면 미국이나 일본의 공장이 돌아가면서 교체되어야 하지만 전쟁 양상이 1차대전의 산악 참호전같이 되버리면서 쓸만한 무기가 되었기 때문에 그대로 놔두고 추가로 더 투입한 것임.
익명(46.101)2018-08-11 20:33
참고로 그 당시의 무기 난맥상이 얼마나 심했는지 역사와 전통에 따라서 또 다시 없애버린 저격수와 저격수 부대를 재건하기 위해 m1 개런드를 개조했는데 개조형이 c형과 d형으로 나누어지고, d형이 생산되면 그만 만들어도 되는 c형도 대량발주되는 등 혼란의 도가니탕이었음. m26 퍼싱도 2차대전때 생산해놓은 걸 어디다가 처박아놓았는지 갑자기 동원하려고 하니 숫자가 부족해서 부대 정문에 상징물 겸 전시물로 놓은 것도 끌어내서 정비한 후 전선에 보내는 웃지못할 일이 발생함.
익명(46.101)2018-08-11 20:37
이런...
양산형기병맨(gmcannon)2018-08-11 20:37
미국은 진짜로 한국전쟁에 전혀 준비가 안된 상태였음. 한국전쟁 극초기에 보내놓은 스미스 부대란 것도 일본 주둔한 4개 사단중 그나마 훈련 잘 받은 애들을 급히 차출해서 모아놓은 나름대로 정예부대였는데 거기에 배속될 포병대가 105미리 대전차고폭탄을 요구하니까 딸랑 6발 줌. 그 이유는 급하게 일본 전역의 창고를 뒤졌는데 발견한 105미리 대전차고폭탄이 18발 밖에 없었다는 어이없는 사태가 있었기 때문임.
익명(46.101)2018-08-11 20:41
스미스부대 행적보고 급조된 오합지졸 인줄알았는데 나름 차출된 정예부대였군요..
양산형기병맨(gmcannon)2018-08-11 20:42
더 황당한 것은 그나마 그건 개전 극초기였고, 낙동강 방어선이 형성되고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니까 일본 창고에 쌓아놓은 탄약이 고갈되기 시작함. 얼마나 급했는지 원래 천천히 일본 창고에 부족한 탄약을 채우려고 보내놓은 탄약수송선보고 무조건 최고속력으로 달려서 한국에 직접 탄약 전달바람! 하는 메세지 보내고 포병 탄약을 절약하삼 하는 소리를 전선에 보냄. 상황은 말 그대로 최악이었는데 포탄이 부족해져서 포격지원이 줄어드는 똥줄타는 사태가 벌어졌음. 그나마 탄약수송선이 예정보다 일찍 당도해서 문제는 해결...
익명(46.101)2018-08-11 20:44
그 경험때문에 국군이 포탄 보유갯수에 집착하는거려나요..? 심각하네요
양산형기병맨(gmcannon)2018-08-11 20:46
사실 일본 주둔 미군의 훈련상태가 한국군보다 그렇게 썩 좋지 않았음. 한국군은 딱 중대훈련까지 했는데 일본 주둔 미군은 딱 대대훈련 시작하려고 검열들어간 시기에 전쟁 터졌거든. 그러니 정예부대라고 해봐야 거기서 거기였음. 게다가 장비도 부족하고 탄약도 풍족하지 않으니 답 없지.
익명(46.101)2018-08-11 20:47
북한이 전쟁각 하나는 기가 맥히게 잡았네요
양산형기병맨(gmcannon)2018-08-11 20:48
그래서 초기에 일본에서 한국에 투입된 미군사단 꼴을 보면 일단 부족한 병력과 물자와 장비를 아직 일본에 있는 미군 사단에서 뽑아와서 투입하는 방식을 씀. 그러니 일본에 남아있는 사단은 말 그대로 반신불수가 됨. 이렇게 해서 최후로 남은게 미 제 7사단이었는데 인천상륙작전에 투입하려고 보니 전투력이 1개 연대급이 되버려서 한국에서 막 징집한 한국인 7천명을 넣어서 간신히 사단편제 맞춰서 보냄. 이게 카튜샤의 시초중 하나로 대량투입되었다는 점에서는 처음임.
익명(46.101)2018-08-11 20:51
아하..그런 연유가..
군갤부매니저(cavalryman)2018-08-11 20:52
결국 미국이 자기네 사단에 있는 한국인 숫자를 일정 수준으로 줄이고 그 간격을 제대로 된 미군 본토병력으로 채운 것은 인천상륙작전 끝나고 북진작전 시작할 때였고 그나마 이것도 중공군 개입으로 손해가 많아지니까 다시 재편성하느라고 생고생 끝에 그나마 미군다운 편제와 장비를 갖춘것이 1951년 가을 정도가 됨. 그 전에는 임시변통에 한국인까지 넣은 개막장 사단이 바로 미국 사단이었음.
익명(46.101)2018-08-11 20:54
례로 현리전투때 미군 10군단이었나 뭐였나가 까보니까 다 한국인으로 편성되었드만요
양산형기병맨(gmcannon)2018-08-11 20:55
그러니까 낙동강 전선이나 북진작전때 미국 사단이 예전의 명성과 달리 약한게 다 이유가 있다고 보면 됨. 병력도 모잘라서 한국인이 30% 포함되서 간신히 편제 맞추고 무기와 장비도 본국에서 창고를 뒤지면서 나오는 거 마구잡이로 받은데다가 정작 쓸만한 무기와 장비는 수량부족. 훈련도도 개판에 세계대전 당시의 경험있는 고참은 고위급 장군 빼면 없다시피하고 전쟁을 직접 경험하지 않은 자가 병사부터 부사관, 중급 장교에 널린 개판이었음.
익명(46.101)2018-08-11 20:57
덤으로 현역과 예비역을 비교하면 예비역이 더 우월할 정도로 당시의 현역의 질도 안좋았음. 특히 일본 주둔병력은 말 그대로 일본 관광이나 하는 조직같이 되버려서 답 없는 집단이 되었지.
익명(46.101)2018-08-11 21:00
아이고..
군갤부매니저(cavalryman)2018-08-11 21:00
따라서 낙동강 전선이 뚫리려고 하니까 한반도 포기하고 제주도 정도나 점유하고 있고 한국정부는 제주도나 서사모아로 옮기려는 계획을 세웠고, 중공군 남하해서 서울 날리니까 중공군이 금강선까지 넘으면 역시 한국을 포기한다는 계획 나온게 다 이유가 있는 것임. 완전히 무너지다시피한 미군으 다시 원상태로 돌리는 것도 견적이 안나오는데 급조한 군대를 방어선에 넣어서 방어하니 희생자가 미국이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나왔거든. 이짓거리 하면서 꼭 한국을 지켜야 하나 하는 회의론이 일만 했지.
익명(46.101)2018-08-11 21:05
반전여론이 나올법하네요
군갤부매니저(cavalryman)2018-08-11 21:06
참고로 탄약, 그 중에서도 포병 탄약 부족문제는 전선이 교착상태에 빠진 후에도 일어남. 포격으로 불바다 만드는 화해전술로 중공군 막은 건 좋았는데 탄약 조달 비용이 너무 올라가니 미국 정부에서 좀 자제하삼. 예산을 못댐 소리가 나와버렸고 그 이후에는 포격 지원이 풍족하지가 않았음. 고작 한국전쟁으로 또 다시 총력전 돌릴 수 없던게 미국 상황이었음. 미국 국민들도 세계대전 끝난지 몇 년 되었다고 또 다시 세금 많이 내면서 총력전 들어가려고 하지 않았고. 그래서 결국 휴전으로 전쟁이 끝나게 된 것임.
익명(46.101)2018-08-11 21:08
그런 뒷사정이 있었군요..
군갤부매니저(cavalryman)2018-08-11 21:08
반전여론이 구체화되지 않은 것만 해도 천만다행이었지. 낙동강 전선에서 8월 공세때 하루만에 미군 사상자가 1만명이 넘으면서 한국전쟁 최고 기록을 달성까지 했는데 그 땐 모두 쉬쉬했거든. 그거 알려지면 군대 빼라고 할 미국 본토 사람이 많았음.
익명(46.101)2018-08-11 21:10
까딱하면 한국 패망의 위기였군요
군갤부매니저(cavalryman)2018-08-11 21:10
김일성이가 최후의 낙동강 방어선 뚫기 공세인 9월공세가 실패로 돌아갔음에도 불구하고 서울, 인천에 있는 병력까지 동원해서 낙동강에 쏟아부은게 다 이유가 있던 것임. 조금만 더 하면 뚫릴것 같은데 같은 상황이었음. 물론 그래줘서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했음. 김일성이 뒤늦게서야 낙동강에 추가투입했던 부대 되돌리고 서울에 동원가능한 2선급 부대 처넣으면서 시가전이 엄청났지만 대세를 뒤집기에는 늦었음.
익명(46.101)2018-08-11 21:12
마치 99% 먹었는데 1%가 뭔짓을 해도 안풀려서 다 최전선에 박았다 이거..인가요?
군갤부매니저(cavalryman)2018-08-11 21:13
종합하자면 한국전쟁 당시 미국은 전혀 준비안되있었고 기존에 가진 병력, 장비, 물자도 개판으로 관리해서 어디 처박아놓았는지 모르던 개판이었음. 이런 상태에서 한국전쟁에 들어가니 대손해가 나면서 예산도 부족할 수 밖에 없었고, 이는 결국 2번이나 한국 포기하고 한국정부를 제주도 같은데 망명정부 세우게 만드는 계획을 수립하게 함. 그러니 미군 상태도 최악이었고 결국 총력전을 걸 수 없던 상황이라 전선이 교착상태 되면서 휴전된 것이 한국전쟁이라는 것임.
익명(46.101)2018-08-11 21:15
여러가지 복잡한 사정들이 뭉쳤구만요..
군갤부매니저(cavalryman)2018-08-11 21:16
그랬음. 8월 공세나 9월 공세 심할 때는 미국이건 한국이건 모든 예비대를 다 써먹고 이제 어딘가에서 전선 뚫리면 끝인 상황이 한두번이 아니었음. 그러니 김일성이가 조금만 더!라고 생각하기 딱 좋았지.
익명(46.101)2018-08-11 21:17
그런거보면 사람 욕심은 다 똑같아요
군갤부매니저(cavalryman)2018-08-11 21:18
북진때 맥아더가 생각한 것도 비슷했지. 2차례나 미군 진격한계선 그어놓고 그 위는 한국군만 진격하게 했는데 결국 진격한계선 철폐한 것이 중공군이 개입하긴 한 것 같은데 아직 소수일때 빨리 진격해서 한국전쟁 끝내자가 목표였거든. 그러다가 중공군 인해전술에 개망한거고.
그렇지 않을까? 밀려오는 중공군 잡으려면 하루종일 갈겨야되잖아.
딱히좋아한게아니라 공냉식이 녹아내려서 수냉만남은게아닐까 - dc App
맞음. 물론 그것만 이유는 아니고 세계대전급 전쟁이 당분간 일어날리가 없고 그런 일이 혹시 발생하면 핵으로 처리하겠다는 미국의 오판 때문에 미군을 1차대전 끝날때처럼 해산에 가깝게 줄여버린 탓도 큼.
1945년 종전후에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미국의 군축 덕분에 아직 쓸만한 무기와 장비들이 운송비가 비싸다는 이유로 현지에 버려지거나 파괴하는 바람에 막상 한국전쟁이 터지니까 수중에 남아있는 현역 동원 가능한 무기와 장비의 숫자가 많이 적었음. 물론 실제로는 그보다는 한참 더 많았지만 어디 박혀있는지 알 수도 없거나 오랫동안 관리 안되서 수리 및 정비가 필요해서 당장 투입할 수 없던 경우가 많았음.
그렇군요..
그러다보니 일단 잡히는대로 한국에 무기와 장비를 보내다보니 저렇게 1차대전에 더 잘 어울리는 수냉식 기관총 같은게 많이 들어가게 됨. 원래대로라면 미국이나 일본의 공장이 돌아가면서 교체되어야 하지만 전쟁 양상이 1차대전의 산악 참호전같이 되버리면서 쓸만한 무기가 되었기 때문에 그대로 놔두고 추가로 더 투입한 것임.
참고로 그 당시의 무기 난맥상이 얼마나 심했는지 역사와 전통에 따라서 또 다시 없애버린 저격수와 저격수 부대를 재건하기 위해 m1 개런드를 개조했는데 개조형이 c형과 d형으로 나누어지고, d형이 생산되면 그만 만들어도 되는 c형도 대량발주되는 등 혼란의 도가니탕이었음. m26 퍼싱도 2차대전때 생산해놓은 걸 어디다가 처박아놓았는지 갑자기 동원하려고 하니 숫자가 부족해서 부대 정문에 상징물 겸 전시물로 놓은 것도 끌어내서 정비한 후 전선에 보내는 웃지못할 일이 발생함.
이런...
미국은 진짜로 한국전쟁에 전혀 준비가 안된 상태였음. 한국전쟁 극초기에 보내놓은 스미스 부대란 것도 일본 주둔한 4개 사단중 그나마 훈련 잘 받은 애들을 급히 차출해서 모아놓은 나름대로 정예부대였는데 거기에 배속될 포병대가 105미리 대전차고폭탄을 요구하니까 딸랑 6발 줌. 그 이유는 급하게 일본 전역의 창고를 뒤졌는데 발견한 105미리 대전차고폭탄이 18발 밖에 없었다는 어이없는 사태가 있었기 때문임.
스미스부대 행적보고 급조된 오합지졸 인줄알았는데 나름 차출된 정예부대였군요..
더 황당한 것은 그나마 그건 개전 극초기였고, 낙동강 방어선이 형성되고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니까 일본 창고에 쌓아놓은 탄약이 고갈되기 시작함. 얼마나 급했는지 원래 천천히 일본 창고에 부족한 탄약을 채우려고 보내놓은 탄약수송선보고 무조건 최고속력으로 달려서 한국에 직접 탄약 전달바람! 하는 메세지 보내고 포병 탄약을 절약하삼 하는 소리를 전선에 보냄. 상황은 말 그대로 최악이었는데 포탄이 부족해져서 포격지원이 줄어드는 똥줄타는 사태가 벌어졌음. 그나마 탄약수송선이 예정보다 일찍 당도해서 문제는 해결...
그 경험때문에 국군이 포탄 보유갯수에 집착하는거려나요..? 심각하네요
사실 일본 주둔 미군의 훈련상태가 한국군보다 그렇게 썩 좋지 않았음. 한국군은 딱 중대훈련까지 했는데 일본 주둔 미군은 딱 대대훈련 시작하려고 검열들어간 시기에 전쟁 터졌거든. 그러니 정예부대라고 해봐야 거기서 거기였음. 게다가 장비도 부족하고 탄약도 풍족하지 않으니 답 없지.
북한이 전쟁각 하나는 기가 맥히게 잡았네요
그래서 초기에 일본에서 한국에 투입된 미군사단 꼴을 보면 일단 부족한 병력과 물자와 장비를 아직 일본에 있는 미군 사단에서 뽑아와서 투입하는 방식을 씀. 그러니 일본에 남아있는 사단은 말 그대로 반신불수가 됨. 이렇게 해서 최후로 남은게 미 제 7사단이었는데 인천상륙작전에 투입하려고 보니 전투력이 1개 연대급이 되버려서 한국에서 막 징집한 한국인 7천명을 넣어서 간신히 사단편제 맞춰서 보냄. 이게 카튜샤의 시초중 하나로 대량투입되었다는 점에서는 처음임.
아하..그런 연유가..
결국 미국이 자기네 사단에 있는 한국인 숫자를 일정 수준으로 줄이고 그 간격을 제대로 된 미군 본토병력으로 채운 것은 인천상륙작전 끝나고 북진작전 시작할 때였고 그나마 이것도 중공군 개입으로 손해가 많아지니까 다시 재편성하느라고 생고생 끝에 그나마 미군다운 편제와 장비를 갖춘것이 1951년 가을 정도가 됨. 그 전에는 임시변통에 한국인까지 넣은 개막장 사단이 바로 미국 사단이었음.
례로 현리전투때 미군 10군단이었나 뭐였나가 까보니까 다 한국인으로 편성되었드만요
그러니까 낙동강 전선이나 북진작전때 미국 사단이 예전의 명성과 달리 약한게 다 이유가 있다고 보면 됨. 병력도 모잘라서 한국인이 30% 포함되서 간신히 편제 맞추고 무기와 장비도 본국에서 창고를 뒤지면서 나오는 거 마구잡이로 받은데다가 정작 쓸만한 무기와 장비는 수량부족. 훈련도도 개판에 세계대전 당시의 경험있는 고참은 고위급 장군 빼면 없다시피하고 전쟁을 직접 경험하지 않은 자가 병사부터 부사관, 중급 장교에 널린 개판이었음.
덤으로 현역과 예비역을 비교하면 예비역이 더 우월할 정도로 당시의 현역의 질도 안좋았음. 특히 일본 주둔병력은 말 그대로 일본 관광이나 하는 조직같이 되버려서 답 없는 집단이 되었지.
아이고..
따라서 낙동강 전선이 뚫리려고 하니까 한반도 포기하고 제주도 정도나 점유하고 있고 한국정부는 제주도나 서사모아로 옮기려는 계획을 세웠고, 중공군 남하해서 서울 날리니까 중공군이 금강선까지 넘으면 역시 한국을 포기한다는 계획 나온게 다 이유가 있는 것임. 완전히 무너지다시피한 미군으 다시 원상태로 돌리는 것도 견적이 안나오는데 급조한 군대를 방어선에 넣어서 방어하니 희생자가 미국이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나왔거든. 이짓거리 하면서 꼭 한국을 지켜야 하나 하는 회의론이 일만 했지.
반전여론이 나올법하네요
참고로 탄약, 그 중에서도 포병 탄약 부족문제는 전선이 교착상태에 빠진 후에도 일어남. 포격으로 불바다 만드는 화해전술로 중공군 막은 건 좋았는데 탄약 조달 비용이 너무 올라가니 미국 정부에서 좀 자제하삼. 예산을 못댐 소리가 나와버렸고 그 이후에는 포격 지원이 풍족하지가 않았음. 고작 한국전쟁으로 또 다시 총력전 돌릴 수 없던게 미국 상황이었음. 미국 국민들도 세계대전 끝난지 몇 년 되었다고 또 다시 세금 많이 내면서 총력전 들어가려고 하지 않았고. 그래서 결국 휴전으로 전쟁이 끝나게 된 것임.
그런 뒷사정이 있었군요..
반전여론이 구체화되지 않은 것만 해도 천만다행이었지. 낙동강 전선에서 8월 공세때 하루만에 미군 사상자가 1만명이 넘으면서 한국전쟁 최고 기록을 달성까지 했는데 그 땐 모두 쉬쉬했거든. 그거 알려지면 군대 빼라고 할 미국 본토 사람이 많았음.
까딱하면 한국 패망의 위기였군요
김일성이가 최후의 낙동강 방어선 뚫기 공세인 9월공세가 실패로 돌아갔음에도 불구하고 서울, 인천에 있는 병력까지 동원해서 낙동강에 쏟아부은게 다 이유가 있던 것임. 조금만 더 하면 뚫릴것 같은데 같은 상황이었음. 물론 그래줘서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했음. 김일성이 뒤늦게서야 낙동강에 추가투입했던 부대 되돌리고 서울에 동원가능한 2선급 부대 처넣으면서 시가전이 엄청났지만 대세를 뒤집기에는 늦었음.
마치 99% 먹었는데 1%가 뭔짓을 해도 안풀려서 다 최전선에 박았다 이거..인가요?
종합하자면 한국전쟁 당시 미국은 전혀 준비안되있었고 기존에 가진 병력, 장비, 물자도 개판으로 관리해서 어디 처박아놓았는지 모르던 개판이었음. 이런 상태에서 한국전쟁에 들어가니 대손해가 나면서 예산도 부족할 수 밖에 없었고, 이는 결국 2번이나 한국 포기하고 한국정부를 제주도 같은데 망명정부 세우게 만드는 계획을 수립하게 함. 그러니 미군 상태도 최악이었고 결국 총력전을 걸 수 없던 상황이라 전선이 교착상태 되면서 휴전된 것이 한국전쟁이라는 것임.
여러가지 복잡한 사정들이 뭉쳤구만요..
그랬음. 8월 공세나 9월 공세 심할 때는 미국이건 한국이건 모든 예비대를 다 써먹고 이제 어딘가에서 전선 뚫리면 끝인 상황이 한두번이 아니었음. 그러니 김일성이가 조금만 더!라고 생각하기 딱 좋았지.
그런거보면 사람 욕심은 다 똑같아요
북진때 맥아더가 생각한 것도 비슷했지. 2차례나 미군 진격한계선 그어놓고 그 위는 한국군만 진격하게 했는데 결국 진격한계선 철폐한 것이 중공군이 개입하긴 한 것 같은데 아직 소수일때 빨리 진격해서 한국전쟁 끝내자가 목표였거든. 그러다가 중공군 인해전술에 개망한거고.
서로가 서로의 치명적 실수를 해서 그 누구의 압도적 승리가 아닌 교착상태로 시마이한거군요
아이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