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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하면 걍 제갈량이 심플하게 요격해온 장합한테 쳐발린거고

마속이 굳이 고지선점을 한 이유는 전투력이 위군보다 매우 저열한 촉군으로 정면에서 버틸 수 없으니 한 판단일 것이다

제갈량 본대가 수 리 거리 내에 있으니 수로가 끊기는 위험을 감안해도 그리 장기전이 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겠지만 제갈량은 구원 안 왔고 마속군은 궤멸함

그렇게 가만있던 제갈량 본대도 장합군에게 공격당하고 패퇴함


제갈량도 쳐발린건데, 마속은 어찌됐건 원래 작계를 어겼으니 이게 빌미가 되어 정치적 희생양으로 처형당했다 - 라는 거


3.1.3. 가정 전투의 진실[편집]


이렇게 보면 가정 전투의 문제는 매우 간단해진다. 장합과 마속의 가정 전투는 기산을 공격하는 제갈량군의 선봉인 마속이 장합의 위군과 기산 인근 가정에서 맞싸운 쟁탈전의 일부이며, 위나라가 "기산에서 출동"하는 제갈량에 대항하는 주요 전투였다는 것이다. 제갈량이 "기산을 공격"하려면 반드시 기산 인근인 가정을 점령해야 했고, 마속이 장합에게 패하여 가정을 잃음으로써 제갈량은 "더 이상 진격할 곳이 없게" 되었던 것이다. 위나라 군대가 마속과 가정에서 전투를 벌인 것은 곧 '가정에서 장합이 제갈량을 공격'한 것이며, 마속이 가정에서 패배한 것은 곧 제갈량이 '기산에서 장합에게 패배'한 것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중국의 학자 주대위는 이에 대해 더욱 명확하게 설명했다. "그(제갈량)는 직접 주력 부대를 이끌고, 마속을 선봉으로 세워 기산을 공격하고 장합와 대치했다." 즉, 기산과 가정은 여기서 하나의 개념을 가리키며, 다만 기산은 큰 목표이고 가정은 구체적인 전투 지점이라는 것이다. 결국 삼국지 본전과 원자의 내용을 종합해보면, 마속은 선봉으로써 장합과 맞설때 장합의 대군에 맞서 일단 위나라 정예군 상대로 지형적 우위를 잡기 위해 가정 인근의 산에 올랐으나 제갈량이 어떤 이유에서인지 끝내 마속을 구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패했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이렇게 보면 왜 제갈량의 명령을 어기면서까지 마속이 산에 올랐는지 그의 전술적 판단을 이해할 수 있다. 촉군은 제갈량 본인도 패전 이후 인정했듯이 숫자만 많았지 서막이 이끄는 량주 지방군 수준의 병력으로도 각지에서 패할 정도로 병력의 질이 매우 떨어지는 상황이었고 기산을 공격하는 제갈량 본대조차 그저 진지를 폈다 접었다 할 뿐이지 제대로 된 진군조차 하지 못하는 군대였다. 1차 북벌에서 이토록 전반적으로 질에서 앞서는 위군 상대로 촉군이 각지에서 패하는 상황임을 감안했을때, 마속이 위군보다 떨어지는 촉군을 가지고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은 일단 위군 상대로 지형적 우위를 잡아 전술적으로 불리함을 타파하는 일이었을 것이며, 장합 상대로 지형상 우위를 잡고 조금만 버티면 불과 수 리밖에 떨어져 있지 않는 제갈량 본대가 곧바로 장합군을 통타할 수 있을 것으로 장기전에서나 문제가 되었을 수자원 공급 문제도 이런 상황이라면 큰 문제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제갈량 본인이 높은 지형 위에서 버티면서 지원을 기다렸을 마속을 구원하지 않았고 결국 이러는 와중에 장합이 물길을 끊음으로서 마속의 이 전술적 시도가 좌절되었다는 점에 있었다.


즉 실제 역사의 마속은 삼국연의에서 묘사되는것 처럼 서책의 병법만 아는 헛똑똑이라서 산에 진을 친게 아니라 불가피한 상황에서 최대한 버티기 위해 고육지책을 실행한 지휘관이었다. 그럼에도 마속을 구원하지 않아 패한 제갈량이 본인의 정치적 책임을 누군가에게 떠넘길 필요가 있었기에 패전의 책임을 떠넘겨받고 죽은 것이다. 마속의 부장들이 왕평을 제외하곤 모두 마속의 전술지침에 따른 것, 상랑과 장완, 이막이 마속을 살리려고 하고 그를 구명하려고 노력했던 것, 북벌에 참여한 촉군 장병들이 패전의 결정적 원인이라고 지목받아 처형당하는 마속에게 분노하긴 커녕 그를 위해 눈물을 흘린 이유가 여기서 분명해 지는데, 마속은 주어진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 싸웠으나 총사령관 제갈량의 패전을 뒤집어 쓰고 죽은 희생양이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보면 왕평과 마속이 전술적 문제를 두고 논쟁을 벌인 이유도 각자 나름대로의 입장을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다. 왕평은 후일 흥세산 전투에서 알 수 있듯이 주어진 상황에서 기책을 벌이지 않고 우직하게 기존의 작계를 고수하는 성향이었기에 제갈량의 절도를 그대로 지키려고 했던 반면, 마속은 단순히 제갈량의 절도를 지키는 것만으로는 전반적으로 질이 떨어지는 촉군이 위군을 상대할 수 없다고 본 것이다. 어쨌거나 마속이 지형적 우위를 선점하면서 어떻게든 전세를 뒤집으려 할 때나 왕평이 어떻게든 패배한 촉군을 수습하기 위해 장합의 시선을 끌며 병력을 수습하려고 노력할때도 바로 근처에 있었을 제갈량은 결코 두 사람을 구원하지 않았으며, 이것이 촉군이 가정과 기산에서 위군에게 대패한 진짜 원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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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 문단만 복사해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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