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종 간 결혼금지법과 인종간 친밀성에 대한 백인사회의 혐오는 특히 백인 여성과 비백인 남성 사이의 관계를 겨냥하곤 했다.
(중략)
1942년 3월에 시작되어 1945년 8월까지 지속된 일본계 미국인 강제수용으로 비일본계 배우자가 있는 일본계 미국인이나 일본계와 비일본계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 자녀들도 그들이 주거하던 태평양 연안으로부터 소개하고 수용소로 “재이주”할 것을 명령받는다. 수용소 재이주가 완료되고 수개월 후에 군사당국이 “혼합결혼정책(The Mixed Marriage Policy)”을 별도로 실시하면서 당시의 군사 및 전시 행정 자료는 인종적, 혹은 민족적인 경계를 넘어서 결혼한 일본계 미국인들과 그들의 혼혈자녀들에 대한 상세한 자료를 남기게 된다. 루즈벨트 행정부 산하 전시 재이주 관리당국(The War Relocation Authority)의 일본계 미국인 피억류자들에 관한 기록과 미서부 군기무사령부(The Western Defense Command) 자료에 따르면, 1942년 당시 일본인 남성과 백인 여성 사이의 결혼 건수는 124건 정도로 추산되며 이런 유형의 결혼이 일본계와 비일본계 사이의 결혼의 가장 흔한 형태였다. 124명의 백인 아내들 중 절반 이상이 남편과 자녀를 따라 수용소로 들어갔고 이들은 전쟁 기간 중에 가족의 통합을 유지하는 중심적 역할을 하게 된다.
출처
인종간 결혼에 대한 법적 규제와 사회적 금기를 넘어서: 1880년에서 1945년까지 미국 서부에서 아시아계 남성과 결혼한 백인 여성의 경험을 중심으로, 미국사 연구, 미국사학회, 2011, vol.34, pp. 85-114 (30 pages)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