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이렇게 의회정치가 발전되어가고 자유주의를 비롯한 사상적 모색이 이루어지고 군축과 평화를 위한 국제적 노력이 진행되었던 이 무렵, 많은 일본인들은 불안감에 휩싸여 있었으며 이러한 위기의식은 후일 쇼와유신운동이라는 극단적인 방식으로 표출되면서 만주사변, 중일전쟁, 태평양전쟁으로 가는 길을 밝혀 주었다. 만일 근대 일본의 역사를 특이한 것으로 규정한다면 다이쇼기를 전후한 시기는 가장 정상적인 시기였다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기 일본인들 간에 팽배된 위기감의 근원은 어디에 있으며 위기의식의 실체는 무엇이었을까?

이 시기의 위기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러일전쟁 이후 일본인들이 갖게 된 새로운 고민거리를 우선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일본은 러일전쟁의 승리로 메이지유신 이래 40여 년 간 구체적인 현안이 되어 왔던 불평등 조약의 개정과 한국에 대한 지배권의 확립이라는 문제가 해결되는 상황에 이르렀고 만주지역에서의 영토와 이권을 획득하는 성과를 거두게 됨으로써 명실상부한 강대국 대열에 들어서게 되었다. 하지만 이렇듯 일본이 강국으로 부상하는 과정은 일본을 과거의 고질적인 문제로부터 해방시키는 과정이었지만 동시에 새로운 차원의 복잡한 문제들을 잉태해가는 과정이기도 했다. 당시 일본의 정치적 독립은 육해군과 여러 열강과의 동맹에 의해 유지되고 국가의 경제력이 아시아 국가들의 자연 자원에 의존하는 상황이었다.

더욱이 러일전쟁을 치르는 동안 일본은 중국과 일본의 협력을 구하기 위하여 아시아주의의 한 형태인 '동양평화론'을 들먹이며, 인종 간의 전쟁임을 강조하였기 때문에 일본의 승리는 유색인종들에게 자신감을 주는 측면도 지니는 반면 백인종의 경계심을 불러일으키기에도 충분한 것이었다. 전쟁에 승리한 일본이 만주에 배타적으로 진출하게 되면서 영미의 반대에 부딪히게 되자, 많은 일본인들은 '미증유의 인종적 전란'에 대한 불길한 예감이 들기 시작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메이지 이데올로그들을 비롯한 일본의 지식인들은 국제관계의 본연의 모습에 대한 진지한 문제제기를 하게 되었고, 세계적 동향과 일본의 나아갈 길 등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이후 일본에서는 동서 문명, 특히 황인종과 백인종의 충돌 여부는 인류 역사상 가장 큰 문제라고 간주하게 되었으며, 이러한 비극을 막기 위해 조화를 이루도록 하는 것이 '일본의 사명'이라는 생각이 일본 사회에 널리 공감대를 형성하게 된 것이다. 이처럼 일본은 동양과 서양 '사이'에 존재하며 일본의 장래가 동과 서의 공존, 융합에 있다고 하는 믿음은 외연상으로는 일본인의 '희망'을 표현한 것이었지만 그것이 내포하는 바는 일본인들의 당시의 심리적 '불안'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었다.


출처
위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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