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는 1,2대전 참전한 헝가리 장군 회고록. 오헝 포병학교 출신으로 1대전 동안 주로 발칸에서 종군했음. 대전 말기 이탈리아에 있다가 미군에 항복.
이탈리아에서 전쟁포로가 된 것은 내 인생의 흥미로운 한 부분이다. 장교들은 먼저 코모Como 호수 연안에 있는 여름 휴양지인 벨라조Bellagio로 옮겨졌다. 그 다음에는 알프스 휴양도시 산 조반니 디 메두아San Giovanni di Medua로 이동했다. 마지막으로 12월 말 우리는 엘바 섬으로 운송되었다. 엘바 섬에서는 해안의 2층 저택에서 거주하게 되었다.
엘바로 향하는 여행은 리보르노Livorno 항구에서 시작되었다. 우리는 석탄 바지선으로 옮겨졌다. 우리가 자리잡은 바닥에는 미세한 석탄가루가 퍼져있었다. 우리 중에 있던 테너tenor 하나가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공해에 다다랐을 무렵엔 파도가 꽤 거세지면서 바지선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아무 문제 없이 노래를 즐겼다. 그러나 갑자기 노래가 멈추더니 테너가 고통을 호소했다. 나머지 인원들도 이를 신호로, 몇 분 안에 백 명 모두 앓고 말았다. 이것이 내가 처음으로 겪은 배 멀미이다. 포르토페라이오Portoferraio와 잔잔한 바다에 도착했을 쯤에는 우리 모두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다시 건강해졌다.
저택 앞의 해안은 점차 깊은 물에 잠겨 들었다. 날씨가 좋을 때면 수영과 일광욕을 하기에 매우 쾌적했다. 100 미터 너머와 그곳까지 뻗어있는 목재 부두를 넘어 수영하는 것은 금지되었다. 수용소의 넓이는 울타리 두 개로 제한되었고, 각 모퉁이에는 경비병들이 배치되어 있었다. 1월말 (1919년)에는 몇 명이 바다에 도전했다. 그러나 2월엔 바다가 밤낮으로 요동치는 몇 주 동안 돌담을 후려치는 파도와 함께 폭풍을 겪어야 했다. 바람의 울음소리는 우리 모두를 귀머거리로 만들었고, 모든 사람이 병들었다.
3월쯤 날씨가 크게 개선되자 우리 모두 수영을 하러 몰려나갔다. 물 속에 있지 않는 저녁에는 돌담 위에 앉아, 낮게 퍼진 믿기 힘들 정도로 찬란한 구름과 만 건너편의 석양에 의해 황금빛으로 물든 안개에 감탄의 눈길을 보냈다. 그 경치는 서정 시인에게 영감을 줄 만큼 인상적이었다.
만 맞은 편에는 포르토페라이오가 자리 잡았다. 바다로 돌출된 곶에는 유배 당한 전 프랑스 황제 나폴레옹의 작은 성이 서 있었다. 섬에는 철광석 광산들이 있었으며 도시 남쪽 가장자리에는 거대한 철 용광로와 상업부두가 있었다.
포로 대부분은 젊은 청년들이었다. 처음에는 그저 빈둥거릴 뿐이었지만 곧 싫증이 나고 말았다. 우리 중엔 오페라 가수 (드레스덴 오페라 출신이었다)가 있었다. 그는 매일 아침이면 부두 끝에 서서 바그너 아리아를 연달아 가창했다. 또 아마추어 작곡가도 있었다. 나는 시를 쓰는데 몰두했다. 이것이 우리 합창단이 만들어진 방법이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매주 일요일마다 근처 교회에서 노래를 부를 수 있도록 미사곡 전체를 배웠다. 오페라 가수는 구노Gounod나 슈베르트Schubert의 아베 마리아Ave Maria를 노래했다. 보통은 도시에서 교회를 찾는 사람은 나이 든 부인 한 명뿐이었지만, 우리가 노래할 때면 교회가 가득 차 밖에까지 군중들이 서있었다. 사제의 눈에는 기쁨의 눈물이 가득 차 올랐다. 한여름에는 새로운 수용소장이 도착했다. 그는 이전에 독일군 포로수용소에 수감되어 있던 사람이었다. 수용소장은 우리가 외부 교회에 가는 것을 금지하고 수용소를 이중 철조망으로 둘러쌌다. 그때부터 우리는 저택 뒷마당에서 미사곡을 불렀다. 지역 주민들은 철조망 밖에서 우리가 부르는 노랫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또한 우리는 문학적인 마티네matinee를 준비하고, 두 개의 짧은 오페레타operetta를 배웠으며 공연을 했다. 한번은 이탈리아 장교들이 공연을 보러 왔다. 이탈리아 장교들은 우리 말을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래도 그 노래들을 즐겼다.
덧붙여 우리는 언어와 문화, 과학 강의를 가졌다. 선의에 의해 개설된 한 정치 강의는 사회주의에 관한 것이었다. 당시 헝가리에서는 공산주의가 맹위를 떨쳤다. 한 사관생도는 항상 이 주제에 대해서 얘기했다. 한번은 그 사관생도가 식당에서 다른 소년들에게 자유연애에 대해 강의하고 있을 때였다. 식탁 끝에서는 예비역 포병 중위 (평시에는 오스트리아 그라츠Graz의 판사였다)가 앉아 듣고 있었다. “너희 어머니만 확실한 거야. 아버지는 못 믿고. 아버지는 누구나 될 수 있던 거니까...” 젊은 생도가 말을 하자, 중위가 물었다. “그게 네가 네 어머니를 생각하는 방식이냐?” 그리고 답이 돌아왔다. “누구도 확실히 알 수는 없는 겁니다...” 중위는 생도의 얼굴을 연달아 두 번 후려치며 외쳤다. “이건 네놈 어머니의 몫이다!” 그렇게 모임은 해산되었다.
한번은 들개 한 마리가 수용소에 나타났다. 모두들 그 개를 귀여워하며 자신의 배급품에서 먹이를 나누어주었다. 월말까지 개는 살이 붙고 건강해져 털에는 윤기가 흘렀다. 두 번째 달이 끝날 무렵엔 개가 사라지고 말았다. 아무도 그 개에게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런데 어느 날 담 너머의 경비대 쪽 구역에서 펼쳐진 채 말려지고 있는 개 가죽이 모습을 보였다. 경비병들이 우리 개를 잡아먹은 것이었다.
또 한번은 우리 식당 관리인이 일주일 치 식량을 실은 범선을 타고 만을 가로질러 오고 있었다. 우리 요리사 두 명은 해안에서 관리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관리인은 돛을 내리고 배에 붙은 속도를 이용하여 해변으로 배를 몰았다. 배는 거대한 참치 한 마리를 끌고 있었다. 관리인은 배에서 뛰어내리자마자 참치를 해변 위로 끌어 올리기 시작했다. 관리인이 마지막으로 잡아당기자 이 거대한 물고기는 파도와 함께 물 밖 모래 위로 올라왔다. 상어는 다시 물속으로 뛰어들려고 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상어가 계속 매질 당하는 동안 관리인은 공포에 질려 비명을 질렀다. 마침내 두 요리사는 배에서 가져온 노 두 개로 상어를 때려죽였다. 관리인은 상어의 내장을 제거하고는, “페셰카네pescecane” (이탈리아어로 “상어”)를 외치며 상어의 꼬리에 밧줄을 묶어 배에 연결한 뒤 바람을 타고 도시로 돌아갔다. 그러나 겨우 200 야드 밖에 가지 못했을 때 상어가 되살아나 반대방향으로 배를 끌어당기기 시작했다. 그 무렵 우리 모두는 해안가에서 그 광경을 보며 웃음을 터트리고 있었다. 결국 관리인은 노를 꺼내 힘차게 젓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 끝에야 상어를 팔기 위해 도시로 데려갈 수 있었다. 이탈리아 법에서는 상어에게 50리라의 현상금을 부과했다. 상어고기는 시장에 판매되었다.
어느 화창한 여름 오후 작은 배 하나가 도시에서 다가왔다. 우리 망꾼들은 배 안에 이탈리아군 장교 두 명과 여자 한 명이 승선해 있다고 보고했다. 배가 부두에 도착해 밧줄을 묶을 때쯤 이탈리아군 장교 중 한 명이 소리쳤다. “렌하르트 대위Capitano Lenhardt!” 그러자 내 옆에서 렌하르트 대위가 고함을 내뱉었다. “세상에, 저 인간들 나를 만나러 왔잖아!” 부두로 달려 내려간 대위는 이탈리아군 장교들과 함께 온 여성을, 적십자사 숙녀이자 그를 만나러 온 약혼녀를 발견했다. 경비병들은 두 연인이 몇 시간 정도의 사적인 만남을 위해 위병소를 사용하는걸 허락해주었다. 그 동안 우리는 세상이 뒤바뀌었음에도 충실한 연인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사색했다!
더 이상 할 일이 없는 사람들은 생물학 연구에 몰두했다. 어떤 사람은 저택 마당에서부터 통로에 있는 모든 종류의 장애물을 극복하며 저택 2층으로 이동하는 개미 군락을 지켜보았다. 다른 사람들은 대규모로 행해지는 딱정벌레의 짝짓기 행위를 연구했다. 도마뱀들을 훈련시키는데 시간을 보낸 사람들도 있었다. 그 사람들은 도마뱀을 방으로 데려가 감금 생활에 익숙해질 때까지 파리와 다른 곤충들을 먹이로 주었다. 거기서 도마뱀들은 식탁을 긁는 등 신호를 주면 먹이를 먹기 위해 은신처에서 나오는 법을 배웠다. 나 역시 햇빛이 비치는 바위에서 몇 시간 동안 도마뱀을 관찰했다. 도마뱀은 입을 벌린 채 햇빛을 쬐며 앉아 있었다. 느닷없이 파리 한 마리가 도마뱀의 입안으로 날아 들어갔다. 도마뱀은 한 번에 삼키고는 꼬리 한 번 흔들리는 일 없이 다시 햇빛을 쬐기 시작했다. 지금까지도 나는 그 도마뱀이 어떻게 그럴 수 있던 건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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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 가수햄 ㄷㄷ
출신들 다양하고 오스트리아 특유 문화근본 느낌남 ㅋㅋ
이탈리아 전선도 겁나게 잔혹했다는데
네 어머니의 몫 ㅅㅂ ㅋㅋㅋ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