恩賜花甁製造
●恩賜花甁製造大皇帝陛下셔 伊藤公爵의 在職中 功勞를 紀念시기 爲야 花甁 二個를 贈與시기로 決定시고 現今 漢城美術品製造工場에 委托製造中인 同花甁은 高 九寸五分되 純金製이오 其形은 據今四千餘年前에 淸國皇室에셔 使用든 花甁을 模倣야 龍과 李花를 彫刻며 價額은 二對를 合야 一萬圜以上에 達다 며 同花甁을 製造 者 我國의 有名 彫刻家로 曩者에 日本에 留學야 大阪造幣局에셔 數年間 金銀細工을 實習 李行一氏오 又仝甁花紋及龍紋의 彫刻은 數年間 佛國에 留學야 彫刻을 專門 鄭禹昌氏가 擔當얏다더라
"恩賜花甁製造", 황성신문[皇城新聞], 19090619
은사 화병 제조
대황제 폐하께서 은혜를 베푸시어, 이토 공작(伊藤公爵)이 재직 중 세운 공로를 기념하시기 위해 화병 두 개를 증여하시기로 결정하시고, 현재 한성 미술품 제조 공장에 위탁하여 제작 중이다.
이 화병은 높이 9촌 5푼(약 29cm)이며, 순금(純金)으로 제작된다. 그 형태는 약 4,000여 년 전 중국 황실(淸國皇室)에서 사용하던 화병을 모방하여 용(龍)과 오얏꽃(李花) 문양을 조각하였다. 가격은 두 개를 합쳐 1만 원 이상에 달한다고 한다.
이 화병을 제작하는 사람은 우리나라의 유명한 조각가로, 예전에 일본에 유학하여 오사카 조폐국(大阪造幣局)에서 수년간 금·은 세공을 실습한
이행일(李行一) 씨이며, 또한 이 화병의 꽃문양과 용문양 조각은 수년간 프랑스에 유학하여 조각을 전문적으로 배운 정우창(鄭禹昌) 씨가 담당하였다 한다.
"은사 화병 제조", 《황성신문》, 1909년 6월 19일
여기서 언급되는 한성미술품제작소는 1908년에 세워진 일종의 황립 미술품 공방임
국치 몇 년 후에는 이왕직미술품제작소가 되었다가 후에 조선미술품제작소가 되었음
등록상표는 이화문이었음
이 그릇이 한성미술품제작소에서 만든 것임
기사에서 언급되는 기술자 이행일은 군기창 제조소장 한욱하고 함께 일본 오사카 조폐국에서 금속 다루는 법을 배워온 사람임.
프랑스 유학파라는 정우창은 관원이력서에 기록이 남아 있음. 원래 군인임. 나무위키 군기창 문서에도 써놨는데, 1858년생이고 1894년 통위영 군물제조수리소 감독으로 복무했음. 1897년 일본 포병공창을 시찰하고 1899년에는 파리 만국박람회에 파견되었다고 함. 아마 이때 프랑스에서 조각을 배운 듯.
이후 군부 포공국 포병과원으로 복무하다 경리과로 갔음. 1905년 참령이 된 것으로 관원이력서에는 기록이 끊기는데, 기사를 보면 군대해산 이후 한성미술품제작소로 이직한 듯함.
추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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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가 이쁘다고 줘 시발
주면서도 좆같긴 했을듯 ㅋㅋㅋㅋ - dc App
일제강점기 당시 유명한 조선인 사업가들 조사중인데 말이야. 이런 자료 다 어디서 구했어?
https://db.history.go.kr/modern/main.do
여기
근현대인물자료가 뒤져볼 1순위
2순위는 근대 신문들 - dc App
번역은 챗지피티 - dc App
근대신문으로 어떻게 분석을 해?
@ㅇㅇ(210.179) 이름 찾아서 근대신문에 언급된 게 있나 찾아보는 거지 가령 본문의 정우창 참령에 대한 정보는 어케 찾았냐면 우선 군기창이나 군부 기술자 관련해서 근현대인물자료에서 뒤져보다 이름을 알았고 그걸 근대신문 아카이브에 구한말 시기 설정하고 넣어서 나오는 기사들 뒤져봤음 - dc 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