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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병 제47연대 제3대대 오이시(大石) 曹長-二十日洞(原州의 서북 5리) 부근에서의 전투

9월 22일 원주 지대장 시모바야시(下林) 소좌는 다음 명령을 내렸다.

古毛谷面 二十日洞(原州의 서북 약 5리) 일진회원이 와서 한 보고에 의하면, 자칭 대장이라는 김모 이하 폭도 약 20명이 이곳에 와서 격문을 붙이고 병사를 모집중이라고 한다. 오이시(大石) 曹長은 졸 10명을 거느리고 警務보조원 6명과 동행하여 二十日洞 부근의 폭도를 도벌할 것

이 명령에 따라 오이시 조장은 오후 11시 10분에 원주를 출발하여 九邑村을 거쳐 오전 4시 50분에 砂節里에 도착하여 金大有(자칭 대장)의 집을 습격하였으나 집에 없어서 그 가족을 포박하여 심문하였다. 그 전날인 21일에 二十日洞에 갔고 전날 二十日洞에서 의병 30명이 왔다고 하여 그 가족을 동행하고 二十日洞으로 급히 갔다. 오전 6시에 그곳에 도착하여 동네사람에게 의병 30명이 동장의 집과 그 부근에 숙영하고 있다는 보고를 접하고 즉시 이를 습격하려 하니 보초인 듯한 자가 “일본병사가 왔다.”고 보고하면서 동남쪽으로 도주하였다. 이어서 폭도 약 18명이 구식총을 들고 도주하는 것을 보고 이를 추격하여 횡성 방향으로 격퇴하였다. 그 후 촌락을 수색하여 폭도 1명을 잡았으며 얼마 후 金大有와 폭도 1명이 온 것을 발견하고 이를 포박하여 귀환하는 도중에 도주를 꾀하여서 이를 척살하였다.

적의 사망 5, 우리 쪽 사상자 없음.
노획품 구식총 1, 배낭 1, 물통 1 사격 소모탄 17





'도주를 꾀하여 참살'

진짜로 포로가 도망치려 해서 죽인 경우도 있겠지만, 그렇다기에는 지나치게 많이 언급됨.

그리고 참살 및 척살이라는 표현이 사용된 것, 실제로 포로들의 사인 중 칼에 의한 자상이 많은 것을 보면 꿇려놓고 목을 쳤을 가능성이 높음.

다시 말해 부대 이동에 방해가 되는 포로를 베어 죽이고 보고서에는 그 이유를 대충 둘러댄 것으로 파악됨. 이 경우 당연히 학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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