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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카치 (波勝)


1943년 11월 18일 취역


기존에 운용하던 표적함(구식 전함 개조)은 한계가 있어서 아예 전문적인 함재기 폭격 훈련 용도로 설계됨. 22mm DS 강철판을 상갑판에 둘러서 고도 4000m에서 투하된 10kg 및 30kg 연습용 폭탄을 막아낼 수 있었음. (연돌도 장갑화)


폭격 훈련이 없을 때는 갑판에 13mm 고각 기총(나중에는 25mm 3연장 및 단장 고각기총)을 장착하고 호위함으로 사용됨 (레이더 및 수중 청음기 탑재)


취역 후 1944년 초 까지는 트럭섬에서 폭격 훈련 용도로 사용됐지만, 2월 17일 미 해군의 트럭섬 공습에 손상되어 팔라우로 대피, 공작함 아카시에게 수리를 받고 10월에 일본으로 돌아가기 전까지는 호위함으로만 운용됨


일본으로 귀환 후 12cm 고각포 2문을 장착하는 등의 대공 개수를 받았고, 이후 종전이 될 때까지 세토 내해에서 폭격 훈련에 종사함 (여담으로 본토 결전시 백병전을 대비해 승조원 전원에게 지급할 군도를 확보해 놨었다는 일화가 전해짐)


일본이 패망하고 나서는 1945년 12월 1일 부터 특별 수송함으로 지정되어 해외에 있던 잔존 일본군 및 일본군 포로들을 귀환 시키는 복원함으로 활동함. 


복원함 운용이 끝난 뒤 해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