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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위대랑 국방군, 질서경찰의 협력체계를 잘 보여주는 건 1941년의 모길료프 회의임. 1990년대 국방군 전시회에서 '공포의 학교(Schule des Terrors)'로 불렸음.

이 회의는 1941년 9월 24일 중부집단군 사령부에서 열렸음. 중부집단군 후방지역사령관 막스 폰 솅켄도르프(Max von Schenkendorff) 대장(사진) 및 그 참모진 외에도

특무대 B 지휘관 아르투어 네베, 벨라루스 친위대 및 경찰지도자 에리히 폰 뎀 바흐-첼레프스키, 무장친위대 기병여단장 헤르만 페겔라인 등등이 참석함

친위대와 질서경찰 인사들은 중부집단군 후방지역사령부에 파르티잔 진압(실상은 학살) 방법에 대해서 열심히 강의를 해주었음.

다음 날인 9월 25일, 이들은 다같이 인근의 마을로 가서 시범식 교육을 참관함. 질서경찰 322전투대대가 크냐지치 마을을 포위하고 파르티잔을 색출했고, 아무 혐의자가 나오지 않았음에도 32명을 처형했음.

이후 솅켄도르프는 대파르티잔 전투 방식에 대한 보고서를 상부에 제출했고 이건 병참감 에두아르트 바그너 대장 및 육군최고사령관 브라우히치 원수에게도 전달됨. 브라우히치는 아예 이걸 기본방침으로 채택함

이후 솅켄도르프는 계속 중부집단군의 후방지역사령관으로 근무하면서 국방군 내 최고의 대반란전 전문가로 대우받다가

1943년 7월 심장마비로 사망, 저승으로 기동방어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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