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머역갤에 쓴거 가져옴)
당말 오대십국 때 북방 유민들이 남방에 정착하면서 강남 개발이 촉진되고 해상무역이 활발하게 전개되었음. 이건 강남지방의 조선업 발전으로 이어졌고.
동시에 송나라는 민간 조선업을 장려했고 강한 수군 확보에 열을 올림. 특히 남송 때 되면서부터는 금나라 때문에 하천방어를 강화하면서 전선 수를 대폭 늘림. 자연스럽게 송나라의 조선기술은 발전해갔음.
중심지는 천주, 그러니까 취안저우임. 최고의 선박 제조 지역으로 유명했고 아예 배 자체가 특산품이었음. 심지어 금나라가 송을 공격할 때에도 국내의 취안저우 출신자들을 동원했으니 말 다했지. 신안에서 발견된 침몰선도 취안저우선임.
복건(푸젠)은 농업에 부적합해서 해상 무역을 업으로 삼는 사람들이 많았고 이 상인 집단은 민간 조선소에 엄청난 자금을 댔음. 농민뿐만 아니라 황족까지도 선주가 되거나 상품거래를 위탁했음. 송 정부가 취안저우에 시박사를 설치하면서 해외무역의 중심지가 되었고.
취안저우 자체도 풍부한 목재와 철, 방수용 유동나무 기름 등이 풍부했음. 결국 수군선 건함정책 + 해외무역 장려정책+오래된 조선 전통+자본+유리한 입지조건과 재료들이 취안저우 조선업을 견인한 셈이지.
취안저우선의 재료로는 복건지방에 풍부한 소나무, 삼나무, 녹나무가 쓰였음. 소나무 선박의 수명은 5년, 녹나무 선박은 7년임. 목재는 민강을 비롯한 내륙 수로를 통해 조선소로 운송됐지만 일반적으로는 조선소 주변의 목재 산지에서 벌목했음.
조선장들은 처음에는 작은 모형선을 만들어보고 이걸 바탕으로 배를 건조하다 곧 설계도를 작성했음. 건조 방식은 원시적인 슬립웨이 방식이었음. 나중에는 선오라고 해서 원시적인 드라이독을 사용함. 동남아 지역에서 중국선박을 노린 약탈이 빈번해지자 여기 대응하기 위해 취안저우인들은 더욱 큰 복선을 건조했음. 대략 1000료에서 5000료 정도임.
해적을 피해 빠르게 물건을 운송하기 위해서는 항행속도를 높여야 했는데 복선은 첨저선에 뾰족한 선수를 가져서 적합하기도 했음. 복선에 수밀격벽을 설치한 것도 흘러드는 물로부터 상품을 안전하게 보호하기 위해서였음.
사실상 정크선의 원양항해 능력과 해외무역 능력의 발전은 전부 송대 취안저우에서 시작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님. 중국 명청대 해도인 셀든 지도(위 사진)에서 취안저우가 중심으로 나오는 건 이 때문임.
무료로 풀려있으니 보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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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ㅅㄱㅅ - dc App
정크선도 좋지
항해성 되게 좋더라 - dc App
재밌네개추
ㄱㅅㄱㅅㄱㅅ - dc App
ㄱㅅㄱㅅ - dc Ap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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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먹금 - dc App
시기는 다르긴 한데, 저때부터도 서양쪽 대형 카락 같이 500톤 이상 나가는 큰 정크선도 건조 가능했음?
이 글 쓴게 작년이라 그건 기억이 잘 안 남. 미안. - dc App
1600년대 지도인데 동남아 지리가 동북아보다 정확하네
우리입장에서야 중국이 동북아랑만 좆비볐다고 생각하지 중국해상무역은 주로 동남아랑 이뤄졌으니
저거 만든 상인들은 동북아로 안 갔으니 - dc App
송나라는 보면 석탄 에너지원 사용에 기초적인 수압크레인, 면직업 발달로 영국의 초기조면기같은 기계들도 나오는거보면 몽골없었으면 인류의 산업혁명이 더 앞당겨지지 않았을까라는 생각도해봄
송업혁명은 유서깊고 재밌는 대역 시나리오지 - dc App
이거 4050 아저씨들이 중뽕 들이키고 하는 유서깊은 헛소리잖아
@ㅇㅇ(61.39) 걍 웃고 넘겨 - dc App
@ㅇㅇ(61.39) 그야 학술연구하는 사학자 교수들이 4050 틀딱들이니깐요?
개추 - dc Ap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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