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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공군이 몰려오니 5, 7사단은 그걸 방어하지 못하고 밀려났고 (물론 12개 사단이 몰려와서 그건 그렇다 칠 수 있는데)

그거 때문에 3, 9사단이 포위를 우려해 현리로 후퇴를 했는데 문제는 거기서 하루 죽치고 있다가 포위망 돌파 작전을 하기 직전 30연대가 갑자기 단체로 적전도주를 하기시작했고 그걸 본 다른 부대들도 모랄빵나서 단체로 무질서한 도주를 하기 시작해 3군단 전체가 전투 한번 없이 와해되어버림.


그렇게 중장비를 모두 버리고 정신없이 도주하던 병력이 겨우 수습된 곳이 하진부리였는데 수습된 병력은 총 병력의 37%.


밴플리트는 제3보병사단을 파견하면서 진짜 여기서 더 밀리면 안된다고 절대사수명령을 내렸는데 하루만에 3군단이 패주해버림.


결국 밴플리트는 국군 3군단을 해체해버림.


이렇게 하나의 전투에서 3군단이 해체되기까지 걸린 시간은 고작 1주일 밖에 되지않음.


625 초기 국군은 끔찍할정도로 무능하고 나약하기 짝이 없는 집단이었음. 물론 현리전투는 국군의 밑바닥을 보여준 특별히 더 못 싸운 전투였지만 국군이 와해되어 미군의 측면을 노출시키는 전개는 이 전투에서만 보여준 모습이 아닌, 중공군이 처음 침공한 청천강 전투에서부터 반복적으로 보여줬고 그게 반복되니까 결국 미군은 3군단을 해체하고 국군 야전병력에게 직접 명령을 내리게 된 것이지.


근데 이게 625 전쟁이 어느정도 진행돼서 병력의 숙련도가 그나마 나아진 수준이 이거였다면 믿어지냐?


625초기 국군은 더 끔찍했는데 신병 훈련시간은 2~3일 수준이라 신병이 자기 소총을 장전할 줄 몰라서 전투중에 선임한테 장전해달라고 하는 수준의 훈련도를 자랑했음.


만약 이런 군대를 이끌어 지연전이라도 펼치는게 가능한 사람이 있다면 그건 평범함을 넘어선거임.


그리고 만약 이런 군대로 중공군의 공세를 저지했다? 그건 말할것도 없이 명장인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