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델 카스트로는 베다도에 있는 자택에 있었다. 그는 미사일 해체 소식을 >레볼루시온> 편집장인 카를로스 프랑키와의 전화 통화에서 들었다. AP통신의 텔레타이프는 <라디오 모스크바>에서 방금 방송한 흐루쇼프의 편지 내용을 보도하고 있었다. 프랑키는 "새로운 소식에 어떻게 대응할지" 알고 싶어 했다.
"무슨 소식?"
전화로 뉴스 속보를 전한 프랑키는 카스트로가 화를 내리라고 예상했다.
"이런 씨팔 개자식!" 피델은 치밀어 오르는 화를 계속 분출했다. "자신의 과거 욕설 기록마저 경신할 정도였다." 벽을 차고 거울을 깨기도 했다. 소련이 "쿠바에 알려주지도 않고" 미국과 협상했다는 사실이 카스트로의 화를 돋구었고, "심한 굴욕을 당했다"고 느끼게 했다. 카스트로는 소련 대사가 상황을 확인하도록 도르티코스 대통령에 연락해 보라고 지시했다.
알렉세예프 소련 대사는 전날 밤 늦게 잠들었다. 그래서 전화가 왔을 때에도 아직 침대에 있었다.
"라디오에서 소련 정부가 미사일을 철수하기로 했다고 발표했습니다."
도르티코스의 말을 알렉세예프는 이해하지 못했다. 분명히 무슨 실수가 있는 것이 분명했다.
"미국 라디오를 믿어선 안 되오."
"미국 라디오가 아닙니다. <라디오 모스크바>에서 발표했습니다."
(중략)
<라디오 모스크바> 방송이 나오고 몇 시간 뒤 흐루쇼프가 카스트로에게 미사일 철수 결정에 대해 해명하는 편지가 아바나 주재 소련 대사관에 도착했다. 알렉세예프 대사가 편지를 전달하려 했을 때, 부재 중이어서 카스트로를 만날 수 없다는 통보를 받았다. 사실 카스트로는 알렉세예프 대사를 만나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카스트로는 흐루쇼프가 미국과의 대결에서 결정적인 순간에 쿠바를 "내팽겨"쳤다는 이유로 분노했다.
카스트로는 추가 정보를 얻기 위해 엘치코에 있는 소련군 사령부에 잠깐 들렸다. 플리예프 장군이 모스크바로부터 미사일 해체 지시를 받은 사실을 확인해 주었다.
"전부 사실이오?"
"전부입니다."
"잘됐구려." 카스트로는 화를 억누르면서 답하고 일어섰다. "좋소. 이만 가보겠소."
카스트로는 소련의 미사일 철수 결정에 대한 불만을 ㅍ시하기 위해 미국과의 합의를 위한 전제 조건으로 다섯 개 "요구 사항"을 마련했다. 여기에는 경제 봉쇄 해제, 일체의 전복 활동 중단, 미군의 관타나모 해군기지 철수가 포함되어 있었다. 또한 쿠바는 자국 영토에 대해 어떠한 국제적인 "사찰"도 수용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분명하게 밝혔다.
소련의 양보 소식을 들은 쿠바인들은 분노를 표출하기 위해 거리로 뛰쳐나왔다. 한 때 곳곳에 붙은 "쿠바는 혼자가 아니다"라는 표어가 담긴 포스터는 사라졌다. 사람들은 "소련군은 돌아가라", "흐루쇼프는 호모다"라고 외쳤다. 얼마 안 가 군중들은 새로운 구호를 만들어냈다.
니키타, 니키타,
이 속 좁은 허풍쟁이야.
니키타, 니키타,
한번 준 걸 뺏아갈 순 없지.
(중략)
카스트로는 소련을 맹비난하며서도 실용을 중시하는 정치인의 태도를 유지했다. "같은 실수를 두 번 하지는 안을 겁니다." 카스트로가 젊은 추종자들에게 말했다. 쿠바는 "미국과 단절"하자마자 "소련과 단절"하지는 않을 생각이었다. 어쨌든 엉클 샘의 품으로 되돌아가는 것보다는 나았다. 혁며을 구하기 위해 카스트로는 기꺼이 엄청난 희생, 즉자신의 자존심을 접을 생각이었다.
출처: 0시 1분 전, 마이클 돕스 저, 박수민 옮김, 2015년, 모던타임스, 556~563쪽
북괴도 저렇게 되길
사회주의 국가에서 호모가 왜 욕이지? 모두 재교육이 필요하네
쿠바랑 아직도 수교 안 하는 미국도 독하다 독해
몇년 전에 하기는 했을걸
플로리다가 민주당에서 공화당으로 넘어간게 제미 쿠바인들의 표 영향력이 커서 당분간 공화당은 쿠바에 적대적 정책을 유지할꺼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