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 말 이야기임.
해방 후, 김홍일은 만주 지역에서 국민정부군 예하의 한교(재중한국인)사무처장으로 근무하면서 한국인 보호 업무를 수행하고 있었음.
하지만 당시 만주를 점령한 소련군이 중국공산당군의 편의를 봐주면서 국부군의 만주장악을 방해하고 있었기 때문에 업무는 매우 어려웠음.
이 와중에 국부군이 영구 일대로 행정력을 뻗치는데, 하필 이때 조선의용군을 만났다고 함.
당시 영구의 조선의용군은 훗날 한국전쟁 당시 북한군 9사단장을 역임하고 나중에는 북한 제1군단사령관이 되는 박효삼이 이끌고 있었음.
그런데 이러나저러나 동포들이다 보니 김홍일은 전투로 이들을 무장해제시키기보다는 대화로 풀어 보자고 생각했나 봄.
마침 박효삼과는 구면이었는데 김홍일이 1938년 우한에서 조선의용대를 길러낼 때 가르친 학생이기도 했음. 이후 화북으로 가서 한동안 못 봤지만.
그래서 김홍일은 박효삼에게 편지를 보내 중앙군이 그곳에 들어가고자 하니 무장해제하고 물러나 달라고 정중히 요청했음. 어차피 남의 나라 내전에서 피를 흘릴 필요 없지 않냐고 덧붙이면서 말임.
박효삼은 바로 답신을 보내, 안그래도 우리 조선의용군은 소련군이 귀국을 막고 있어서 이곳에 있을 뿐이라고 말함. 그리고 요청한 시일 내로 영구를 떠날 테니 공격하지 말아 달라는 답을 보냈음.
그리고 박효삼은 덧붙여서 김홍일에게 개인적인 인삿말도 남겼음. 그동안 소식 익히 들었다면서 선생님도 이젠 외국 군대에서 복무하지 마시고 귀국하는 게 어떻겠냐고 말임.
답변을 받아든 김홍일은 이들의 저의를 의심하긴 했지만, 일단 믿어 보자며 공격 계획을 중지시켰음. 그리고 다음날 조선의용군은 약속대로 평화롭게 기차를 타고 영구를 떠났음
다만 김홍일의 회고에 따르면, 얼마 후부터 조선의용군은 크기를 미친듯이 불리기 시작하고 일본군이 남긴 무기로 무장하며 3만의 대부대로 성장했다고 함
이들이 훗날 북한으로 들어와 국군을 이끌던 김홍일과 정말로 맞붙게 되니, 운명 한번 참 얄궂음
출처
대륙의 분노(19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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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에 간 저들은 진짜 오늘날 이 꼴이 될 줄 알았으려나..
몰랐겠지... 실제로 조선의용군 중 북한에서 실망했다고 회고하는 사람도 종종 있더라 지금처럼 망가지기 전인데도 말야 - dc 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