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cf08076b68068ff23ef84e05b81746d348258cbc3a9bcb92c25d89f2c16496c654d


김홍일의 전기소설을 쓴 박경석 장군에 따르면, 김홍일은 전범으로 처형당한 홍사익 중장이 상당히 억울한 죽음을 맞았다고 생각했던 듯함.

1942년 홍사익이 만주에 있었을 때 현지 조선인들이 접근해 그를 중심으로 일본에 저항하려 했고, 그 때문에 일본이 보복성 인사조치로 포로수용소장으로 발령냈다고 생각했다나.

여기에는 당시 매일신보 기자였던 김을한이 해방 이후 김홍일에게 들려준 이야기가 좀 크게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임.

김을한은 1942년에 홍사익을 만나 광복군행을 권유했지만, 홍사익은 그러면 일본이 남은 조선인들에게 보복할 것이라면서 그 제안을 거절했다 함

김홍일은 김을한이 해준 이야기를 듣고는 홍사익이 조선인들을 지키기 위해 제발로 사지로 걸어들어갔다고 여겼던듯.

홍사익이 창씨개명을 거부했던 사실도 김홍일이 이리 생각하는 데 영향을 끼친 듯함


078bfd2dcdc31da15fbd809e22e4256980dd68488c7af243cfca5bc399c96ca205d888100e9b21ab533a5562688e64608ae27ecdd90a9b284b7912aebd6a9411f2775c45e154b2


뭐랄까...
쉽게 동조하긴 힘든 주장이긴 한데 일단 김홍일 본인은 그리 생각한듯함.

박경석 준장의 말이 맞다면 말이지.



출처
오성장군 김홍일(1984)

- dc official 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