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 태종의 패배는 중국민중의 의식에 '강국 고(구)려, 맹장 연개소문' 이미지를 깊숙이 각인시켰다. 송나라 신종이 왕안석과 대화하다가 당 태종이 고구려 원정에서 이기지 못한 이류를 물으니 왕안석이 연개소문이 비상인(非常人)이었기 때문이다고 응답하였다든가, 1260년 고려의 태자가 원나라에 항복하러 가자 쿠빌라이가 '고려는 당 태종도 친정을 하였으나 이기지 못한 나라'라면서 크게 기버하였다는 일화나, 청나라 때 경극의 인기 레퍼토리의 하나가 연개소문과 당장 설인귀 간의 전투를 내용으로 하는 것이었다는 점 등은 그런 면을 말해준다. 또한 한국인에게는 자랑스런 역사로 널리 기억되었고 회자되었다. 특히 안시성 전투가 그러하였다.
(중략)
조선의 세조는 "문종께서 병요(兵要)를 편찬하도록 나에게 명하셨다. 내가 번잡한 것을 빼고 이를 간략하게 해 (중략) 무신들로 하여금 숙독하게 하려 한다. 만약 수-당의 황제가 친정을 하여도 고구려에 승리하지 못한 일을 사람들로 하여금 듣게 하기를 마치 어제의 일과 같이 한다면 유익함이 있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임진왜란 때 의병장인 곽재우는 "안시성에서 잘 지켜 나라를 건졌다"고 하면서 안시성의 예를 국난 극복의 선례로 강조하였다. 숙종 또한 <동국통감>을 읽고 한탄하면서 "고구려가 작은 나라인데 성을 잘 지켜 수-당의 백만 대군을 막을 수 있었는데, 병자년에 수치를 당하였다. 이 일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고 하였다.
출처: 삼국통일전쟁사, 노태돈 저, 서울대학교출판부, 2009년, 108~109쪽
당한테는 결국 졌잖아 ㅋㅋ
숙종이 성 많이 쌓음
사이다긴 한 사람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