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차 협약
러시아에 이어 열강 각국도 대일 배상금에 대한 차관 공여를 실시하였고, 그 담보 조건에 항만조차나 철도부설권을 요구하여 중국 각지에 자신들이 독점적으로 관심을 가지는 범위를 설정하게 되었다. 1898년 1월에는 영국이 차관 공여에 대한 대가로 장강 유역의 철도부설권을 얻었다. 1897년 11월 독일이 선교사 살해를 구실로 자오저우 만을 점령하였고, 1898년 3월 자오저우 만의 조차가 명기된 독청조약이 체결된다.
때를 같이하여 1898년 3월 대일배상금의 원조에 대한 담보와 청나라 국내에서 일어나는 배외주의 운동에 대한 책임을 이유로 “뤼순 (항구) 대련(만) 조차에 관한 협약”이 러시아와 청나라 사이에 맺어졌다. 이에 따라 러시아는 요동반도 남단의 뤼순 · 다롄의 25년에 걸친 조차권과 동청철도와 다롄을 잇는 지선(남만 지선) 철도 부설권을 얻어 군항이나 철도 등의 건설을 시작했다. 영국은 시베리아 철도와 뤼순 · 다롄을 손에 넣은 러시아가 동아시아에서 육군뿐만 아니라 해군에서도 우위에 설 것을 우려하여 1898년 5월에 청나라에 대련 대안의 웨이하이웨이를 조차시켰다.
제2차 러청밀약
러시아에 의한 철도 건설로 만주의 반식민지화가 진행되자 중국 민중의 분노에 불이 붙어 1900년에 의화단 운동이 발발한다. 이 혼란을 틈타, 강동육십사둔의 청나라 사람을 학살하고 아무르강을 넘어 남하, 동북성을 점령한 러시아는 1900년 11 월에 청나라와 ‘제2차러청밀약’을 맺어 만주에 군대를 주둔시킬 권한과 요새를 설치하고, 러시아인을 보호하며 지방 정부에 대한 감독권의 행사 등 철도 연선뿐만 아니라 만주 전역의 군사 및 행정도 지배하에 두었다.
1902년 4월 〈만주 반환에 관한 러청 조약〉에서는 러시아 군의 동북삼성에서의 단계적 철수가 동의되었지만, 러시아는 제2기 이후 철수에 응하지 않았고, 1903년 4월에는 반대로 철수 조건으로 청나라에 대해 다양한 요구를 했다.
https://ko.wikipedia.org/wiki/%EB%9F%AC%EC%B2%AD_%EB%B0%80%EC%95%BD
이미 그 시점의 만주 일대는 러시아 제국의 반식민지화가 되어서 대규모로 러시아군이 배치되고, 경제력 뿐만 아니라 군사/행정까지 장악한 상황임.
애초에 간도 주변엔 청나라 정규군 같은것도 없었고...
당시 만주와 한반도는 청나라와 대한제국이 아닌 러시아와 일본의 각축장이었음..
아 그래서 일본이 한반도 먹자 만주로 간 거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