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북원정벌에 여념없던 명나라에 샤바샤바해서 유황과 염초를 80만근씩 얻어오지않나



화약감조청의 설치와 확장으로 건국초 연 "6근"도 안되던 화약생산량을 연 6500근으로 1000배를 늘려서 서북 여진족 줮패기 조선스라움 건설에 연 8천근의 화약을 사용함



또한 문종 대에 이르러서 전국에 25개의 화약생산기지를 만들어 정확한 수량은 기록이없지만 세종대보다 더 화약생산을 늘림



그러다 단종 세조를 거치며 화약생산은 거의 중단되다시피 하였고 화약제조법은 오히려 퇴행하고 을묘왜변에 가서야 화약제조가 다시 시작되게됨 화약의 과잉생산으로 왜인들이 화약무기를 입수할까봐가 대면적인 이유였음

정작 왜 친구들은 중국 조선루트가 아니라 전혀 엉뚱한 곳에서 화약무기가 보편적으로 들어왔지만



역떡굴리던 쿨찐친구들이 화약조선이란 말 ㅈㄴ 싫어하던데 세종대야말로 진짜 화약 조선이었음 세종대엔 일본과 중국친구들마저 조선의 화약제조법을 참고하려했으니


난 세종이 단순히 한글만들고 악기 둥기덩거리던 문예 군주취급 받는게 슬프다




『조선시대화약병기사연구(火藥兵器史硏究)』(허선도, 일조각, 19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