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고는 참전 군인들의 구술 증언을 중심 자료로 삼아 주월한국군이 현지에서의 대민관계를 위해 어떠한 준비를 했고, 구체적으로 어떤 활동을 했으며, 그 과정에서 발생한 현지 사회와의 갈등/충돌 양상 등을 살펴본다. 이를 위해 2000년대 초반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가 발간한 《증언을 통해 본 베트남전쟁과 한국군》 (이하 《증언》) 1-3권에서 대민관계에 대해 비교적 자세한 증언을 남긴 52인의 회고담, 2013-2019년 필자가 연구보조원으로 참여한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한국현대사와 군' 연구팀에서 접촉한 구술자 중 베트남전 대민관계에 대해 증언을 남긴 27인의 구술을 분석했다. 그 밖에 《파월육군 종합전사》, 《파월전사》, 《월남전종합연구》 등 한국군에서 남긴 공식 문헌 및 보고서를 활용했다...
맺음말
베트남전에서는 비정규전이라는 특성상 우호적인 대민관계 유지가 중요했고, 한국군은 파월 특수교육대를 통해 전투 기술과 더불어 대민관계 관련 교육도 일부 실시했다. 그러나 한국군이 대민관계의 중요성을 외부적으로 공언한 데 비해 실제 교육 내용은 빈약했다. 대다수 한국군은 베트남 민간사회의 문화, 습속 등을 이해하는데 필요한 기본적인 지식과 정보를 제대로 갖추지 못한 채 '무지한' 상태로 베트남으로 가는 배에 몸을 실었다.
베트남에서 한국군의 대민관계는 주로 민사심리전을 매개로 이루어졌다. 한국군이 민사심리전에서 주력한 부문은 구호사업, 건설사업, 의료 사업, 농경지원, 자조사업 등이었다. 민사심리전에서 필요한 물자와 자금은 대부분 미국의 군/원조 계통을 통해서 지급되었으므로 한국군은 물질적으로 윤택한 환경에서 사업을 전개할 수 있었다.
한국군이 이렇게 베트남인들의 생활환경개선 및 사회개발에 초점을 맞춘 민사작전을 전개한 배경에는 미국의 대유격전 교리가 있었다. 1950년대까지 한국군의 대유격전 교리는 철저한 비민분리 원칙에 근거했으나, 1960년대 초부터 미국 대유격전 교범의 번역, 한국군 장교들의 특수전 학교 유학 등을 통해 군사작전과 개발의 긴밀한 결합을 중시하는 미국식 교리를 수용했다. 1960년대 미국의 대유격전 개념은 근대화 이론과 밀접한 관련을 지녔고, 그러한 대유격전 개념을 베트남에서 수용, 실천한 한국군은 의도하건 의도하지 않았건 작전을 통해 근대화론의 수행자가 되었다.
다만 참전 군인들의 증언에서 드러나듯, 한국군 민사작전이 실제로 유의미한 성과를 거뒀다고 보기에는 어려운 부분이 많다. 상당수의 참전 군인들이 베트남 민간인들에게 다양한 물질적 혜택을 공급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반응이 긍정적이지 않았다고 증언했다. 이는 해당 사회가 처한 역사적/문화적 맥락에 대한 고려 없이 '개발'과 '환경개선'을 통해 성공적으로 대유격전을 수행할 수 있다고 본 미국발 근대화론의 피상성, 베트남 현지 사회문화에 대한 적절한 이해와 충분한 사전 준비 없이 미국의 물질적 지원에 편승하는데 치중한 한국군의 작전 방식이 결합해 거둔 실패였다.
민사작전을 통한 긍정적 성과를 잘 이끌어내지 못하는 가운데 주월한국군은 도난사건, 교통사고, 살인, 성범죄 등의 사건에 연루되며 베트남 민간 사회와 충돌했다. 민간인 학살문제에 대해서 참전 군인들의 증언은 엇갈린다. 대체로 학살의 존재를 부정하지만 미약하게나마 관련 사실을 인정하는 경우, 그리고 연구자가 증언의 이면을 분석함으로써 간접적으로나마 학살/가혹행위의 존재를 읽어낼 수 있는 경우가 있었다. 연구자들과 시민단체의 노력으로 주월한국군의 학살 문제에 대한 증언과 자료가 계속 발굴되는 중이다. 연구의 진전에 따라 이 문제에 대한 참전 군인들의 증언 내용도 한층 더 풍부해질 수 있을 것이다.
베트남전 당시 한국군은 대민관계를 중시하고 양민을 보호하겠다고 공개적으로 선언했고, 전후에는 비록 베트남의 공산화는 막지 못했으나 베트남에서 이룩한 대민관계는 무척 성공적이었다고 선전했다. 그러나 참전 군인들의 증언을 검토해보면 한국군은 베트남 현지 사회에 대한 이해가 깊지 못했고, 대민관계를 위해 쏟은 노력이 전후 선전된 만큼의 성과를 거두지 못했으며, 오히려 한국군과 베트남 현지 사회와의 충돌 사례도 적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이 글은 참전 군인들의 증언을 토대로 주월한국군 대민관계의 실체를 규명하고자 하였으나, 분석 대상으로 삼은 구술자들이 대부분 영관/위관급 출신 남성이라는 점에서 한계를 갖는다. 군대 지휘체계의 말단에 위치한 병사나 하사관 출신, 남성과 더불어 베트남전에 참전한 여성들의 대민관계 경험이나 인식은 남성 장교들의 그것과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그간의 베트남전 관련 구술 자료들은 주로 장교/남성들의 경협을 토대로 만들어졌는데, 향후 다양한 수행 주체들의 목소리를 발굴하고 그들의 경험을 역사화하면 더욱 풍부한 베트남전사 서술이 가능할 것이다.
그밖에도 미국이 베트남에서 벌인 각종 평정작전과 한국군 민사작전의 상호관계, 베트남전 시기의 민사작전 경험이 전후 한국의 민군관계 인식에 끼친 영향, 한국군 민사작전에 대한 당대 베트남인들의 인식 등 보다 세밀하게 규명해야 할 부분이 많다. 이는 후속 연구 과제로 남겨두고자 한다.
- 류기현(서울대학교), 주월한국군의 대민관계: 참전 군인들의 구술 증언을 중심으로
출처
구술로 본 한국현대사와 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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