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해군이 실각하는 과정에서 군사대비 체제까지 와해된게 큼


더 골아픈건 군사대비라도 해두면서 청나라를 도발할지말지 결정해야할판에


싹다 무시하고 청나라 심기를 건드린 인조와 사림들이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