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고했어. 나가 봐."
방금 전 까지 경북 북부지역을 방어하던 마지막 부대가 무사히 후퇴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보고한 부관에게 작전계획 검토서류를 확인한 뒤 서명을 하고 돌려보냈다. 주머니의 담뱃곽을 꺼내 담배 한대나 물려고 했지만 이제보니 돗대였다. 원래 하루에 두 까치 정도 피운다만 요즘 일 때문에 몇날 며칠 담배를 너무 입에 달고 살았나? 이틀 전에 산 담배가 벌써 다 떨어지니 조금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이내 쓴웃음만 나왔었다.
한국전쟁이 끝나고 자그마치 70년이 조금 넘은 국군이 처음으로 마주하게 된 본토에서의 전쟁. 북한의 파주 포격 도발로 시작된 전쟁이 중국의 참전이라는 이상한 형태로 나올거라는 생각은 차마 하지 못했었다. 미 해병대가 원산에 상륙하고 우리 공수사단이 신의주에서 북한군과 전투에 돌입한다는 소식을 들었을때만 해도 통일이 눈 앞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내 내려오는 중국군의 체계적인 침공이라는 변수에 우리 군이 자랑하던 창끝날은 봄철 눈 사라지듯 사르르 녹아버렸다.
하긴. 7군단을 비롯한 주력 전력들은 2주동안 쉴세없이 계속된 공세로 인해 이미 보급상 한계와 피로. 그리고 비전투손실이 생겨나고 있었고 크게 봐도 전반적으로 1야전군과 3야전군의 대부분의 병력들이 휴식도 없이 장기간 지속된 전투와 공세로 인해 피로 및 여러 문제를 호소하고 있던 차에 중국군이 신의주와 남포로 들이닥쳐버리니 평안도에 있는 국군은 속수무책으로 후퇴하려 안간힘을 쓸 수밖에 없었고 그나마 평안도가 아닌 함경도로 투입된 1야전군과 우리 해병대. 그리고 미 해병대는 진격 과정에서 3야전군과 마찬가지로 많은 피해를 입긴 했지만 그래도 3야전군에 비해 상대적으로 온전하게 전력을 유지하여 후퇴하는데엔 성공했다.
3야전군은 후퇴 과정에서 주력 전력을 거희 잃어버렸다. 그도 그럴게 후방으로 침투한 해군육전대 전력의 비정규전을 필두로 해서 중국군 기계화사단이 후방에 강습해버리니 적잖은 출혈을 낼 수 밖에 없었다. 여러 세미나에서 언급되었던 중국군의 사단급 상륙작전능력이 완성단계에 이르러 간다고 말은 들었지만 실제로 당해보니 충격이 상당히 큰 모양이었다. 그도 그럴게 우리가 원산에서 한 걸 남포에서. 그것도 홈 그라운드의 잇점도 없는 곳에서 당해버렸으니 말이다. 다행이도 그 전력들을 박살내고 서울로 퇴각하는데엔 성공했지만 우리 피해는 이미 그 시점에 말이 아니었다. 개성에서 지연전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고 서울 방어전이 시작되었을 때쯤 서울과 그 인근 방어병력의 주력은 52사단과 56사단. 그리고 17사단이었다. 이미 북진하는데 투입한 주력 전력들은 전투에 투입하기가 불가능할정도로 망가져있는 탓에 병력 보충과 재정비가 필요했었다.
다행이도 수도권 시가전을 수행하면서 전쟁은 한 차례 고착되었다. 2함대와 미 7함대가 수도권 시가전을 지원하기 위해 올라갔을 때 막대한 피해를 입어 제해권을 넘겨준 채로 제공권을 우리 공군과 미 공군 만으로 장악하려 할 수 밖에 없었던 점이 우리에겐 제일 치명적인 점이었다. 다행이도 수도권에서 한달을 벌어준 덕분에 이 기간동안 우린 미군 증원병력 제 2파를 지원받았고 외국에서 긴급도입하거나 미군에게서 공여받은 외제 장비를 예비군에 교육시킬 수 있는 시간도 벌 수 있었다. 중국이 한차례 더 전술탄도탄을 대거 동원하고 다른 군관구에서 차출한 병력들과 중부전구와 동부전구 병력을 동원하여 밀고오기 전 까지는 그랬었다.
교착된 기간동안 우린 훌륭하게 잘 싸웠다. 후방 침투한 특전사 병력을 통해 지휘부나 야전보급창과 같은 주요 거점에 탄도탄을 날려버리기도 했고 수도권 몇몇 시가지에선 재정비된 주력 사단을 중심으로 국지적이나마 공세를 가하기도 했다. 하지만 역부족이었다. 한달 반 남짓한 시간을 버는 건 좋았지만 여러 정치적 이유들이 미군의 추가 증원과 중국본토에 대한 탄도탄 공격등을 막아버렸다. 상대가 국제법따윈 씹어먹고 전쟁을 수행하는 북한이 아닌 국제법을 잘 준수하고 규율이 잘 갖춰진 중국이었다는 점이 문제였었다. 미국은 우크라이나와 발트 3국 문제, 그리고 새로이 대두되는 중동에서의 문제로 인해 동원 가능한 병력이 한정되었다. 사실 작계 5027을 생각한다면 이미 작계상 증원될 미군 병력보다 많은 병력이 지원된 상황이라 납득이 충분히 가는 것이었다. 그래도 어쩌나. 이미 우린 경북까지 밀려버린 상황인데 말이다.
이런 말 하긴 미안하긴 하지만 이미 1야전군과 3야전군 위수 지역을 돌파당한 이상 지연전을 수행하는데엔 한계가 있었다. 다행이도 대전에서 발을 묶고 경북 서북부지역에서 한번 발을 묶어서 다행이지 그마저도 아니었으면 부울경만 남겨두고 마지막 발악을 준비해야할 판이었다. 하지만 여기까지 이르는데 거희 100만에 달하는 전사자와 실종자가 나왔다. 이런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거라곤 그저 실종자들 중 살아남은 자 들이 게릴라전을 수행하며 적의 전력에 지속적으로 손실을 내 주길 기대하는 것 뿐이었다.
수도권이 다 밀려갈때쯤 우린 사실 국민들과 일선의 병사들에게도 말하기 힘든 짓들을 서슴없이 했다. 강북에서 스탈린그라드가 재현되던 그 때 계룡대의 높으신 분들은 자위대의 참전을 진지하게 검토하였고 일본의 적극적인 호응으로 구레와 사세보의 해상자위대 호위대군과 수륙기동단과 서부방면대와 중부방면대에서 각각 1개 사단과 1개 여단을 차출한 거로도 모자라 북부방면대에서 7사단까지 빼오는 위엄을 저질렀다. 나는 개인적으로 일본의 총리대신이란 사람이 그 정도로 현실감각이 없다는 사실에 안주했다. 민간 페리선까지 징발해서 평택에 상륙한 3만의 육자대 병력은 이미 충청남도 북부지방을 방어하면서 문자 그대로 증발해버렸으니깐 말이다. 그런 와중에도 전라북도와 전라남도 앞바다에서 2개 호위대군과 같이 작전하는 우리 해군 3함대가 남은 미 7함대 잔존병력과 함께 제해권을 장악하고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남은 곳에서 우린 그나마 앞전의 전장보다 용이한 환경에서 전투를 수행할 수 있게 되었다. 오산과 성주에 배치되어있던 주한미군의 사드 포대가 방금 울산 동구와 부산 장산의 포대에 배치되었단 소식을 들었다. 그 좁은 데에 우리 포대를 철수시키고 그걸 배치하자는 주한미군사령관의 말을 들었을땐 그게 뭔 개소리인가 싶었지만 미군도 근성은 있었는지 기어이 그걸 해낸 걸 보고 잠시 벙쪘었다. 서쪽은 자위대가. 동쪽의 울산 앞바다에선 우리 7함대가 해상 방공망을 장악하고 사드 포대 재배치와 남은 우리 공군 잔존 방공포대를 재배치함으로서 확실히 방공망은 우리가 우위를 가져갔다는 걸 자신할 수 있게 되었다. 게다가 미 해군 3함대의 항모전단까지 남해안에 있으니 중국군을 어떻게든지 지연시키고 소진시킨다면 이 전쟁을 승리하진 못한다 해도 여기서 종전을 맞이할 수 있는 방향으로 최대한 판을 기울이는 수 밖에 없었다.
중국군도 바보는 아니었다. 자신들의 보급거점을 충청 이남으로 배치해 자신들이 부산에 다다르기도 전에 공세종말점에 도달하는 상황을 최대한 피하려고 하는 모습이 보였다. 이미 한참 전에 전멸했거나 괴멸에 가까운 피해를 입었다고 알려진 몇몇 사단을 복구시켜 증원하는 모습들도 우리측 정보자산에 포착되었다. 붕괴한 사단을 전쟁 발발 이전 수준으로 복구시키는 모습에 모두가 경악하기도 했다. 아무리 그래도 3달 만에 신의주에서 큰 피해를 입은 몇몇 사단을 복구시키다니 중국을 너무 얕봤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내게 남은 선택지는 몇 없었다. 안정적으로 지연전을 수행할 수 있을 기반은 있지만 보장은 없었다. 여전히 하늘은 완벽하게 우리의 것은 아니었고 중국군은 우리 방공미사일 전력 손실을 유도하기 위해 탄도미사일 공격을 감행하는 모습도 보이고 있다. 얼마 남지않은 시간 속에서 우린 제한적이나마 시간을 벌어야 하지만 우리의 공세 수단은 극히 한정되어있다. 여기까지 간신히 후퇴한 병력들에게 재정비할 시간을 벌어주기 위해선 판을 크게 뒤흔들 무언가가 필요했다. 중국군의 공세종말점을 앞당길 수 있는 무언가가. 그래서 난 도박을 하기로 했다. 2작사 최정예 병력으로 할 수 있는 유일한 도박을.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커피포트로 지통실에서 고생할 부하들에게 줄 커피를 내리는 동안 잠시 마음을 추스릴 시간이 필요했다. 특전사 지역대장 시절 찍은 강하 1000회 기념사진이 눈에 들어왔다. 근 30년 전이지만 그새 나도 늙어버린 걸까? 지금 이 현실을 벗어나 옛날로 돌아가고 싶었다. 악과 깡으로 소대 만한 지역대 부하들과 동고동락하던 시절이 그리웠다. 하지만 이젠 안다.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없을 거라는 걸. 저 사진 속의 전우들이 이 전장에 던져졌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내 가슴을 메이게 만들었다.
다급하고 중요한 상황이라지만 이미 짜놓은 게 있고 부사령관도 있다보니 이 상황에서 내가 실질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아이러니하게도 지난 72시간동안 숙면도 제대로 취하지 못했었던 걸 잠시 쉬면서 푸는 동안 부관의 보고를 들으면서 커피를 내리는 것 뿐이었다. 커피가 담겨진 3리터 보온병 다섯 병을 전술배낭에 넣고 베레모를 고쳐쓴 채 실내등은 물론이고 난방도 안 켜져있었던 내 방에서 나와 지통실로 발걸음을 움겼다. 남부 지방이라 따뜻해야할 터인 이번 겨울의 추위는 스키파카로도 막기 힘든 추위다.
방금 전 까지 경북 북부지역을 방어하던 마지막 부대가 무사히 후퇴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보고한 부관에게 작전계획 검토서류를 확인한 뒤 서명을 하고 돌려보냈다. 주머니의 담뱃곽을 꺼내 담배 한대나 물려고 했지만 이제보니 돗대였다. 원래 하루에 두 까치 정도 피운다만 요즘 일 때문에 몇날 며칠 담배를 너무 입에 달고 살았나? 이틀 전에 산 담배가 벌써 다 떨어지니 조금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이내 쓴웃음만 나왔었다.
한국전쟁이 끝나고 자그마치 70년이 조금 넘은 국군이 처음으로 마주하게 된 본토에서의 전쟁. 북한의 파주 포격 도발로 시작된 전쟁이 중국의 참전이라는 이상한 형태로 나올거라는 생각은 차마 하지 못했었다. 미 해병대가 원산에 상륙하고 우리 공수사단이 신의주에서 북한군과 전투에 돌입한다는 소식을 들었을때만 해도 통일이 눈 앞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내 내려오는 중국군의 체계적인 침공이라는 변수에 우리 군이 자랑하던 창끝날은 봄철 눈 사라지듯 사르르 녹아버렸다.
하긴. 7군단을 비롯한 주력 전력들은 2주동안 쉴세없이 계속된 공세로 인해 이미 보급상 한계와 피로. 그리고 비전투손실이 생겨나고 있었고 크게 봐도 전반적으로 1야전군과 3야전군의 대부분의 병력들이 휴식도 없이 장기간 지속된 전투와 공세로 인해 피로 및 여러 문제를 호소하고 있던 차에 중국군이 신의주와 남포로 들이닥쳐버리니 평안도에 있는 국군은 속수무책으로 후퇴하려 안간힘을 쓸 수밖에 없었고 그나마 평안도가 아닌 함경도로 투입된 1야전군과 우리 해병대. 그리고 미 해병대는 진격 과정에서 3야전군과 마찬가지로 많은 피해를 입긴 했지만 그래도 3야전군에 비해 상대적으로 온전하게 전력을 유지하여 후퇴하는데엔 성공했다.
3야전군은 후퇴 과정에서 주력 전력을 거희 잃어버렸다. 그도 그럴게 후방으로 침투한 해군육전대 전력의 비정규전을 필두로 해서 중국군 기계화사단이 후방에 강습해버리니 적잖은 출혈을 낼 수 밖에 없었다. 여러 세미나에서 언급되었던 중국군의 사단급 상륙작전능력이 완성단계에 이르러 간다고 말은 들었지만 실제로 당해보니 충격이 상당히 큰 모양이었다. 그도 그럴게 우리가 원산에서 한 걸 남포에서. 그것도 홈 그라운드의 잇점도 없는 곳에서 당해버렸으니 말이다. 다행이도 그 전력들을 박살내고 서울로 퇴각하는데엔 성공했지만 우리 피해는 이미 그 시점에 말이 아니었다. 개성에서 지연전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고 서울 방어전이 시작되었을 때쯤 서울과 그 인근 방어병력의 주력은 52사단과 56사단. 그리고 17사단이었다. 이미 북진하는데 투입한 주력 전력들은 전투에 투입하기가 불가능할정도로 망가져있는 탓에 병력 보충과 재정비가 필요했었다.
다행이도 수도권 시가전을 수행하면서 전쟁은 한 차례 고착되었다. 2함대와 미 7함대가 수도권 시가전을 지원하기 위해 올라갔을 때 막대한 피해를 입어 제해권을 넘겨준 채로 제공권을 우리 공군과 미 공군 만으로 장악하려 할 수 밖에 없었던 점이 우리에겐 제일 치명적인 점이었다. 다행이도 수도권에서 한달을 벌어준 덕분에 이 기간동안 우린 미군 증원병력 제 2파를 지원받았고 외국에서 긴급도입하거나 미군에게서 공여받은 외제 장비를 예비군에 교육시킬 수 있는 시간도 벌 수 있었다. 중국이 한차례 더 전술탄도탄을 대거 동원하고 다른 군관구에서 차출한 병력들과 중부전구와 동부전구 병력을 동원하여 밀고오기 전 까지는 그랬었다.
교착된 기간동안 우린 훌륭하게 잘 싸웠다. 후방 침투한 특전사 병력을 통해 지휘부나 야전보급창과 같은 주요 거점에 탄도탄을 날려버리기도 했고 수도권 몇몇 시가지에선 재정비된 주력 사단을 중심으로 국지적이나마 공세를 가하기도 했다. 하지만 역부족이었다. 한달 반 남짓한 시간을 버는 건 좋았지만 여러 정치적 이유들이 미군의 추가 증원과 중국본토에 대한 탄도탄 공격등을 막아버렸다. 상대가 국제법따윈 씹어먹고 전쟁을 수행하는 북한이 아닌 국제법을 잘 준수하고 규율이 잘 갖춰진 중국이었다는 점이 문제였었다. 미국은 우크라이나와 발트 3국 문제, 그리고 새로이 대두되는 중동에서의 문제로 인해 동원 가능한 병력이 한정되었다. 사실 작계 5027을 생각한다면 이미 작계상 증원될 미군 병력보다 많은 병력이 지원된 상황이라 납득이 충분히 가는 것이었다. 그래도 어쩌나. 이미 우린 경북까지 밀려버린 상황인데 말이다.
이런 말 하긴 미안하긴 하지만 이미 1야전군과 3야전군 위수 지역을 돌파당한 이상 지연전을 수행하는데엔 한계가 있었다. 다행이도 대전에서 발을 묶고 경북 서북부지역에서 한번 발을 묶어서 다행이지 그마저도 아니었으면 부울경만 남겨두고 마지막 발악을 준비해야할 판이었다. 하지만 여기까지 이르는데 거희 100만에 달하는 전사자와 실종자가 나왔다. 이런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거라곤 그저 실종자들 중 살아남은 자 들이 게릴라전을 수행하며 적의 전력에 지속적으로 손실을 내 주길 기대하는 것 뿐이었다.
수도권이 다 밀려갈때쯤 우린 사실 국민들과 일선의 병사들에게도 말하기 힘든 짓들을 서슴없이 했다. 강북에서 스탈린그라드가 재현되던 그 때 계룡대의 높으신 분들은 자위대의 참전을 진지하게 검토하였고 일본의 적극적인 호응으로 구레와 사세보의 해상자위대 호위대군과 수륙기동단과 서부방면대와 중부방면대에서 각각 1개 사단과 1개 여단을 차출한 거로도 모자라 북부방면대에서 7사단까지 빼오는 위엄을 저질렀다. 나는 개인적으로 일본의 총리대신이란 사람이 그 정도로 현실감각이 없다는 사실에 안주했다. 민간 페리선까지 징발해서 평택에 상륙한 3만의 육자대 병력은 이미 충청남도 북부지방을 방어하면서 문자 그대로 증발해버렸으니깐 말이다. 그런 와중에도 전라북도와 전라남도 앞바다에서 2개 호위대군과 같이 작전하는 우리 해군 3함대가 남은 미 7함대 잔존병력과 함께 제해권을 장악하고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남은 곳에서 우린 그나마 앞전의 전장보다 용이한 환경에서 전투를 수행할 수 있게 되었다. 오산과 성주에 배치되어있던 주한미군의 사드 포대가 방금 울산 동구와 부산 장산의 포대에 배치되었단 소식을 들었다. 그 좁은 데에 우리 포대를 철수시키고 그걸 배치하자는 주한미군사령관의 말을 들었을땐 그게 뭔 개소리인가 싶었지만 미군도 근성은 있었는지 기어이 그걸 해낸 걸 보고 잠시 벙쪘었다. 서쪽은 자위대가. 동쪽의 울산 앞바다에선 우리 7함대가 해상 방공망을 장악하고 사드 포대 재배치와 남은 우리 공군 잔존 방공포대를 재배치함으로서 확실히 방공망은 우리가 우위를 가져갔다는 걸 자신할 수 있게 되었다. 게다가 미 해군 3함대의 항모전단까지 남해안에 있으니 중국군을 어떻게든지 지연시키고 소진시킨다면 이 전쟁을 승리하진 못한다 해도 여기서 종전을 맞이할 수 있는 방향으로 최대한 판을 기울이는 수 밖에 없었다.
중국군도 바보는 아니었다. 자신들의 보급거점을 충청 이남으로 배치해 자신들이 부산에 다다르기도 전에 공세종말점에 도달하는 상황을 최대한 피하려고 하는 모습이 보였다. 이미 한참 전에 전멸했거나 괴멸에 가까운 피해를 입었다고 알려진 몇몇 사단을 복구시켜 증원하는 모습들도 우리측 정보자산에 포착되었다. 붕괴한 사단을 전쟁 발발 이전 수준으로 복구시키는 모습에 모두가 경악하기도 했다. 아무리 그래도 3달 만에 신의주에서 큰 피해를 입은 몇몇 사단을 복구시키다니 중국을 너무 얕봤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내게 남은 선택지는 몇 없었다. 안정적으로 지연전을 수행할 수 있을 기반은 있지만 보장은 없었다. 여전히 하늘은 완벽하게 우리의 것은 아니었고 중국군은 우리 방공미사일 전력 손실을 유도하기 위해 탄도미사일 공격을 감행하는 모습도 보이고 있다. 얼마 남지않은 시간 속에서 우린 제한적이나마 시간을 벌어야 하지만 우리의 공세 수단은 극히 한정되어있다. 여기까지 간신히 후퇴한 병력들에게 재정비할 시간을 벌어주기 위해선 판을 크게 뒤흔들 무언가가 필요했다. 중국군의 공세종말점을 앞당길 수 있는 무언가가. 그래서 난 도박을 하기로 했다. 2작사 최정예 병력으로 할 수 있는 유일한 도박을.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커피포트로 지통실에서 고생할 부하들에게 줄 커피를 내리는 동안 잠시 마음을 추스릴 시간이 필요했다. 특전사 지역대장 시절 찍은 강하 1000회 기념사진이 눈에 들어왔다. 근 30년 전이지만 그새 나도 늙어버린 걸까? 지금 이 현실을 벗어나 옛날로 돌아가고 싶었다. 악과 깡으로 소대 만한 지역대 부하들과 동고동락하던 시절이 그리웠다. 하지만 이젠 안다.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없을 거라는 걸. 저 사진 속의 전우들이 이 전장에 던져졌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내 가슴을 메이게 만들었다.
다급하고 중요한 상황이라지만 이미 짜놓은 게 있고 부사령관도 있다보니 이 상황에서 내가 실질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아이러니하게도 지난 72시간동안 숙면도 제대로 취하지 못했었던 걸 잠시 쉬면서 푸는 동안 부관의 보고를 들으면서 커피를 내리는 것 뿐이었다. 커피가 담겨진 3리터 보온병 다섯 병을 전술배낭에 넣고 베레모를 고쳐쓴 채 실내등은 물론이고 난방도 안 켜져있었던 내 방에서 나와 지통실로 발걸음을 움겼다. 남부 지방이라 따뜻해야할 터인 이번 겨울의 추위는 스키파카로도 막기 힘든 추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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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플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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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춤법좀 맞춰라 거희가 뭐냐 거희가
이 다음은 짱깨 한복판에 특전사 강습시키는거임?
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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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줌범이랑 단어선택 실화냐?
한중전 유니버스 ㅇ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