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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손초> 나 <쌍두독수리의 몰락> 으로 유명한 존 쉰들러의 <희망 없는 저항> 발췌 요약함. 트위터에서 회첸도르프빠 군주주의자 오스트리아 연방군놈이랑 키배 뜨는거 직관한 적있는데 저서도 그렇고 꽤 비판적인 접근하는 양반.





1. 브루실로프 이전 동맹군이 러시아군 쳐바르고 약 반년 간 소강 상태가 되면서 16년 중순까지 오헝군은 군을 정비할 시간을 가짐




2. 16년 1월 기준으로 오헝군은 이미 약 280만의 대군을 유지하고 있었고, 이중 144만이 동부에 있었음. 근데 군이 너무 비대해지다보니 점점 인력이 부족해지는 제국 전시 민간 산업이랑 경쟁이 좀 붙음.




3. 군이 전시 체제에 대한 전반적인 통제권을 갖추고 있긴 했지만 인력 관련해서 타협을 찾는데 어려움을 겪었고, 결국 산업의 인력 문제 증가로 추가 징집한 30만 중 11만이 경제 붕괴를 막기 위해 민간으로 복귀.



4. 대신 오헝 최고 사령부는 후방 근무만 하던 18세들을 전선으로 보내고, 3선급 보충군인 란트슈튜름에 17세를 징병하기 시작함. 아마 숙련공들은 놔두고 더 어린 애들까지 징병 연령을 낮춘 느낌?



5. 덕분에 16년 첫 분기 동안 오헝군은 전선 부대들을 완편 편제 혹은 보강 편제를 유지하기 위한 March 대대들 (일종의 특수 편제 보충대)을 연대 당 5개씩 보내 줄 수 있었음.



독일군 젝트 장군의 평가?



6. 14년 갈리치아 전역과 15년 카르파티아, 고를리체를 겪으면서 살아남은 오헝군 부대들은 유능한 전투 기계들로 여전히 남아있었음.



7. 합스부르크 병사들 대다수가 농민 농노 출신으로 체력 좋고 노동과 복종에 익숙해 뛰어난 병사들로 평가.



8. 또한 합스부르크군 무기나 장비에 대해서는 일선급이라고 평가함.



9. 하지만 전반적으로 훈련 상태가 좋지 못해 전쟁 기준에는 불충분했고, 장교진은 어설프거나 지나치게 도식적이라서 독립적인 사고가 부족했음.



10. 특히 군 행정이 열악하여 장비 유지나 지급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경우가 있다고 지적함.



(역주 : 다만 헝가리 즈리니 국방대 발칸 전역 연구에선 오헝 보급을 강점으로 꼽아서 후대 연구 관련해선 관점 차가 있거나 지역마다 편차가 있었던 듯?)





11. 합스부르크군은 15~16년 동안 전훈을 반영하여 조직, 무기, 전술적인 부분에서 개선됨.



12. 다만 기존에 유지한 60개 사단과 11개 기병사단에서 사단급 부대가 크게 늘어나진 않고, 각 사단이 배치된 전역 환경에 대응하여 이것저것 편제 변화가 많이 이루어진 듯.




13. 보병대의 경우엔 신규 연대 창설보다는 본래 3개 대대 - 1개 연대 편제에 2개 대대가 추가되어 1개 연대 당 5개 대대 규모로 증설됨. 또한 개전 초기 1,000명 규모에 기관총 2정 뿐이던 보병대대는 16년 중반쯤 되면 다양한 직사화기와 간접화기로 무장한 복합적인 형태로 진화함.




14. 중대급에선 수류탄과 총류탄이 대량 보급되었고, 대대급에는 기관총이 4정씩 배치되며 2배로 화력이 증강됨. 연대급에선 9cm 박격포 2문과 경박격포 2문, 37mm 보병포 2문이 추가됨. 사단급에선 공병대가 운용하는 12cm 및 22cm 박격포가 각 4문씩 추가.



(역주 : 특히 37mm 보병포는 오헝 스톰트루퍼들도 적극적으로 굴리는 등 꽤 호평 받은 거로 앎.)



15. 가장 중요한 변화 중 하나는 역시 사단포병. (모든 사단에 포병대를)이라는 슬로건에 따라 14년 이후로 오헝 사단포병은 질적으로 양적으로 큰 개선이 이루어짐.




16. 16년 보병사단 예하 포병여단에는 Field gun 4개 포대, 곡사포 6개 포대, 중포 4개 포대 (각 1개 연대 구성) 가 배치됨. 모두 같은 건 아니고 대대 수는 사단마다 조금씩 달라졌지만 사단 당 평균 60문의 야포와 곡사포를 보유함.




17. 14년 483개 포대, 2,610문에 비해 16년 5월에는 804개 포대, 4,018문을 보유한 수준으로 약 2배 증강됨.




18. 특히 이중 1,358문은 질적으로 개선된 신형 화포로, 240mm, 380mm, 420mm 같은 중포들도 도입됨. 또 일부 포병대에는 대공포가 배치되기도 함.




19. 반면 기병대는 기존 전훈에 따라 축소되었음.




20. 기동작전에 투입되기는 했지만 생각만큼 적절하지 않았고, 특히 (이손초, 카르파티아 같은) 산악 지형에서 기병대는 별로 쓸모가 없었음. 그래서 이름만 용기병, 후사르, 창기병을 붙인 (기병사단이었던) 보병대들 역시 운용됨.




21. 또한 전투지원부대들 역시 크게 확장됨. 특히 공병은 각 보병사단마다 최소 1개의 보강된 Sapper 중대가 배속됨.




22. 필요시 Pioneer나 건설 중대가 배속되기도 하였고, 추가적으로 중대규모의 축성 부대가 야전 축성을 보조하기 위해 사단에 배속됨.



23. 통신 분야는 전례없이 확장된 영역. 그 규모는 소대에서 소 대대까지 다양했고, 모든 사단에 이런 통신부대가 배치됨.



24. 또한 복잡해진 포병대를 지원하기 위해 탄약, 보급, 정비 부대도 함께 확대되었고, 사단급 애전의무대대와 군단급 의무부대 역시 확대됨. 전후방의 보급을 유지하기 위한 기지와 보급 창고들을 운영하는데도 막대한 인력이 투입.




25. 이런 모든게 16년 이전과 이후의 합스부르크군을 구분지음. 또한 16년이 되면 이전의 청회색이 아닌 슈탈헬름과 회색 전투복을 갖춘 현대적인 군대의 모습을 갖춤.



+


사실 알렉산더 왓슨의 <요새 : 프셰미실 공성> 에서도 직접적으로 언급하듯,

오헝군의 근본적인 문제는 다민족성보단 걍 질적, 양적 문제에 기인했음. 물론 14년 전역에서 기존 장교진과 하사관들 ( 오헝군은 언어 단위로 연대를 나눠놨고, 간부들은 당연히 연대언어에 익숙했음 )이 갈려나가면서 언어 문제가 악영향을 끼친 건 맞음.

하지만 그건 대체로 견딜만한 문제에 가까웠고, 진짜 문제는 걍 대포랑 숙련된 병사가 부족했다는거.

어쨌든 14년 세르비아와 브루실로프에서 오헝 측 전략적 오판으로 추태를 보인건 맞는데, 이런 오판의 배경엔 대전략 작계에서 독일이랑 동상이몽으로 서로 책임 미룬 것도 있고,

특히 14년 세르비아는 발칸전쟁으로 다져진 고참병 군대 + 오헝군 측보다 수적 열세가 심하지 않은 방자측이란 이점이 있었음. 사실 이것도 14년에 20만이 갈려나가면서 15년엔 회복하지 못하고 강화된 오헝측 2선급 사단들에게 몬테네그로군이랑 같이 쭉쭉 밀렸음.

여러모로 오헝군 역시 대전쟁 내내 발전해나가는 성장형 군대였던 것.

물론, 최종적으로 오헝 자체의 대전략 목표 ( 이탈리아 저지, 러시아, 루마니아의 항복, 세르비아 조지기 )는 모두 달성했지만 전쟁을 끝낼 방법이 없어 독일의 궁극적 승리를 통한 평화에 완전히 외교적으로 종속되었다가 자기 모순이랑 한계에 붕괴되긴 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