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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30일 됭케르크에서 철수한 BEF 2군단장 앨런 브룩은 6월 2일 런던 전쟁성에 호출되었다. 새 육군참모총장 존 딜과 전쟁성 장관 앤서니 이든은 그에게 프랑스에 돌아가 BEF를 재건하라 지시했고, 브룩은 프랑스에게 보내는 외교제스처 이상으론 쓸모없다고 항의하면서도 까라면 까야지.. 로 귀환을 준비했다.


재건 BEF의 주축은 솜강 북부에 있는 등의 사유로 미처 됭케르크 철수를 함께하지 못하고 프랑스에 남은 부대들 + 막 철수한 부대들 중 편제 나름 갖춘 일부가 될 터였다. 특히 프랑스에 남은 51하이랜드 보병사단과 1기갑사단이 주축이 되면 됐는데, 특히 1기갑은 그 순간에도 프랑스군 옆에서 싸우며 아브빌 전투에서 나름 괜찮은 성과를 내고 있었다. 근데 피해도 크게 났다. 그리고 51사단 주력은 얘들이 뭐 제대로 모여보기도 전에 생발레리엥코에서 패배, 대부분이 포로로 잡힌다.


그러고선 있던 놈들이 솜강 남쪽에 잔류하던, 루앙에서 아치발드 보먼 준장이 지휘하던 후방지원부대들인데... 공병대, 신호대, 기지와 철로 경비부대 등이었다. 이들은 프랑스군 후방지원을 총괄하는 필리프 드 퐁블랑크 소장 예하로 되어있었고, 5월 18일 퐁블랑크의 명령에 따라 병참선 기동방어를 위해 경비대대 따위를 긁어모은 '보포스(Beauforce)' (*Beauman)랑 '빅포스(Vicforce)' (*Vickery 대령이 지휘) 의 임시임무부대를 차출해냈다.


5월 29일, 이 두 임시부대에 더해 후방 건설공병 등을 긁어모은 '디그포스(Digforce)' (*Diggle 중령이 지휘)까지 세 부대를 합쳐 '보먼 사단'이 창설됐고, 보먼 준장은 (임)소장으로 진급했다. 반도전쟁 이래로 사단이 특정인의 이름을 따서 정식 명명되는 첫 사례였는데, 문제는 이게 말만 사단이지 그냥 후방 기행부대 모음인걸 프랑스군 사령부는 이름만 보고 영국애들이 사단 하나 긁어낸줄 믿게 되었다.


6월, 이 사단은 55마일의 안델-베튄 방어선에 투입돼 있었고, 3개 보병대대를 증원받았지만 또 1개 여단을 르아브르로 퇴각하는 51사단을 엄호하는 'Arkforce'에 보냈다. 보먼은 얼기설기 묶어버리고 퉁친 이 '사단'을 관리하기 어려워했고, 각 여단장에게 자율권을 폭넓게 부여하는 지시를 내렸다.


6월 8일, 보먼 사단은 루앙으로 진격하는 독일 5, 7기갑사단과 첫 실전을 치뤘다. 독일군은 노획 프랑스 전차를 앞세워 프랑스군으로 가장한채 영국군 검문소를 통과한후 뒤에서 습격했고(참고로 전쟁범죄다), 곳곳에서 소규모 제대들의 영웅적 저항 일화가 있을지라도 보먼 사단은 속절없이 털려나가며 루앙을 내주었다.


6월 둘째주, 포츠머스에서 온 영국군 부대들이 브레스트항에 속속 도착하기 시작했다. 52로우랜드 보병사단, 제1캐나다 사단 등이 도착했는데, 이들은 프랑스의 방어선 재구축을 지원하고, 정 안되면 브르타뉴 반도라도 요새화해서 버티는게 목표였다. 영국군은 반도전쟁 때 포르투갈에서 토레스 베드라스 선이라고 비슷한거 해본적이 있었다. 브룩은 여기에 추가로 몽고메리 소장이 지휘하는 3사단(갓 됭케르크에서 내림)까지 증파를 요청해서, 나름 진지하게 전력을 다시 모으고 있었는데...


정작 6월 13일 투르 회담에서 프랑스 내각은 (기존 약속과는 다른) 단독강화 우린 해야겠다고, (팩트긴 한) 어차피 이 전역 수습은 조졌고 니넨 섬나라라 우리와 사정이 다르지 않냐고 나오면서 처칠이랑 협상을 파투내고 단독강화각을 잡고 있었다.


한편, 브레스트로 투입된 영국군 52사단 157여단은 전방에 도착해 프랑스 10군 예하로 편성되었다. 브룩 중장은 10군과 같이 싸우는 영국군 부대들을 죄다 묶어서 '노르만 포스'라 이름했다. (여기는 지휘관이 마셜-콘월 중장이라 사람이름 딴게 아니라 그 노르만족 이름딴게 맞음)


근데 단독강화각 날카롭단거도 들리고, 막상 와서 현장상황 파악해보니 '기존의 3개 사단' 중에 51사단 그새 증발, 1기갑 소진, 보먼 사단은 이게 사단이긴 하냐? 꼴이라 브룩도 미련없이 전쟁성에 후퇴명령 달라고 콜쳤고, 전쟁성도 14일 밤에 셰르부르를 통한 철수를 허가했다.


위의 Arkforce 등 영국군 1,1059명이 르아브르에서 퇴각한 Op Cycle에 이어, 19,1870명이 셰르부르 등에서 퇴각한 Op Aerial로 '2차 BEF' 시도는 막을 내렸다.


사실 이미 터진 겜에 별 의미는 없지만서도, 흔히 프랑스 전투의 끝처럼 취급되는 다이내모 작전 후에도 이런 꽤 대규모의 재파병이 있었단 거는 거의 뭐 하나도 안 알려져 있어서, 나름 흥미로운 사실이긴 함... 부각되지 않는 이유는 머, 서류상 규모가 컸던 후자, Operation Aerial의 경우엔 항구에서 얼마 내륙으로 들어가지도 않았던 애들이 도로 타고온 배 타고 다시 철수한 거라, 딱히 접전하면서 후퇴도 아니고 드라마틱한 정도도 낮았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