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이후, 에니그마를 해독해낸 블레츨리 파크의 노력은 널리 알려져 있다. 하지만 오하이오주 데이튼에 있던 미해군의 해군연산장치연구소(NCML)는 대개 존재나 Bombe 같은 이름 몇몇 정도만 언급하고 넘어간다. 기실 제대로 알려지지 않아서가 그 이유인데, 심지어는 전후의 암호관련 작업에 대해선 알려질지언정 대전기 작업은 알려지지 않았을 지경이다. 여기엔 엄격한 보안조치뿐 아니라 각 부서의 구획화도 큰 몫을 했다.


어쨌거나 미해군의 암호해독 '컴퓨팅 머신' 개발은 전후에도 전혀 필요성이 떨어지지 않고 지속됐고, 육군에서 포병 사표 계산용으로 개발된 ENIAC/EDVAC과 해군 항공국에서 풍동 겸 비행 시뮬레이터를 위해 개발된 WHIRLWIND 등을 참고하며 나아갔다. 특히 참고가 된 건 신생 군종인 공군의 SAGE 프로젝트였다. 이는 49년 소련이 핵실험에 성공하며 대륙 방공시스템 강화의 필요성을 절감해 시작된 프로젝트였는데, 조기경보 레이더에서 정보를 받아 요격기를 관제하는 걸 골자로 했다.

SAGE 컴퓨터 열 중 일부분.


시험적으로 제작된 SAGE는 성공했고, 여러 곳에서 정보를 받은 중앙 컴퓨터가 표적에 교전 우선순위를 할당, 방공자산에 분배하고 요격기 경로를 관제하는 것이 가능하단 걸 증명했다. 문제는, 이걸 해군이 그대로 가져다 쓰기엔 SAGE의 진공관 컴퓨터는 그 자체가 하나의 시설 건물이 될 만큼 거대했단 것이었다. 하지만 SAGE는 해군의 NTDS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여기엔 WHIRLWIND의 컴퓨터가 쓰였는데, 태생이 해군항공대를 위한 해군 프로젝트였으므로 해군도 이 컴퓨터의 특성은 속속들이 알고 있었다. 해군 암호부서가 이를 기반으로 개발한 ATLAS 컴퓨터는 1954년, NSA의 개인용 소형화 컴퓨터 개발 'SOLO' 프로젝트와 협업하며 벨연구소가 47년 개발한 트랜지스터를 사용, 소형화에 성공했다.

SAGE 시설의 구성도.

NSA의 보안조치로 ATLAS II/SOLO 개인용 컴퓨터는 현존하는 사진자료가 없으나, 비슷한 시기인 57년에 트랜지스터를 사용해 제작된 공군의 TRANSTEC 컴퓨터(위 사진)와 유사했을 것이다.


이제 여러 레이더의 정보를 수합한 컴퓨터가 정보를 종합, 시각화하고 자동으로 연산하는 알고리즘과, 막대한 연산력을 종래의 대형 기계들이 아닌 소형 기계로 수행 가능하게 한 디지털 컴퓨터 기술이 갖춰졌다. 이제 해군 방공문제의 해결에 필요한 건 이들을 합쳐 새로운 비전을 제시할 추진력이었다.


1954년 4월, 해군 연구부장 퍼스 소장은 미 본토방공 개선을 목표로 한 공군의 SAGE 프로젝트에 협력 그룹을 파견했다. 이들은 타군간 협조를 증진하면서, 동시에 SAGE의 개념을 개별 함정에 적용할 수 없을지 브레인스토밍하는 역할이었다. 굴드 헌터 중령이 이끄는 이 프로젝트의 이름은 '램프라이트'였고, 주요 참여자로는 타군의 고급장교와 원활한 소통을 위해 일계급 특진한 어빈 맥날리 중령이 있었다.


램프라이트 프로젝트 팀원들 대다수에게, SAGE의 수상함 적용은 허황된 목표로 여겨졌다. 그들을 탓하기엔 SAGE의 컴퓨터들은 크기부터가 너무 압도적이었다. 게다가 진공관들은 엄청난 전력을 소모했고, 냉각시키는 데에도 추가 전력을 소모했다. 이런 초대형 시설을 함정에 설치하는 건 상상도 못할 일이었지만, 맥날리는 상상의 명맥을 이어갔다.


SAGE는 초대형 컴퓨터가 모든 레이더들의 정보를 수합해서 그렇게 커야만 했다. 이걸 배에 그대로 적용하면 그 목적 하나만을 위해 신규 설계하어 건조된 대형 '지휘함'이 기동부대 전체의 레이더 임무를 처리하고, 기함으로 집중 공격당해 무력화된다면 부대 전체가 마비될 것이다. 해군에게 필요한 건 일정 체급 이상의 모든 전투함들이 체계를 탑재해서 연산 필요량을 분담하고, 서로 소통하며 전부가 똑같은 전술화면을 볼 수 있도록 짜인 망이었다.


이를 위해 맥날리는 기동부대의 컴퓨터들을 전부 연결하는 자동화 라디오망을 구상했다. 각 접촉물 경로에 숫자를 지정하고 각 함정에 경로추적연산을 자동분배하는 시스템이었다. 그런데 함정들은 지속적으로 움직이며 제 위치뿐 아니라 서로간의 상대위치도 변하므로, 이게 작동하려면 자동 추측항법 장치 또한 각 함정에 탑재되어야만 했다.


맥날리가 Naval Tactical Data System, NTDS라고 부른 체계는 새로 개발해야 할 300마일 거리의 이차원 레이더, 250마일 거리의 삼차원 레이더의 운용을 전제했다. 각 함정은 이 두 종류 레이더에서 받은 정보로 오퍼레이터가 선택한 표적을 각각 250개까지 추적해 예상경로를 다시 오퍼레이터의 스코프 위에 표시하고, 공중/해상/수중/전부의 경로를 옵션에 따라 변경해가며 표시하도록 되어 있었다. 또한 본함이 추적하는 표적들만 표시할지, 데이터링크로 받은 다른 표적들을 전부 표시할지의 옵션도 오갈 수 있게 되어 있었다.


또한 이 시스템은 각 표적의 상대적 위협순위를 연산, 가장 위험한 표적들을 특정 함정의 포/미사일이나 기동부대의 요격기에게 할당하도록 권유할 것이었다. 요격자산이 정해지면 표적과 잇는 선을 그려 부대 전체에게 그 정보를 공유하고, 요격자산에겐 표적을 요격할 수 있도록 사격제어나 비행경로 관제를 제공할 거였다.

NTDS의 데이터 흐름도.


문제는 이 연산을 수행할 디지털 컴퓨터를 어떻게 작게 만들어서 배에 구겨넣는지였는데, 맥날리는 트랜지스터를 그 해답으로 제시했다.


NTDS 개념안은 연구부장을 거쳐 당시 참모총장 알레이 버크 제독까지 보고되었다. 개념을 마음에 들어한 버크는 맥날리를 함선국 전기설계개발부서로 이동시켰고, (맥날리는 존재하는지조차 몰랐었던) 트랜지스터를 사용하는 암호해독용 ATLAS II 컴퓨터를 개발하던 팀을 합류시켰다. 그리고 1955년에 신생 팀에게 데드라인을 제시했다. 5년 이내.

해군참모총장(CNO) 알레이 버크 제독.


당시 신규 프로젝트가 해상 시험까지 가는 데에 소요 시간은 평균 13년 정도였다. 맥날리가 난색을 표하자, 알레이 버크는 대신 파격적인 정식 진척도평가 면제, 정기 인사이동 없이 개발인원 5년간 고정의 조건에 합의하며 팀이 개발에만 전념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했다.


알레이 버크 제독은 자동화 대공전투 체계에 대한 장교단 태반의 반감을 짐작하고 있었다. 1955년엔 컴퓨터가 뭔지 정확히 인식하는 사람이 적었고, 새로운 전술자료처리체계를 SF속 로봇에게 명령을 받는 식으로 이해하는 사람이 더 많았다. 버크는 고급장교 사이에서 퍼진 반감을 억누르기 위해 NTDS 개발에 개입하려 드는 행위를 좌시하지 않겠다고 공개적으로 발언했다. 1961년엔 해군부 장관 존 코날리가 버크의 아군으로 참전했다. 태평양전쟁 도중 USS 에식스에서 근무하다 소령으로 전역한 해군장교였던 코날리는 다량의 카미카제를 상대한 전투기관제관으로 일해본 적 있었고, 지금 개발중인 시스템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꼈다.

해군부 장관 존 코날리.


1956년 4월, 알레이 버크는 NTDS팀이 제출한 기안서에서 한 군데만 수정한 채 프로젝트의 진행을 승인했다. 수정사항은 가시거리(20마일) UHF 라디오를 이용한 함정간 링크였다. 원자폭탄에 대비해 기동부대의 대형을 150마일 간격까지 벌리는 구상을 하고 있던 해군은 전술 데이터링크 장비를 300마일까지 송수신이 가능한 HF 라디오로 주문했다.

원자폭탄을 염두한 함대 산개대형.


이제 모든 여건이 갖춰지고 개발이 진행되는 가운데, 다른 문제도 슬슬 떠올랐다. 모두가 꺼려하는 NTDS를 시험할 운없는 시범함은 누가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