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db.history.go.kr/goryeo/level.do?levelId=kj_030r_0010_0040_0050_0050&types=r
경성이 바닷가에 인접하여 왜구를 예측할 수 없었기 때문에 내지로 도읍을 옮기고자 기로(耆老) 윤환(尹桓) 등을 모아 동(動)과 지(止) 두 글자를 써놓고 가부를 의논하도록 하였다. 많은 사람들은 비록 기꺼워하지 않았으나 이후 만약에 변이 생기면 화가 자신에게 미칠까 두려워하여 모두 동(動)자에 점을 찍고 서명하였다. 오직 최영(崔瑩)만이 불가하다고 하며 이내 군사를 징발하여 굳게 지킬 대책을 진술하였다. 이인임(李仁任)이 말하기를, “지금 피폐한 땅이 1,000리에 이어져 농부들이 경작을 멈추고 구름과 무지개만 바라보고 있는데, 또 군사를 징발하여 농사일을 잃게 하는 것은 나라를 위한 계책이 아니오.”라고 하였다. 경복흥과 최영 등이 태조(太祖)의 진전(眞殿)에 이르러 동(動)과 지(止)를 점쳐서 지(止)자를 얻었다. 우왕(禑王)이 말하기를, “도적이 매우 가까이에 있는데, 점을 따를 수 있겠는가.”라고 한 뒤 정당문학(政堂文學) 권중화(權仲和)를 보내어 철원(鐵原)에 터를 살펴보도록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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