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북로군정서(대한군정서)는 북간도를 근거지로 하여 4개 관구를 두고 지원자들을 모집해 전성기에 4개대대 1600명에 달했음.

이들을 지도할 간부진의 충원이 절실해지자 북로군정서에서는 자체적인 사관학교를 세우게 되는데 이곳이 바로 사관연성소임

주요 교관진은 다음과 같음:
1) 교장: 김좌진(대한제국 육군무관학교)
2) 교수부장: 나중소(일본 육군사관학교)
3) 본부교사: 이범석(중국 운남강무학교)
4) 교관: 강필립(불명의 러시아 군사학교)
5) 교관: 이장녕(대한제국 육군무관학교)
등등.

교육과정은 6개월 속성과정이었고 교과목은 정신교육, 역사(특히 열국 독립사), 군사학과 전술학, 체조와 무기 다루는 법 등을 가르침.

주요 교재들은 대한제국 무관학교에서 쓰던 보병조전, 군대내무서, 야외요무령 등을 그대로 군정서 인쇄국에서 인쇄해다가 썼다함

한편으로 신흥무관학교 졸업자 출신의 교관인 최해가 군정서 병사 훈련을 위해 직접 쓴 '훈련교본' 역시 사용되었음.

크기도 상당하여 150명 규모의 구대 2개가 있었고, 각 구대는 50명씩 3개 구대로 나뉘었음.



한편 만주 간도에서 시작하여 러시아 내전에 개입했던 연대급 한인부대인 군비단의 경우에도 역시 자체적인 사관학교를 두었음.

사실 초반에는 열악 그 자체였는데, 노백린의 명을 받아 간도에서 군비단을 만난 김홍일의 회고에 따르면 병력 500명 중 장교는 둘뿐이었음.

이후 간도에서 2000리 대장정을 거쳐 러시아 이만(현 달네레첸스크)으로 이동한 이들은 그곳에서 다른 한인부대와 신병을 받아 크기를 불렸는데

당연히 문제가 됐던 건 장교 수급 문제였음. 처음에는 위 북로군정서 사관연성소의 김좌진 같은 교관들을 초빙하려 했는데 의견이 안 맞아 이건 파토남.

마침 중국 저장성 육군강무학교 포병과 출신의 이용과 한운용 그리고 어디 출신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장교였던 임상춘이 군비단에 들어옴

그러자 군비단은 새로이 사관학교를 세우곤 그 교장에 이용을, 교육장으로 한운용을, 학도대장 겸 교관으로 김홍일을 임명함.

아마 이 세 사람이 정규군사교육을 받았기에 그랬던듯. 교재는 김홍일이 구이저우 강무학교에서 졸업하며 가져온 중국어 교재를 한국어로 직접 번역했다함.

크기는 그닥 크지 않았고, 대략 50명 규모였음. 교육기간은 6개월 속성과였음.



출처
1920년대 전반기 김홍일의 항일무장투쟁
군사교범, 근대군사교육
대륙의 분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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