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들은 방어목적으로 대개 접근이 어려운 곳에 세워진 봉건요새에서 살았는데 접근이 어렵다는건 아군의 접근도 어렵다는 뜻임. 그런 요새에서 엄청난 양의 식량을 보급받았기 때문에 기사들의 생활비에는 값비싼 장비비용과 요새운영비가 포함되었음.
기사들의 삶은 절제와 충성으로 이루어져 있었고, 사회적 행동규범이 기사의 가치관을 결정했음. 절제와 결의에 대한 충성, 자기 기율이 이 두가지 미덕을 포괄함.
약자를 보호하고 상대에게 관용을 베푸는 기사의 태도는 기사라는 사회적 신분과 위대한 전사로의 기사가 소멸된 뒤에도 하나의 이상으로서, 그리고 사회적 관례로 남았음. 기사의 모범에 따라서 시민과 아내들은 군주와 귀부인으로 행동했으며 의상과 풍습에서 기사의 이상을 지향함은 근대에 이르기까지 이어짐.
기사의 군사적 가치는 시대가 흐르면서 줄어들었고, 정복하기 힘든 곳에 세워진 요새들은 오랫동안 난공불락으로 보였지만 대포와 폭약의 힘으로 쉽게 정복되었음. 게다가 그 요새들은 거주장소로서의 가치가 없어 미련없이 포기된 것으로 보임.
낭만주의자들은 주인이 버린 폐허를 보며 성에서의 삶을 "당당하고 대담하다."고 노래했만 그건 우수에 가득차서 그리는 목가적인 풍경이었음. 좁은 탑, 겨울의 끔찍한 추위, 식량공급(대부분의 성들은 공격이 아니라 굶주림에 의해 함락되었음), 건물의 끊임없는 보수등은 아주 괴로웠기 때문임.
역사가 아르노 보르스트는 성에서 지내는 기사의 일상을 이렇게 서술했는데
"탑에서의 생활은 시끄러운 소음속에서 이루어졌다. 긴 벤치에 바싹 붙어앉아 사발에 든 고기를 손으로 집어먹고, 떨어진 것은 개들이 먹거나 차가운 바닥을 덮은 짚속으로 떨어졌다. 그 주인들은 대부분 책을 읽고 글을 쓸 수 없었다. 고작해야 사람을 불러 이야기를 낭독하게 했다. 그들이 소망하던대로 힘이 세고 대담무쌍하고 끝도 없는 식욕과 성욕을 가진 영웅 이야기였다. 경건하기보다는 오히려 미신적이었다. 여자들은 존중받지 못하고 많이 얻어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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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신 중세의 성문화 보고가세여
님 중세시대에 되게 관심이 많은가 보네요
지금 설치는 예준이나 잡는게 우선일듯
원한건 이 성문화가 아닌데
군대에서도 중세 이야기로 야부리털고.. 혹시 계기가 뭔가요?
에뷔나 잡는게 좋을듯
성문화? ᆢㅗㅜㅑᆢ - dc 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