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의 저자 피터 힙 경은 1992년부터 1995년까지 브라질 주재 영국 대사였음. 외교관으로 36년 동안 근무하는 동안 그는 바하마 주재 고등판무관과 홍콩 주재 무역사무관을 역임했음.

 

 

이 글은 20033월 미국과 영국 주도 연합군의 이라크 침공 후 반년이 지난 시점에서 피터 힙 경이 영국 언론 더 가디언에 기고한 오피니언으로, 당시는 토니 블레어 내각이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WMD) 역량에 대한 정보를 과장했다는 BBC의 보도의 진실성과 BBC가 해당 보도에서 인용한 익명의 소식통인 데이비드 켈리 박사의 자살사건에 대해 브라이언 허튼 대법관이 주도하는 진상조사인 허튼 조사(Hutton Inquiry) 가 한창이었음.

 

 

참고로, 피터 경이 오랫동안 근무한 영국 외무부는 형식상 해외정보기관 MI6와 신호정보기관 GCHQ의 상위 조직이고 그 장관이 이 둘을 감독하고 있음. 그리고 이 글을 읽으면서 알 수도 있겠지만 해외 공관에서 MI6와 외교관들은 기본적으로 한집살이하는 신세임. 따라서 이런 사실을 알고 읽으면 왜 직업 외교관이 정보기관들에 대해 코멘트를 남기는 건지 이해할 수 있을 것임.

 

 

* * *

 

 

MI6의 외양 뒤에 숨겨진 진실

 

Peter Heap

 

<정부는 정보가 종종 이기적인 가십이거나 그저 명백히 잘못된 사실임을 인식해야 한다.>

 

 

허튼 조사는 정부 내 누구도 이라크의 위협에 대해 국민을 심각하게 오도하려는 의도가 없었다는 결론을 내릴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그렇다면 이제 초점은 진짜 쟁점, 즉 왜 정부가 이라크가 위협이 된다고 판단했는지, 그리고 그런 판단을 내림으로서 전쟁을 정당화했는지를 따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장관들이 너무 쉽게 액면 그대로 받아들인 정보 자료의 낮은 질에 대한 논의로 이어져야 한다.

 

 

나는 전쟁의 근거를 뒷받침하기 위해 사용된 부정확한 데이터가 단순한 일탈적인 사례였다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정보 수집 시스템 전체가 자주 부실하고, 신뢰할 수 없으며, 왜곡된 평가를 만들어내기 쉽고, 이는 종종 막대한 대가를 치르게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허튼 조사에서만큼 정보 자료가 정부가 다른 경로로 받는 정보와 동일한 수준의 정밀 검토, 입증, 시험을 거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물론, 정보 수집에는 당연히 진정한 비밀이 따를 수밖에 없지만, 그 모든 과정이 불필요한 비밀주의, 신비주의, 위험성과 같은 분위기에 둘러싸여 있어 정보기관 외부의 사람들이 그들이 생산하는 정보에 대해 정상적이고 엄격한 판단을 적용하지 못하도록 한다.

 

 

예를 들어, MI6 국장 리처드 디어러브 경이 허튼 조사에서 전화로 증언을 했어야 하는 이유를 알기 어렵다. 모두가 그의 이름과 그가 어떤 일을 하는지 알고 있다. 심지어 그의 본부도 런던 의회당 못지않게 잘 알려져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조사에 등장한 방식은 국가 안보를 보호한다는 명목보다는 그의 신비감만 더 강화시켰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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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tGPT로 생성한 이미지)


36년에 걸쳐 9개국의 해외 공관에서 외교관으로 근무하면서 나는 MI6의 활동을 여러 차례 목격했다. 그들은 내가 근무했던 거의 대부분의 외교 공관에 파견되어 있었다. 그들은 스스로를 직업 외교관처럼 소개했지만, 실상은 전혀 다른 부류였다. 현지의 영국 교민 사회도 몇 주 만에 MI6 공작관들을 찾아낼 수 있었다.

 

그들은 대사관에서 열리는 사교 행사에서저기 저 분은 그쪽 스파이네요.”라고 말하곤 했다. 그러면 우리는스파이라니, 무슨 스파이요?” 라고 대답했다. “텔레비전을 너무 많이 보셨나 보군요.” 그러나 교민들의 추측은 대개 정확했다.

 

 

어떤 나라의 수도의 우리 대사관에서는 MI6 공작관들만 거의 항상 정장을 입지 않고 근무했다. 우리는 왜 정장을 입지 않는 건가요?” 라고 물었다. 그들은 수도를 벗어나 접선 상대를 만나러 갈 때 정장을 입으면 더 눈에 띄기 때문이죠,” 라고 대답을 했다. 하지만 정작 그들은 수도 안에서도 이미 꽤 눈에 띄는 존재였다.

 

현지 교민 사회가 몇 주 만에 그들의 진짜 신분을 알아챌 정도면, 적대적인 정보기관이라면 몇 시간 안에 그들이 누군지 파악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름까지는 몰라도 말이다.

 

 

MI6 공작관들의 역할은 정보원들을 개발하는 것이었다. 이들은 종종 현지 정부 기관에서 일하는 사람들이었지만, 꼭 그런 경우만은 아니었다. 정보원들은 자신이 제공하는 정보에 대해 대개 현금으로 보수를 받았다. 대사들은 물론이고 MI6 밖의 사람들 대부분은 이 정보원들이 얼마를 받는지 전혀 몰랐다.

 

대사관 내 MI6 지부는 대사를 포함한 다른 공관 직원들과는 별개로, 그리고 비밀리에 운영되며 독립적인 예산을 사용한다. 그 금액은 넉넉하고 현금으로 지급되는 듯했다. MI6가 정보원의 자녀들의 영국 기숙학교 학비를 직접 대신 내주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도 있다.

 

이처럼 정보원이 특정한 보수에 의존하게 되면, 더 많은 가치를 인정받기 위해 보고 내용을 과장할 유혹이 커진다. 그리고 애초에 자신의 나라나 고용주를 배신하는 이들이 우리에게도 충성할 것이라는 보장은 없으므로, 그들의 신뢰성과 진정한 이해관계를 판단하기 어려웠다.

 

 

현지 MI6 공작관들 역시 자신이 접촉하는 정보원의 신뢰도나 중요성을 과장하고 싶어할 만한 이유를 갖고 있었다. 대사나 외교관들도 MI6가 런던 본부에 보내는 정보 보고서를 보거나 이에 대한 견해를 밝힐 수 있었지만, 그 보고를 막거나, 수정하거나, 혹은 정보원의 신원을 알 수도 없었다.

 

 

정보기관들은 늘확립되고 신뢰할 수 있는 보고 계통이나 신뢰할 수 있고 안정적인 출처라던가, “대통령과 가까운 출처”, 또는 내각 장관들과 정기적으로 접촉할 수 있는 출처같은 표현을 사용한다.

 

MI6 지부장이자 합동정보위원회(JIC) 의장 존 스칼렛은 이라크가 45분 안에 대량살상무기를 발사할 수 있다는 주장에 대한 출처를 허튼 조사 위원회에서 이런 표현으로 설명했다. 토니 블레어 총리도 하원에서 그와 같은 표현을 사용했다.

 

그러나 그런 출처와 가까운 자리에서 일하거나 그의 실명을 아는 사람일지도 모를 대사들, 혹은 보고를 받게 될 고위 관리나 장관들은 그들의 신원에 대해 알지 못한다. “대통령과 가까운 출처의 보고라고 할 때 그 출처가 부통령인지, 관저의 하인인지, 혹은 대통령과 가끔 점심을 같이 먹는 사람인지를 안다면, 보고의 가치에 대한 평가는 완전히 달라질 것이다.

 

 

어느 때는, 내가 부대사로 근무하던 대사관의 대사가 MI6 공작관이 런던에 보낸 비밀 CX 보고서[낱첩보를 기술하는 보고서]를 내게 던지듯 내민 적이 있었다. 그는 그 내용이 눈에 익지 않느냐고 물었다.

 

나는 어디서 본 듯하지만 정확히는 기억나지 않는다고 대답했다. “왜냐면,” 이라고 말하며, 대사는 전날 자 현지 신문 기사를 내게 주었다. 두 내용은 문구와 내용이 거의 동일했다.

 

 

MI6 공작관이 불려왔고 처음엔 관련성을 부인했지만, 자신의 보고서의 출처를 잘 배치된 정보원이라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자신의 입장을 더 이상 방어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했다. 대사는 현지 신문 기사들을 출처로 하는 보고서 작성에는 반대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건 대사관의 대부분의 부서에서 하는 평범한 일이다고 했다.

 

하지만 그럴 경우 우리는 보통 보고서를 unclassified 등급으로 보내며, 참고한 신문도 명시한다. 대사는 MI6 공작관에게, 왜 보고서의 출처를 다르게 주장하고 높은 기밀 등급을 매겼는지 물었다. “왜냐면,” 그가 대답했다. “unclassified 등급으로 보냈다면 저희가 어떤 문제에 관심이 있는지 다른 사람들이 알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 사건은, 사실상 별 가치 없는 정보를 부풀려 중요한 것처럼 포장한요즘 말로 하면섹시하게 포장한”—극단적인 사례였다. 하지만 실제로 MI6 채널로 올라가는 보고 중에서 대사관의 정무과나 경제과에서는 아예 거들떠보지도 않을 가십거리나 잡담거리를 자주 발견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런사실 정보들은 알려진 사실과 너무 자주 상충했기 때문에 우리는 신뢰도가 거의 없거나 전혀 없다고 여겼다.

 

 

그렇다고 위의 사례들이 정보기관이 전혀 쓸모없다고 하는 것은 아니다. 분명히 그들은 필요하다. 많은 헌신적이고 유능한 인력들이 다른 방법으로는 얻을 수 없는 가치 있는 정보를 제공한다. 하지만 그 곡물 사이에는 늘 많은 쭉정이들이 섞여 있고, 정보기관의 업무 방식은 그 둘을 구별하기 매우 어렵게 만든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보고에 기반하여 수많은 생명이 걸린 중대한 정책 결정을 내리는 것은 아주 위험한 일이다. CX 표지와 높은 기밀 등급이 붙은 정보 보고서는 그에 걸맞은 것 보다 훨씬 중요하고 진지한 의미를 갖게 되기 쉽다.

 

나는 다우닝 가 10번지[영국 총리 집무실]의 어떤 이도, 사담 후세인이 45분 내에 대량살상무기를 발사할 수 있다는 정보 보고서를 처음 접했을 때, 다음과 같은 질문을 했는지 의심스럽다. “그 정보를 보고한 사람은 정확히 누구인가? 그자는 정보 제공의 대가로 무엇을 받았는가? 그는 어떤 직책을 맡고 있고, 실제로 어디까지의 정보에 접근 가능한가? 이전에 제공한 어떤 정보가 그를 신뢰할 수 있는 정보원으로 만들었는가?”

 

만약 이런 질문에 대한 대답이 그럴듯했다 하더라도, 블레어 총리는 그 정보가 정책에 반영되기 전에 추가적으로 뒷받침하는 증거를 요구했어야 한다.

 

나는 정보기관들이 그런 질문을 받았더라도, 아마 정보원의 신뢰도나 알아야 할 필요에 따른 기준[need-to-know basis]”의 정도가 만족할 만한 수준이며 생명이 위험에 처해 있다는 강한 암시와 함께 자신들의 답변을 신뢰해야 한다고만 답변했을 거라 추측한다.

 

 

정보의 또 다른 주요 출처도 더 낫진 않다: 첼트넘의 GCHQ가 수집하고 배포하는 전화통화의 전자 감청과 무선 감청이다. 그들이 수집하는 정보가 가진 문제는 방대한 양과 정보 출처의 식별이 어려운 점이며, 그래서 그 가치도 평가하기가 어렵다.

 

런던에서 전쟁 중인 국가들을 담당하는 외무부 데스크에서 두 차례 근무한 적이 있는 나는, 어떤 일이 일어날 지를 정확하게 예측한 수많은 감청 자료를 받아볼 수 있었다. 그러나 사건을 잘못 예측하는 다른 감청 보고서들이 무수히 많았기 때문에, 사전에 어떤 정보가 맞고 어떤 정보가 틀렸는지 구별할 수 없었다. 게다가, 감청 활동은 일반적으로 상당히 무작위적이었고 계획대로 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우리는 어떤 국가, “A의 수도에서, 이웃 국가 “B정부의 대표팀과 협상을 진행하는 업무를 맡았다. B국은 접근이 어렵고 그곳에 우리의 보안 통신 인프라가 없었기 때문에 협상은 A국에서 열렸다. 우리 대사관의 정보기관 공작관은 그의 전략에 상당히 흥분했다. 그는 그들이 상대편이 본국 수도에 보내는 모든 통신을 감청하여 그들의 협상 포지션에 대한 모든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단하군요, 우리가 말했다. 민감한 군사 조약에 관한 그 협상은 수개월 동안 이어졌다. 우리는 상대를 매주 만나며, 그들로 하여금 새 지침을 본국에서 받아올 시간을 충분히 주었다. 그러나 그동안 정보기관 공작관은 아무 말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적잖게 신이 난 눈빛으로 우리에게 줄 무언가가 있다고 알렸다.

 

그는 B국 협상팀이 본국에 보낸 통신을 그의 기관이 감청하였다고 말했다. 그러나 감청 자료가 해독되고 번역되자 그것은 놀랍게도 바로 내가 작성하고 우리가 최근 회의에서 제시했던 말 한 단락이 상대편의 견해나 해석이 아주 조금도 담기지 않은 채로 보내진 글이었다! 그것은 협상과 관련하여 우리가 정보기관으로부터 받은 유일한 감청 자료였다.

 

 

어떤 정보기관으로부터 받은 정보도 철저히 검증되고 이의 제기를 받아야 한다. 그것은 물론 모든 관련 부처들의 대표들로 구성되어 있지만, 정보기관이 이끌고 정보기관의 많은 영향을 받는 JIC의 몫이다.

 

내 판단에 따르면, 이는 정보 데이터를 철저히 검토하기에 충분하지 않은 수단이다. 장관들과 의회는 정보기관과 그들의 방법론을 훨씬 더 깊이, 더 비판적으로 들여다봐야 하며, 그 다음에는 그들의 정보를 신중하고 제한적으로 사용해야 한다.

 

 

대량살상무기가 존재하지 않고 아마도 상당 기간 동안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사실이 점점 더 분명해질 때에도 정보 커뮤니티가 대량살상무기의 존재에 대한 확실한 증거가 있다고 설득하는 것은 결코 사소한 실수가 아니다.



원글 출처: https://www.theguardian.com/politics/2003/oct/02/davidkelly.med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