얄타회담에 대비키 위해 에드워드 스테티누스 미국무장관은, 정책요약서(Briefing Book Paper)를 1945년 1월 18일 루즈벨트 대통령에게 보고하였다. ‘톱 시크리트’라는 붉은 스탬프가 찍인 이 요약서는 전후 미국이 아시아에서 취해야 할 정책노선과 목표에 관해 담고 있었다.
이 정책요약서는 지역별로 분리, ‘전후의 한국지위’라는 소제목을 붙여 한반도의 장래에 관해 언급하였다. 이 ‘한국지위’ 대목에서는 연합군의 한국점령이 끝나면 자주독립을 부여하기 전에 한국인들이 자치능력을 배양할 때까지 잠정적으로 한국을 국제신탁통치나 국제행정체제하(國際行政體制下)에 두어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그같은 잠정적인 통치기구에는 미·영·소·중이 참여토록 해야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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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요약서는 “한국에 들어 앉게 될 한국군정(韓國軍政)에 소련이 독점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면 중국이 소련의 이 지역 팽창을 두려워하게 된다. 마찬가지로 중국이 한국군정에 독점권을 쥐게 된다면 소련이 중국의 한반도 진출에 우려를 표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라고 설명되어 있다.
미국무성의 정책요약서는 또 연합군에 의한 국제행정기구나 신탁통치란 베를린식으로 행정구역을 참여 국가수에 따라 분할할 것이 아니라 중앙행정(中央行政)의 통제원칙 아래 단일구역으로 운영되어야 한다고 지적하였다. 미국이 국제위임 신탁통치 방안으로서 단일구역을 원칙으로 하였다는 것은, 적어도 이 건의서가 마련되던 1945년 1월 18일 현재 미국은 한국의 국토분단을 생각하지 않고 있었음을 반영한 것이라고 하겠다.
말이 좋아서 단일구역이지 "아편전쟁"마냥 쪼개기
루즈벨트는 얄타회 담이 진행중이 던 1945년 2월 8일 스탈린과의 회담 도중 한국에서 신탁통치를 실시할 것을 제의하였다. 관리국으로서는 미·중·소 3국을 제시했으며 신탁기간으로는 20년 내지 30년을 들었다.註 023 스탈린은 루즈벨트의 한국신탁 제의에 관해 다른 이견을 제기하지 않은 채 대체로 공감의 뜻을 표하였으나, 신탁기간과 외군(外軍)의 주둔에 대해선 이의를 달았다. 스탈린은 신탁기간이 짧으면 짧을수록 좋다는 것이었으며, 외국군이 한반도에 신탁기긴에 주둔해도 되느냐고 묻기도 하였다.
미국: 신탁 통치 20년 ㄱ?
소련: 너무 김
트루만이 대통령직을 승계한지 2개월만에 포츠담회담이 1945년 7월 17일부터 8월 2일 사이에 열렸다. 이 회담에 대비키 위해 마련된 미국무성의 정책요약서는 6개월전 얄타회담 때 루즈벨트 대통령에게 보고 되었던 내용과 거의 똑같은 것이었다. 이 정책요약서는 한국이 국제신탁통치하에 들어가야 한다는 점을 계속 강조하였다. “미국·중국·소련 등 3국과 국경을 접하고 있는 한국은 극동의 평화와 안전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위치에 있으므로” 이 3국은 그들 중 어느 하나가 한반도를 독점하기를 바라지 않고 있다고 설명하였다. 그밖의 다른 미국무성 정책요약서도 한반도에 대한 단일국가의 지배는 “심각한 결과를 야기”할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하였다.
국무성: 한반도 갈죽 안하면 ㅈ됨
미국은 일본 상륙작전 부담으로 한반도상륙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였고, 그래서 한반도 전선은 소련에 독점적으로 맡겨야 한다고 결론을 내렸으면서도 동시에 소련의 팽창야욕에 대한 경계심을 늦추지 못했다. 미국 전쟁성(戰爭省;후에 국방성으로 개칭)에 의해 작성된 정책요약서에 의거하면 미국은 소련의 한반도에 대한 단독 군사행위가 소련세력 부식의 수단으로 이용되지 않도록 견제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 요약서는 한반도에 소련군이 상륙하게 될 때는 정치적인 문제를 고려, 일본과 교전중인 다른 연합군이라도 가능한 한 소련군 작전에 참가하도록 해야 한다고 역설하였던 것이다.
전쟁성: 빨갱이들한테 밀고 내려오라고 하죠?
그러나 중국 국민당정부의 입장은 계속 유보적이었다. 한국의 독립운동을 원조하여 독립국가를 완전하게 건립하기를 기대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중국측은 타국이 먼저 한국임정을 승인하고 나면 그 국제법상의 수속 및 유리한 시기를 선택하여 총재의 승인으로 외교부에서 처리한다는 원칙만 세워놓고 있었다. 이는 열강과의 관계에서 중국이 신중을 기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겠으나 임정 내부적으로 보면 대표권을 인정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특히 미국의 경우 임정의 대표권문제를 승인을 하지 않은 이유로 제기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에 중국측은 임정내부의 통일과 독립운동진영의 통일을 계속 요구해 왔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임시정부내에 존재하는 파쟁의 완전해소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뿐만 아니라, 아령(俄領)과 만주·미주 등지의 해외거주 한인 및 국내와의 사이에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지 못함에 따라 변화하는 국제사회에 능동적으로 대웅하지 못하였던 점 등은 실로 애석한 일이었다.
-짱-
여기에서 영국은 근대적 국가를 관리할 수 있는 한국민족의 독립능력이라는 구한말 이래의 고질적인 문제를 거론한다. 과연 한국인들이 앞으로 혼자서 설—독립할—능력이 있으며, 임정은 파벌싸움을 중지하고 한국인들을 지도할 수 있는 인물을 보유하고 있느냐는 것이다.
혐성국이 "혐성"했다
실은 소련과 미국의 군대가 남북한을 해방하여 일본군을 해체하는 준비를 하였던 것이지 소련이나 미국 모두 해방된 한반도를 어떻게 통치할 것인가에 관해서는 전혀 준비가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스탈린은 동구지역점령 등의 통치에 주력하였고 한국의 점령통치에는 거의 고려하지 않았다. 예를 들어, 스탈린은 폴란드를 위해서 볼레스로 비에루트(Boleslaw Bierut)를, 독일을 위해서는 빌헬름 피에크(Wilhelm Piek)나 볼트 울브리트(Walter Ulbricht) 같은 지도자를 모스코바에서 양성하여 전후에 파견하였다. 오토 쿠시넨만 하더라도 스탈린의 지시를 받고 전후 핀란드(Finland)로 돌아가 그곳의 공산혁명에 이바지하도록 하였다. 그러나 스탈린은 재소한인(在蘇韓人)들을 전부 소련에 충성하는 소련시민으로 만들고 누구 하나라도 훈련하여 해방된 한국으로 보내 한국 전체 아니면 북한만이라도 공산정권을 세우는 지도자로 파견할 준비를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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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탈린의 북한주둔 목적은 한국을 일본제국주의로부터 해방하고 소련에 접경하고 있는 나라에 소련을 적대시하는 정권이 들어서지 않도록 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스탈린의 기본정책은 북한에 주둔한 소련군사령부가 수차례 성명한 바 있다. 그러나 스탈린은 재소한인을 이용하여 그의 이러한 기본정책을 실천하려고 한 것은 아니다.
루씨답게 무계획으로 일단 저지르고 봄(일성돼지가 이걸 이용해서 북괴 만듬)
출처: 한민족독립운동사 열강과 한국독립운동(한민족독립운동사 < 한국 근대 사료 DB)
요약: 양키 루씨 논영 섬짱이 "일단 한반도 갈죽하고 나중에 생각하자" 해버려서 45년 이후로는 뭔 짓을 해도 분할 엔딩남 어휴 븅슨들...
동조선제국군 승리로 통일한반도 외지 ㅇㄷ?
뭔소리여 분할통치가 아니라 단일구역으로 통치해야한단 소릴 가지고 혼자 뇌피셜돌려서 말이 단일구역이지 분할통치임 ㅇㅈㄹ하고있네
소련이 개전 안했으면 국민당군이 만주에서 쉽게 안털렸을텐데 구도가 아예 달라지지
제일 무서웠던게 소련 조선인들은 전부 연해주로 이동시켰을거란거고 중공였으먼 지금 우린 무슨성되어서 독립은 꿈도 못꿨을듯
레퍼 가져올거면 그대로 인용하던가 문단 밑에 한줄요약이랍시고 내용왜곡해서 돌리고 자빠졌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