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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전이 종전된 지 2주도 채 되지 않은 1975년 5월 12일,  캄보디아 인근 공해상을 지나던 미국선적의 화물선 SS 마야게즈(Mayaguez)호가 캄보디아군 초계정에게 나포 당함. 


당시 캄보디아는 폴 포트의 크메르 루주가 집권하여 킬링필드 놀이를 시전 중이던 인세지옥이었고 정부로서도 살짝 맛탱이 간 상태였음.



제랄드 포드 대통령은 1968년 푸에블로 호의 선례를 반복하고 싶어하지 않았고 초강경 대응을 지시함.


일단 포드 행정부는 캄보디아 영해를 전부 봉쇄했고, AC-130과 A-7이 날아다니며 눈에 보이는 캄보디아군 초계정과 쪽배들을 죄다 박살내버림. 심지어 괌의 B-52를 동원해 캄보디아 주요 군사기지를 폭격할 준비까지 해둠. 그리고 유엔주재 중국 대표를 불러서 니들은 그나마 쟤들하고 말이 좀 통할테니까 협상 중계 좀 도와달라고 부탁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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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과 필리핀의 미공군과 미해군이 정찰자산을 뺑뺑이 돌린 끝에  캄보디아군이  마야게즈 호를 캄보디아 영해 상에 세워두고 생포 당한 승무원들을 캄보디아 영토인 코탕(Koh Tang) 섬과 캄퐁 솜(Kompong Som) 둘 중 한곳으로 끌고 간 거 같다고 보고함.



포드 대통령과 슐레징거, 키신저, 콜비는 대가리를 굴려서 두 섬 중 한 곳을 타격, 인질을 구출하고 다른 쪽에서는 마야게즈 호에 병력을 DA해서 되찾아온다는 플랜을 세움.


포드 행정부는 두 섬중 코탕 섬을 타격하기로 결정함. 왜 두 곳중 한 곳만 타격하냐면 만약 뽑기에 실패해서 그 곳에 인질이 없더라도 그냥 강제점령 해버린 다음에 크메르 루주 상대로 협상카드로 쓸 수 있을 거라는 계산이었음.


그리고 오키나와, 필리핀, 태국등 동남아 각지에 주둔 중이었던 미 해병대 300여명 가량이 차출됨.


이들중 50명은 마야게즈 호에 직접 돌입하는 임무를, 나머지 250명은 코탕 섬 강습에 동원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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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5일 아침, 



코탕 섬 타격조는 미드웨이급  3번함 코럴시로 옮겨 타  미공군 소속 CH-53 8대에 나눠 탄 뒤 섬의 허리부분에 해당하는 오목한 부분의 양쪽 해변을 LZ 삼아 강습하기로 함. 





하지만 문제가 너무 많았음.


일단 미 해병대는 세간의 인식과는 달리 대부분 입대 1~3년 정도 밖에 되지 않은 전투경험이 전무한 병사들이었음. 그나마 부사관들이 베트남이나 한국에서 복무한 베테랑들이었음.


이들을 태워갈 코럴시 역시 호주에 있다가 급하게 불려 나오느라 정찰용 SH-3 2대만 가지고 있어서 대규모 강습작전이 불가능했음.


이를 위해 차출된 공군 CH-53 승무원들은 기존에 CSAR 임무 정도만 수행해봤지, 이런 대규모 강습작전은 처음해보는 거였음. 


원래는 공군 헌병대 20명도 참가할 예정이었으나 이들을 태우고 오던 CH-53 1대가 중간에 추락해서 전원 비전투 손실로 사망해버림. 


CH-53도 중량제한이 걸려서 미 해병대는 중화기조를 전부 제외한 알보병 200여명만으로 섬을 점령해야 하는 상황에 놓임. 대충 무전 때리면 해군과 공군 전폭기들이 폭격 때려줄거라며 퉁침.


그리고 코탕섬에 대한 정보도 매우 부족했음. 일단 작전내용은 섬 서쪽과 동쪽에 강습한 뒤 중앙에 있는 마을에서 만나 합류한다는 내용이었음. 인질도 아?마 거기 있을테니 구출하면 된다 이런 식.


어쨌든, 랜달 오스틴(Randall W. Austin) 대령의 지휘를 받는 미 해병대는 1파, 2파로 나뉘어 코탕 섬으로 날아감.



지옥은 여기서부터 시작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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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53들이 서쪽과 동쪽의 좁은 해안 두 곳에 천천히 착륙하여 미 해병대를 내려놓기 시작할 때, 정글 속에서 엄청난 양의 총알과 포탄들이 날아오기 시작함. 이를 그대로 쳐맞은 1파의 CH-53 4대는 대부분 피격 당해  2대가 추락함. 다음으로 온 2파 역시 대부분 피탄 당했고 백업용 3대를 제외한 대부분의 헬기들이 작전불능 상태에 빠짐. 몇대는 코럴시까지 돌아가지도 못해서 국경을 넘어 옆나라인 태국에 불시착함. 백업으로 돌려놓은 3대까지 투입했지만 얘들도 화기팀 내려주고 오면서 걸레짝이 됨.


해변에 남겨진 미 해병대와 공군 승무원들은 최악의 상황에서 존나 열심히 싸워서 부상자들을 끌어낸 뒤 수목한계선까지 돌격하여 참호선을 제압하고 간신히 교두보를 확보하는데 성공함. 하지만 중화기가 없어서 캄보디아군의 화력에 압도 당해 그 이상 전진하진 못함.


상륙한 해병대 중에는 FAC가 1명 있었고, 이 양반이 물에 반쯤 잠긴 CH-53까지 헤엄쳐 들어가서 비상 무전기를 꺼내와 배터리가 오링 날때까지 2시간동안 항공지원을 요청하여 미해군 A-7이  화력 퍼부어 준 덕분에 한숨 돌릴 수 있게 됨.

 

미군이 이 꼴이 난 이유는 코탕 섬이 그들이 보고 받은 정보와 너무나도 다른 곳이었기 때문이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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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섬에 주둔한 캄보디아군 병력은 20~40명 뿐일거라던 CIA의 정보와 다르게, 실제로는 200~300명 가량의 중대급 병력과 레이더 기지가 있었음.


이들은 50구경 기관총, RPG,  40mm 대공포, 60mm 박격포, 82mm 무반동포 등으로 중무장하고 섬 양쪽 해변에  잘 조성된 참호진지를 파두고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었음.


캄보디아군이 이렇게 준비하고 있던 이유는 코탕 섬이 베트남과의 영토분쟁 지역이었기 때문임. 게다가 근 3일 동안 미군 비행기들과 함정의 움직임이 많아지니까 캄보디아군 지휘관이 전준태를 내려놓고 대기하고 있던 거임. 이 캄보디아군 지휘관은 미군이 교두보 확보 후 정찰도 하지 않는 것을 간파하고는 한쪽 해변에 견제용으로 기관총 단 1개조만 남기고 남은 병력을 전부 반대편 해변으로 돌려 화력을 집중하는 식으로 돌려막기를 시도할 정도로 노련한 인물이었음.



이제 작전목표는 인질구출은 고사하고 미군구출로 변경됨. 미군 지휘부는 밤이 되면 섬지리에 익숙한 캄보디아군이 야습을 감행할 것이고 그러면 해안에 있는 미해병대는 전멸할거라고 판단하여 24:00가 되기 전에 전원 빼내기로 함. 그래서 인근의 모든 미군 기지와 함정들에게 버스터콜을 요청함.


미군은 15일 오후 내내 코탕 섬에서다가 OV-10가 연막탄을 깔아대고, A-7와 F-4가 기관포와 항공폭탄을 던지고, AC-130가 105mm를 날리고, 구축함이 5인치 함포를 쏘는 등 그야말로 섬을 지워버릴 기세로 두들겨 댐.  심지어 C-130에다가 15,000 파운드 폭탄(데이지 커터)까지 싣고 와서 5개나 떨굼. 근데 이게 후폭풍이 워낙 세서 미군들까지 패닉에 빠지는 상황이 발생하자 투하를 중단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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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럴시에서는 복귀한 CH-53들을 긴급수리하여 이중 5대를 이륙가능하게 살려냈지만 이걸로는 해변에 있는 미군들을 다 싣고 오는게 불가능해서 제외 시켜놨던 비무장 SH-3까지 동원함.


양쪽 해변에 있던 미군들은 교대로 오가는 헬기들에 나눠타야 했음. 캄보디아군은 헬기가 해변에 착륙하려 할 때마다 집요하게 엔진부를 노리며 사격을 가해댔고 이 때문에 완전히 지상에 착륙하지 못하고 1~2m 뜬 상태로 병사들이 점프를 해서 올라타야 하는 현상이 발생함. 전폭기들과 건쉽이 캄보디아군 사격 섬광을 볼 때마다 원점 타격을 해대며 시간을 버는 사이에 미군들은 조금씩 퇴출하여 20:00에 완전히 퇴출하는데 성공함.


코탕 섬 전투에서 미군은 해병대와 공군을 포함하여 전사 38명, 부상 49명, 실종 3명으로 전체 투입인원의 35% 가량의 사상자를 냄.


실종 3명은  미해병대 기관총조 게리 L. 홀(Gary L. Hall) 일병, 조셉 N. 하그로브(Joseph N. Hargrove) 상병, 그리고 대니 G. 마셜(Danny G. Marshall) 일병이었음. 이들은 퇴출 당시 최후미에서 경계임무를 수행 중이었는데, 마지막 퇴출조가 이륙하기 전 이들을 찾으려고 돌아다녔으나 길을 잃어서 다른 방향으로 간 건지 찾지 못했음. 나중에 이 3명은 캄보디아군들에게 생포됐고 캄보디아 본토로 보내짐. 이후 생사는 불명임. 아마도 수용소에서 죽었을 거라고 추정만 하는 중임.


미군도 처음에는 이 3명을 찾기 위해 코탕 섬에 씰팀을 투입하는 방안을 고려했지만 높으신 분들이 캄보디아와의 추가적인 분쟁을 우려하여 '비무장' 상태로 투입하라는 명령을 내리자  지휘부에서 뭔 미친소리냐며 항명하는 바람에 취소됨. 미해병대 마지막 퇴출조의 지휘관 2명이 자진해서 백기 들고 섬에 들어가 보겠다고 요청했지만 이것도 거절 당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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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탕 섬 전투 직후, 투입됐던 미 해병대-공군 병사들은 코럴시 갑판 위에서 전사하고 돌아오지 못한 전우들을 기리는 추모식을 가진 뒤 해산하여 각자 원대 복귀함.


애초에 이들은 단일 전투 부대도 아니었고 임시편성된 혼성부대였던 탓에 그 어떤 연대감을 느낄 새도 없이 뿔뿔이 흩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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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마야게즈호 돌입조는 녹스급 호위함 해롤드 E. 홀트(USS Harold E. Holt)에 탑승하여 18세기 선상백병전 하듯 마야게즈호 바로 옆에 붙어서 넘어감. 최루탄을 까던지고 어설프게 룸클리어링을 진행한 미해병대는 1시간 수색 끝에 배에 아무도 없다고 보고함. 


그리고 육지 쪽에서 작은 보트 한 척이 다가왔는데, 거기에 마야게즈 승무원들이 전원 탑승해있었음. 미국이 존나 세게 나오니까 크메르 루주는 급쫄아서 바로 승무원들을 석방하라고 지시했고, 캄보디아군은 지나가던 태국어선을 납치하여 거기다 승무원들을 태우고 미군 쪽으로 밀어 보낸거였음. 



어쨌거나 저쨌거나 애초에 목표로 했던 마야게즈 호 탈환과 인질 구출은 성공적으로 마무리 됨.









코탕 섬 전투는 월남 패망이라는 희대의 이-벤87트 때문에 생각보다 큰 주목을 받지 못하고 묻혀버렸음.


인질과 배는 무사히 구출했지만 섬 하나를 손에 넣으려고 90명 이상의 사상자가 나왔고 3명의 미군이 영원히 돌아오지 못했다는 점에서 전술적 실패인지, 전략적 성공인지는 포드 대통령도, 키신저도, 슐레징거도, 콜비도 그 누구도 대답하지 못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