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상 세르게이 비테는 이와 같은 견해에 대해 반대했지만 차르 니콜라이 2세는 강경파에게 힘을 실어주었다. 차르의 명령으로 인해 러시아 군은 1897년 12월 12일 여순과 대련을 점령했다. 그리고는 여순항을 포트 아서(Port Arthur)라고 명명했다. 러시아 군은 여순과 대련에서 철수하지 않았다. 




청나라의 입장에서는 러시아 군을 불러들이면서 위기를 맞게 되었다. 러시아는 여순과 대련을 25년 동안 조차하고, 동청철도와 여순항을 연결하는 지선의 부설을 허락하도록 요구했다. 이에 청나라는 무기력해졌다. 결국 청나라는 여순과 대련의 25년 동안의 조차를 허용하고, 남만주 철도의 부설권도 넘겨주었다. 이 철도가 남만주 철도(南滿洲鐵道)이다. 남만주 철도는 동청철도의 하얼빈에서 출발해 대련만까지 연결하는 철도이다. 


 


두 철도가 만나는 하얼빈은 이 때부터 근대도시로 변모하게 된다. 이로 인해 러시아는 여순에 관동성을 설치하고 총독을 파견한다. 러시아는 만주를 영토화 하겠다는 야심을 드러냈고, 이를 지켜보던 일본은 시베리아 철도가 완공되기 이전에 러시아를 싸우겠다는 생각을 굳히게 된다.



https://jinkorea.kr/news/view.php?no=7775



1890년대 후반부터 러시아 제국의 영향력 확대로 청나라 정부는 만주에서 영향력을 거의 상실했음.


대한제국이 간도에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던건 사실상 빈집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