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나라가 망하지 않기 위해서 니가 끊임없이 희생해야 한다

라는 무슨 근대 내셔널리즘 국가에서나 생산될 메시지들을


문화 경제적으로 배경이 완전히 다른 21세기 선진국에서 자란 사람들한테, 당연하게 강요하고 요구하는 불협화음의 관성. 한국이 이걸 아직까지 제도적으로 사회적으로 끌고가는데 대한 거부감임.


심지어 그걸 무슨 근본주의 단체나 급진적인 사회운동 집단이 아니라, 무려 정부 차원에서 공식적으로 하고 있다는 데서 오는 반발심임.


여기는 군사 갤러리니까 그쪽에 집중해서 예시를 몇개 들면, 무슨 공익은 남자답지 않다는 따위의 병무청 영상. 군인은 일 한만큼 돈 안 받는게 당연하다는 제도화된 규정들. 


이런 것들은 그냥 한국인들이 습관처럼 젖어서 그런가보다 하지만, 사실 이 정도 되는 나라 기준으로는 말이 안 되는 것들임. 


학생이나 미성년자까지 허용되는 행동을 성인이 했을 때 자연스럽게 눈살이 찌뿌려지는거랑 같은거지. 남들은 15살에 멈춘 행동양식을 30 넘게 하고 있는 격이니까.


물론, 북한의 존재 때문에 미완으로 남아있는 통일 민족국가 건설이라는 근대의 최대 퀘스트가 분명히 있고. 그동안은 그걸 이유로 상당 부분은 이해받아 왔음. 


하지만 그것도 언제까지 무제한 이해받을 수는 없음. 어느새 이 문제는, 최소한 청년 세대가 느끼기에는 절박한 생존의 문제에서 만성적이고 거대한 국가단위의 숙제가 됐고. 30년 전에 전쟁으로 나라가 멸망당할뻔한 일에서, 70년 전에 있었던 교과서 속 사건이 되었음. 


아무리 어렸을 때 가정불화와 트라우마가 있었다 한들, 20대 초반의 폭력과 비행은 사연 있는 젊은 청춘의 방황으로 이해받는 영역이 있지만. 그걸 40대까지 하고 있으면 그런 이해는 줄어들고, 결국 양아치 따위의 멸칭으로 불리게 됨.


건국 후 근 100년이라는 세월은 단순히 지지리 못살던 나라가 경제적으로는 국민소득 3만불이 넘고, 문화적으로는 노벨 문학상과 아카데미상을 받는 선진국으로 발전하기만 했던 시간이 아님. 사회가 심리적으로 분단과 전쟁을 극복하기에도, 트라우마에 기대서 작동하던 어쩔 수 없는 이해의 영역이 줄어들기에도 충분한 시간이었음.


지금 인터넷에서 읽히는 저 많은 반응들은, 그걸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는 시기. 다른 말로는 어려운 선택의 시기가 이 나라에도 피할 수 없이 다가오는 전조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