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지웨이 유엔군사령관은 전황을 파악하기 위해 한국전선을 찾은 브래들리 합참의장에게 공산군에 대해 군사적으로 승리를 하기 위해서는 6~7개 사단이 추가적으로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미국 내에서 전쟁은 인기가 없어서 그러한 조치는 불가능했다. 브래들리 합참의장은 미국은 사단을 늘릴 의도가 없음을 리지웨이에게 알렸다. 트루먼 대통령도 한국전을 협상으로 종결한다는 원칙을 세우고 미군의 한국전 목표를 통일정부 수립이 아니라 휴전으로 축소했다. 전선이 38선에서 교착됨에 따라, 미국 정부는 전쟁을 확대하려는 작전 대신에 국지전으로 종결하려 했고 공산 측도 중국군의 4~5차 공세 이후에 막대한 인적 물적 피해를 입으면서 휴전을 모색했다.
그러나 미 군부에서는 중국군을 몰아내지 못한데 대한 아쉬움을 나타냈다. 1953년 테일러 중장과 교체된 밴 플리트 제8군 사령관은 1951년 봄에 적을 패배시키는 것이 가능했으나 트루먼 정부가 38선 이북의 진격을 제한했기 때문에 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우리의 반격은 중공군에게 큰 타격을 주고 있다. 우리는 이 성공적인 진격을 계속하는 것이 가능했지만, 그것은 워싱턴의 생각은 아니었다. 국무부와 유첸 측은 38선에서 문제를 해결할 용의가 있다는 것을 이미 공산측에 암시하고 있었다. 공격작전을 받을 수 없었고,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의 행동은 점점 제한되어 갔다"고 불만을 드러냈다.
출처- 한반도 분쟁과 중국의 개입, 선인, 한국정치외교사학회, 2012년, 159쪽
맹조의 발톱...
39도 선만 먹었어도
그 정도만 되어도 중공이나 소련 입장에선 북한이 거의 계륵같은 존재가 되어버리니 김일성에 대한 군사지원 확 쪼그라들었을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