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어: 클로드 란츠만. 이텔릭체로 표기함.
인터뷰이: 친위대 하사 프란츠 주호멜. 트레블링카 절멸수용소 간수로, 전후 란츠만 감독에게 트레블링카가 어땠는지 증언함.
(3분 40초부터)
...그러니까 일단 트레블링카에 도착하셨죠.
도착하니까 슈타디라는 담당 보좌관이
수용소를 보여주더라고요. 처음부터 끝까지 전부 다요.
마침 우리가 지나갈 때 가스실 문을 여는 중이었는데...
사람들이 감자처럼 우수수 쏟아지는 거예요.
우리는 당연히 공포와 충격에 빠졌죠.
그렇게 돌아와서는 각자 가지고 온 여행 가방 위에 앉아
모두 노인네처럼 흐느꼈어요.
유대인 중에서 매일 100명씩 선발해서
구덩이까지 시체를 끌고 가는 일을 시켰어요.
저녁이 되면 우크라이나 경비들이
그 사람들을 가스실로 밀어 넣거나 때려죽였고요.
하루도 빠지지 않고요.
8월이라 무더위가 한창이었습니다.
땅에서는 아지랑이가 파도처럼 일렁거렸죠. 가스 때문에요.
시체에서 나오는 가스 말입니까?
생각해 보세요.
대략 6~7 미터 정도 되는 구덩이가
전부 시체로 꽉 채워져 있었습니다.
그 위에는 모래만 얇게 덮여 있었고요.
거기다가 덥기까지 했으니 이해가 가시죠?
지옥이 따로 없더라고요.
직접 목격하신 건가요?
네, 딱 한 번 첫째 날에요. 다들 구역질하면서 울었어요.
우셨다고요?
네. 울기도 했죠.
몸서리가 쳐질 정도로 악취가 지독했어요.
수 킬로미터씩이나요?
네, 수 킬로미터 떨어진 곳까지요.
사방에서 냄새가 났습니까? 수용소 밖에서도?
어딜 가나 났죠. 바람에 따라 달랐어요.
냄새가 바람을 타고 이동했으니까요.
무슨 말인지 아시겠습니까?
도착하는 사람들 숫자가 점점 더 늘어났습니다.
그 많은 사람을 다 죽이는 게
불가능하다고 생각될 정도로 말이죠.
위에서는 바르샤바 게토를 가능한 한
빨리 정리하고 싶어 했거든요.
반면 가스실에 수용할 수 있는 인원은
굉장히 제한적이었습니다. 규모가 작았거든요.
유대인들은 자기 차례가 올 때까지
하루에서 이틀, 어떤 때는 사흘까지 기다려야 했습니다.
자기들에게 닥칠 일을 예감하고 있었겠죠.
짐작하고 있었을 겁니다.
아마도 확신까지는 못했지만
많은 사람이 알고 있었을 겁니다.
예를 들면, 밤중에 자기 딸의 손목을 긋고
이어서 자기 손목까지도 그어버리는 여자들이 있었습니다.
스스로 독을 삼키는 사람들도 있었고요.
당시 주호멜은 익명을 조건으로 란츠만의 인터뷰에 응했었음.
하지만 란츠만은 약속을 씹고 인터뷰 장소인 브라우나우암인의 호텔에 카메라를 들여와 대화를 녹화했고 이 중 일부를 '쇼아'에 실어 세상에 까버림.
이 때문에 란츠만은 일각으로부터 아무리 상대가 나치전범새끼라 해도 인터뷰 윤리를 저버린 것이 아니냐며 비판을 받기도 했었음.
다만 주호멜은 인터뷰 3년 후, 쇼아 개봉 6년전인 1979년에 사망했기 때문에 자기가 녹화되었는지는 몰랐을 것임
출처: 클로드 란츠만, <쇼아>
참고글
- dc official App
그래도 주근다음 깟네
그러게 - dc App
진짜 미쳤... - dc App
ㄹㅇ - dc App
트레블링카가 아유슈비츠보다 사망률 높은데도 증거 다 파기돼서 안 유명하던가
ㅇㅇ 그래도 베우제츠보다는 잘 알려진 편임. 거긴 들어간 60만명 중 딱 7명 살아나옴 헤움노는 20만 중 딱 2명 살아남았고 - dc App
더 막장인 곳도 많은데 거긴 생존자들이 거의 없어서... - dc App
@HK885 허거걱
문제는 저랬던 사람도 점점 익숙해져갔지 않나?
그랬을거임 - dc App
인터뷰한놈이 유명한 쇼아 감독이구만 - dc App
ㅇㅇ 란츠만 - dc 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