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ENTRAL INDUSTRIAL DISTRICT: THE INDUSTRIAL HEART OF THE SECOND POLISH REPUBLIC

중앙산업지구: 폴란드 제2공화국 산업의 심장
폴란드 제2공이 걸어온 현대화의 길


“우리 눈앞에 위대한 일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조국의 위대함을 위하여 일에 마음과 노력을 다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평범하게 남아 있어서는 안 됩니다. 동시에 우리는 중앙산업지구에 우리의 마음과 아낌없는 지원을 다해야 합니다” – 라고 1938년 정보 책자의 저자들은 주장했다. 그것은 당시 폴란드의 가장 거대한 투자 프로젝트를 홍보하는 것이었다. 바로 중앙산업지구다.

안드레이 자비스토프스키 by Andrzej Zawistowski






19세기에 산업혁명이 중앙유럽에 도달했을 때, 어느 지도에서도 폴란드란 나라는 찾을 수 없었다. 18세기 말 러시아, 오스트리아와 프로이센에 의해 나뉘었던 폴란드 영토는 다양한 경제조직에 동원되었다. 1918년 이후, 이 세 조각으로부터 폴란드 경제조직이 단일하게 형성되어야만 했다. 이는 쉽지 않았다. 때로 장애물들은 꽤 평범했다. 서로 다른 측정단위, 중량단위, 그리고 교통법규 표준이 함께 통용되었다.


하지만 때로는 근본적인 문제가 있었다. 예를 들어 국경의 변화라던가 옛 침략자들의 나라에 대한 판매 가능성 손실, 또는 새 국가 영토 내의 산업 중심지들의 제한 등이 있었으며 이는 특히 국방 문제에 있어 중요했다. 폴란드 산업의 많은 부분은 상부 실레시아에 위치했으며 이곳은 독일 국경과 바로 맞닿아 있었다. 무력 분쟁이 벌어진다면 이 광산들과 제철소 또는 공장들은 최전선에 서게 될 것이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이 새로이 태어난 폴란드는 새롭고 현대적인 산업 구역을 필요로 했다는 것이며 그것의 발전은 국가의 현대화를 이끌 수 있어야 했다. 나라의 과밀한 마을들에서 기다리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일자리를 주는 것 말이다.





안전 삼각지대
1921년, 앞서 언급한 조건으로 인해 소위 안전 삼각지대라 불리는 곳에서 폴란드 방위산업을 길러야 한다는 물음이 떠올랐다. 이 지역의 경계는 자주 바뀌었으나 근본적으로는 비스툴라와 산 두 강의 분기점으로 낙점되었다. 이 지역이 삼각형 모양이 아닐 때에는 “안보 지역”이나 “중앙 지구” 등의 다른 이름이 나타나기도 했다. 물론 자연적인 모양 때문에 안전 삼각지대라 불리는 건 아니다.


이 지역은 독일 국경으로부터 200km, 그리고 소련 국경으로부터 300km 넘게 떨어져 있었다. 남쪽으로는 폴란드 제2공과 꽤 냉랭한 관계에 있던 체코슬로바키아와 훨씬 가까웠으나 카르파티아 산맥이 자연적 방어선을 제공했다. 그러나, 이 방어 전략은 전쟁 방식의 혁명적인 변화를 간과했다. 100km 정도 거리는 보병과 기병을 막는 데에는 의미 있는 장애물일지 모른다. 다이나믹하게 발전하는 모터화 부대, 특히 항공 전력에 있어 이는 딱히 장애물이라 할 수 없었다.


“안전 삼각지대”에서의 일은 수 년이 걸렸다. 하지만 당시에는 고작 몇 안 되는 탄약공장들만이 증가했을 뿐이다. 1928년 3월이 되어서야 이 지역에 투자하는 사업가들은 몇몇 세금과 요금 납부 대상에서 제외되었는데, 이것은 개인 투자자들을 장려하기 위해서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Mościce에 국영 질소화합물 공장 건설이 시작되었다. 이것은 폴란드 2공화국의 가장 큰 국가적 산업 투자였다. 생산물 중 일부는 군대에 공급될 계획이었다.


하지만, 야망 넘치는 계획들은 기대한 만큼의 결과를 내지 못했다. 첫째, 군 일각에서 “중앙 구역” 아이디어와 거리를 두었고, 이어 1920년대 말에는 대공황이 찾아왔다. 폴란드가 경기침체에 가장 영향받은 국가로 판명되면서 거대한 투자의 꿈은 기다려야만 했다.







오이게니우슈 크비아트코프스키의 계획
하지만 같은 시기 위기로 인해 중앙산업지구의 개념을 떠오르기도 했다. 국가가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새로운 직업을 창출할 수 있는 투자들이 필요했다. 부총리 겸 재무장관 오이게니우슈 크비아트코프스키 (위에 언급한 Mościce 공장의 감독관 출신)는 이를 이해한 사람이었다. 그는 4개년 투자계획을 실행할 것을 주장했는데 이 중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중앙산업지구의 설립이었다. 동시에 군대는 자체적으로 군 현대화와 발전을 위한 6개년 계획을 입안했다. “안전 삼각지대”는 두 아이디어 모두에 중요한 역할을 맡을 것이었다.


1937년 2월, 크비아트코프스키는 중앙산업지구 개념도를 최초로 공개했다. 이 지역은 경제적인 성공과 현대성과 번영의 진정한 원천이 될 것이라고 구상했다. 수 개월 간의 협의 끝에, 폴란드 영토의 약 15% 정도 되는 면적에 중앙산업지구를 건설하기로 결정되었다. 키엘체, 크라쿠프, 루블린, 그리고 르부프에 속한 46개 지역이 포함되었다. 미래에는 대부분의 중앙산업지구가 산도미에시를 중심으로 하는 지역에 집중될 것으로 되었다. 이를 위해 이 역사적인 도시는 지역의 중심으로 탈바꿈하게 될 것이다. 산도미에시는 400년간 이미 그러했으나 1795년 폴란드의 멸망 이후 그 지위를 잃었었다.


미래의 중앙산업지구 지역에는 6백만의 거주민들, 폴란드 제2공화국의 18%에 달하는 인구가 거주했다. 대부분은 촌락에 살았고 오직 1백만만이 지역 내 94개 도시와 마을에 살았다. 이 6백만 명의 사람들 중 약 70만 명이 자유 노동자로 추산되었고 그들은 직업이 필요했다. 만일 그들이 고용주를 찾는다면 그들은 농업 생산물의 소비자가 되어 촌락의 주민들에게 이익을 가져다줄 것이다.




A, B, C.
중앙산업지구는 3개의 지역으로 구성될 예정이었다. A 지역은 키엘체와 라돔 일대에 위치했으며 원자재 산업에 중점을 두었다. 철광석과 구리 원광 모두 이곳에서 산출되었다. 그러나 이곳은 역사적인 폴란드의 옛 산업 지역도 포함했다. Skarżysko, Starachowice, Pionki, 키엘체와 라돔 그리고 다른 지역들에는 이미 탄약 공장이 위치했다. 일부는 “안전 삼각지대” 개념이 탄생한 1920년대에 더욱 확장하거나 현대화되었다. 이미 1936년에는 최고의 폴란드산 무기 중 하나로 꼽히는 반자동권총 FB Vis이 라돔에서 생산되었다. 기존에 존재하던 플랜트들은 중앙산업지구에 포함되었고 일부는 더욱 확장하였다.


루블린은 B 지역의 중심지가 되었다. 이 지역은 그 비옥한 토지에 힘입어 중앙산업지대에 식량을 공급할 것이었다. 이는 이 지역이 산업 투자가 전혀 없었다는 말이 아니다. 과밀한 농업이 아닌 일자리를 창출할 필요가 있었다. 탄약 공장들이 Kraśnik 과 Jawidz에 세워질 예정이었고 Krasnystaw에서는 TNT를 생산할 예정이었다. 루블린은 항공과 자동차 생산의 중심지로 예정되었다.


중앙산업지구의 핵심은 C지역으로, 안전 삼각지대 내에 위치했다. Pławo 마을이 그곳에 있었으며 이곳은 전체 지구의 가장 중요한 산업 중심지였다. 끝내 이 마을은 신도시 스탈로보 볼라(Stalowa Wola)의 일부가 되었다. 그 이름은 당시의 국방장관 타데우슈 카스프지스키가 한 말에 직접적인 기원을 둔다. 그는 중앙산업지구 건설을 두고 “현대 국가로 도약하고 차별화될 폴란드의 강철의 염원”이라 말했다. 남부의 플랜트들은 스탈로보 볼라에 설립되었다. 제철소와 제강소가 들어섰으며 곧이어 알루미늄 제련소가 자리잡았다. Mielec는 폴란드 항공 산업의 소재지로 지정되었다. 그 중에서도 Rzeszów에서는 항공기 엔진 공장이 설립될 예정이었다. Dębica에는 미래에 화학공장,, 고무공장(타이어) 그리고 금속 가공 시설이 계획되었다. 화약, 탄약과 무기 공장 역시 여러 곳에 건설될 것이었다.


왜 방위산업이 중앙산업지구의 일차적인 목표였을까? 답은 간단하다. 전쟁이 다가오고 있었고 유럽은 무장하기 시작했다. 폴란드군 역시 현대화된 무기를 필요로 했으나 국가의 엔진 생산은 수요를 충족시킬 수 없었다. 외국으로부터의 수입은 수년간의 기다림을 필요로 했다. 누구든 빠르게 무기를 얻고 싶다면 무기공장을 지어야만 했다. 이것은 그렇다고 중앙산업지구에 다른 생산 품목을 가진 공장이 없다는 뜻은 아니다. 그러나 그러한 류의 투자는 방위산업의 그것보다 작았다.


Rożnów(이곳에는 1936년 이전부터 투자가 시작되었다)와 Myszkowice, Solina, Czchów 그리고 Lesko의 수력 발전소들은 그곳의 산업과 주민들의 필요를 위해 계획되었다. 동시에, 인근의 매장지에서 산출되는 천연가스를 공급하는 가스 파이프라인 역시 건설되었다. 이 해결책은 독일과의 전쟁에서 전략적으로 중요했는데, 실레시아에서 채굴되는 석탄에 의존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전통적인 석탄 발전소들 역시 우선적으로 특정 공장들을 위해 건설되었다. 이는 철도와 도로 인프라에 대한 투자로 보완되어야 했다. 도시와 구역의 노동자들을 위한 아파트들 역시 고려되었다. 산도미에시의 거주민들은 1만 명에서 10만으로 증가할 것이었다.



투자 움직임
크비아트코프스키의 야심찬 계획에 따르자면 중앙산업지구는 1940년 6월 30일에 설립될 예정이었다. 국가는 최대 18억 즈워티의 투자금을 소화해야 했다. 그러나 개인사업가의 투자를 장려하기 위한 시도 역시 이루어졌다. 그들은 수많은 이권과 시설을 제공받았다. 하지만 그 반응은 꽤 조심스럽고 그다지 열광적이지 않았다.


그러나 지구 내의 작업들은 시작되었고, 정부의 프로파간다 역시 더불어 발전했다. Maria Dąbrowska와 Melchior Wańkowicz를 비롯한 저널리스트들과 작가들은 중앙산업지구에 대해 쓰기 시작하였다. 남부 산업지대의 공사 현장에 대한 Wańkowicz의 보고서는 이렇게 끝난다: “이 남자들과 전국 역시 이제 동등한 조건에서 일할 수 있다. 그러나, 그들도 다른 모든 시대와 모든 상황에 놓여 있던 이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강한 의지와 목표가 그들의 목적을 얻기 위해 필요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숲 속에 건설될 강철 생산 공장이 강철의 의지(Stalowa Wola)이란 이름을 받은 것은 행운을 가져올 것이다. 그것은 그 도시의 생산의 증거이며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격려가 될 것이다.” Wańkowicz는 소련에 대한 폴란드인들의 태도를 고려해 조금 위험한 문체를 쓰기도 했다. 그는 스탈로브 볼라를 두고 “폴란드의 마그니토고르스크(소련의 산업 도시)”라고 불렀다.


이 비교는 꽤 정확했다. 1930년대에 마그니토고르스크에는 ‘무에서부터’ 거대한 제강 시설이 건설되었다.(그러나 Wańkowicz는 이것이 정치범들에 대한 노동이라는 것을 간파하지 못했다.) 그것은 소련이 전 세계에 자랑했던 1차 스탈린 5개년 계획의 최초의 플래그십 투자 중 하나였다.


1939년 6월 크비아트코프스키 총리의 4개년 계획이 성공을 거두었음에도 불구하고 중앙산업지구는 여전히 완공되지 않았다. 건설 완료된 공장들(계획된 것에 비해 적었다)에서는 대략 10만 명의 근로자들을 고용했다. 그럼에도 그곳에서는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일자리를 찾고 있었다. 그러나 무기 생산은 천천히 시작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의 발발 전까지 10개의 새 공장들이 중앙산업지구에 가동되기 시작했다. 스탈로보 볼라의 남부 공장, 기계공장인 Rzeszów의 Fabryka Obrabiarek H. Cegielski, 타이어 공장인 Dębica의 Fabryka Gum Jezdnych “Stomil”, 금속 마그네슘 제련소인 Wytwórnia Magnezu Metalicznego w Bliżynie, 천연고무 공장 Fabryka Kauczuku Syntetycznego w Dębica, 엔진 공장인 Rzeszów의 PZL Wytwórnia Silników nr 2, 탄약 공장인 Kraśnik의 Państwowa Fabryka Amunicji nr 2, 항공기 기체 공장인 Mielec의 PZL Wytwórnia Płatowców nr 2, 탄약 공장인 Majdanie-Dębie의 ], Wytwórnia Amunicji nr 3, 그리고 Pustkowie near Dębica의 Lignoza SA.


제3제국이 중앙산업지구를 점령한 1939년, 독일은 지구를 해체하고 공장 장비를 옮기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들이 1941년 6월 소련을 침공하면서 공장들은 독일의 감독을 받아 동방에서 싸우는 독일군을 위한 장비를 생산했다. 1944년, Rzeszów의 PZL 엔진공장은 1939년보다 네 배나 많은 직원을 고용했다. 그러나 곧 제3제국은 소련군이 동쪽에서부터 다가옴에 따라 공장을 해체했다. 전쟁 이후, 공산당은 제2공화국에서 건설한 중앙산업지구를 홍보하는 것을 중지했다. 그러나 제2공화국 시절 만들어진 산업화된 지역은 버려지지 않았다. 1930년대에 계획되었던 수많은 투자들 역시 결국 완료되었다.


그디니아 항에 인접했던 중앙산업지구는 폴란드 제 2공화국의 가장 거대한 투자이자 경제발전의 상징이었다. 이 투자가 수년간 이어졌던 폴란드의 취약한 경제 정책을 끝냈음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다수의 공장들은 중요한 산업 중심지가 되었다. 1939년 9월까지 개업했던 10개의 공장 중 8개가 다양한 형태로 지금까지 운용 중이다. 일부는 굿이어나 록히드 마틴과 같은 거대한 다국적 기업의 손에 있기도 하다.



Author: Andrzej Zawistowski
Translation: Alicja Rose & Jessica Sirot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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