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일의 전기소설을 쓴 박경석 장군에 따르면, 김홍일은 전범으로 처형당한 홍사익 중장이 상당히 억울한 죽음을 맞았다고 생각했던 듯함.
1942년 홍사익이 만주에 있었을 때 현지 조선인들이 접근해 그를 중심으로 일본에 저항하려 했고, 그 때문에 일본이 보복성 인사조치로 포로수용소장으로 발령냈다고 생각했다나.
여기에는 당시 매일신보 기자였던 김을한이 해방 이후 김홍일에게 들려준 이야기가 좀 크게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임.
김을한은 1942년에 홍사익을 만나 광복군행을 권유했지만, 홍사익은 그러면 일본이 남은 조선인들에게 보복할 것이라면서 그 제안을 거절했다 함
김홍일은 김을한이 해준 이야기를 듣고는 홍사익이 조선인들을 지키기 위해 제발로 사지로 걸어들어갔다고 여겼던듯.
홍사익이 창씨개명을 거부했던 사실도 김홍일이 이리 생각하는 데 영향을 끼친 듯함
뭐랄까...
쉽게 동조하긴 힘든 주장이긴 한데 일단 김홍일 본인은 그리 생각한듯함.
박경석 준장의 말이 맞다면 말이지.
출처
오성장군 김홍일(1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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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리어 보면 ㄹㅇ 일제경력만 빼고 보면 그리 나쁜 사람같아보이지 않은 사람... - dc App
홍사익? - dc App
@HK885 ㅇㅇ - dc App
@ISAYONEWHICH 개인은 솔직히 복잡하긴 한데 결국 포로수용소 관리 실패 책임이 명백해서 개인적으로는 동정은 안감 - dc App
홍사익 커리어에서 일제 경력 빼면 대체 뭐가 남지
@알카시르 낫띵... - dc App
여러모로 연구가 필요한 인물이라고 생각함. 본인 생각으로는 독립은 쉽지 않으니 일본의 주요 요직에 조선인의 정체성을 가진 조선인이 자리하여 조선의 최대 자치를 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생각하고 해서 창씨개명도 안하고 할 수 있는건 최대한 했었다고는 하는데. 여러모로 애매한 사람임 - dc App
복잡하긴 해 ㄹㅇ - dc App
굴복, 순응, 투쟁, 타협 이렇게 나뉜듯 일제에 굴복하자 독립이 어려움에 순응하되, 일제의 요직에 진출하여서 조선인의 정체성을 지키자 아니다 무조건 투쟁 또 투쟁 뿐 현실과 이상에 타협하여 조선인의 문화와 정체성을 지켜나가 굴복하되, 정신적으로는 무너지지 말자
그 당시 강제로 징병 당한 사람들은 사실상 총만 든 인질 아니었을까?
그렇게 볼 수도 있긴하지 - dc 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