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련 중 기합을 받거나 배식할 때 교관들이 한결같이 외치는 말이 있다.
“골육지정(骨肉之情)으로 단결하고 행동하랏!”
“전우애는 골육지정이닷!”
서로 피를 나눈 혈육으로 알라는 뜻일 것이다. 교관들의 그런 말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서로 몸을 비비며 골육지정 이상의 정을 쌓아가고 있었다. 누가 시켜서라기보다 어렵고 힘든 때 서로 격려하고 위로했다. 몸이 가까워야 마음도 가깝다는 것을 체험을 통해 알게 됐다. 그러한 마음들이 60년이 다 된 지금까지 변함없이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기합이 워낙 세서 불만의 소리가 높았다. 툭하면 단체기합과 개인기합이 주어졌다. 춥고 배고프고 기합까지 매일 수 차례 받으니 자연스럽게 도망가겠다는 불평도 나왔다. 이런 때면 어떻게 낌새를 알아차렸는지 하사관들이 일제히 병사들을 연병장에 집합시킨다.
“너희들 중에 도망가겠다는 병사가 있나? 그렇다면 끝까지 추적해 군기대(헌병)에 넘겨 영창에 보낼 것이다. 그렇게 되면 호적에 빨간 줄이 쳐져서 평생을 인생 낙오자로 살 것이다.”
새 나라의 초석이 되겠다고 나섰는데 평생 낙오자라니, 생각만 해도 가당치 않는 일이었다. 이를 악물고 나날을 버티자는 의지가 생겼다.
단체기합은 선임하사관들이 주관했다. 청소하기, 부동자세로 서 있기, 완전무장하고 뛰어가며 군가 부르기, 외박금지 등이 있었지만 때로 개울의 얼음을 깨고 찬물에 들어가 목욕하기도 포함됐다.
그러나 분명히 밝힐 것은 가혹하게 굶기기나 치명적인 구타는 없었다는 점이다. 신체에 위해를 가하는 기합이 있을 때는 반드시 예고가 있었다. 구타 등은 개인기합에서 많이 이루어졌는데 주로 선임병들이 실시한다. 그렇더라도 병사에게 미리 예고해 놓고 기합을 준다.
“귀관(병사들에게도 대부분 귀관으로 불렀다)은 청소 부실로 엎드려뻗쳐를 스무 번 실시한다. 알겠나! 실시!”
“귀관은 거짓말을 했기 때문에 빳다(배트) 열대다. 엎드리고 손을 올려라. 실시!”
“귀관은 총검술을 제대로 하지 못했기 때문에 턱주가리 석 대다. 입을 앙다문다, 딱!”
이처럼 미리 말해 놓고 다시금 기합받는 이유를 장황히 설명한다. 이 사이 병사는 기합받을 준비태세를 갖추게 된다. 입을 앙다물고 있을 때 주먹이 날아오는데 몇 대 맞아도 턱이 나가거나 이가 빠져나갈 이유가 없다.
이런 기합은 일본군대에서도 없는 우리 고병(古兵)들의 창작품이라고 한다. 일본군의 기합은 느닷없이 발길질이 들어오고, 감정 섞인 주먹뺨이 날아오는 상당히 악의적이고 야만적인 것인데 국방경비대 시절의 기합은 한마디로 멋이 있었다. 준비된 기합과 약속대로 체벌하고 뒤끝 없이 마무리 짓는 기합은 광복 조국의 군대만이 갖는 동족애의 표현이었다. 그래서 고병들의 창작품이라고 하는 이런 기합도 어느 의미에서 골육지정을 갖게 했다.
예고도 없이 불쑥 주먹이 날아오고 구둣발이 날아와 치명상을 입히는 기합은 교육에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무엇보다 병사의 신체에 결정적 위해를 줄 수 있기 때문에 이런 기합은 금해야 한다.
https://blog.naver.com/steelgun/40148866198
최갑석수기 (625 이전)최갑석 예비역 육군소장·한국전쟁문학회 회장 나는 36년 10개월간 병영의 한복판에 있었던 사람이다. 1947...blog.naver.com내용 출처는 위 서적 내용을 정리한 링크글
해병문학 실사판
턱주가리 세대는 싯팔ㅋㅋㅋ 진짜 암만 회고록이라도 낭만 치사량이네
읽기만 해도 무서움
뭐 이유를 이야기하며 처벌하는 게 신사적이긴 해 ㅋㅋ
창군기에는 그나마 이 정도는 하던 사람들이 70년대 이후부터는 완전히 맛이 가버려서....황군의 후예가 되고 싶었던 게지
턱주가리 석대다. 딱!
12사 최갑석대대 최갑석장군 모신적있는데 노년에도 멋지신분이었다 얼마후 소천하셨지만
미개시대
낭만이 아니라 야만이 맞다..
그니까... 무자비하게 구타하던 걸 교정한 게 명목과 횟수, 시점 고지한 거란 거지? 발전은 했는데... 발전은 했는데...!
턱주가리 석 대, 딱!
자랑이다
기절초풍할 지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