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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1930년대까지 중국 내에서 백병전은 그리 주목받지 않았다고 함.

독일식 훈련을 받은 장제스 중앙군은 독일 교리에 따라 총검백병전을 경시했고, 차라리 야삽과 수류탄을 선호함.

군벌군은 그냥 총검이 부족했음. 냉병기 사용을 중시한 군대는 펑위샹의 서북군이 유일한데 이마저도 총검부족 땜에 중국 전통도검을 대량으로 씀.

홍군은 탄환 부족 땜에 총검술을 중시했지만, 이들 역시 총검이 부족하기는 마찬가지였다고 함.

중일전 때 위 사진의 항일대도를 도입하기는 했는데 국민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주어 항전의 상징이 되긴 했지만 그닥 효과적이진 않았나봄

일본군은 중국군에 비해 왕성한 체력과 숙달된 기술로 백병전에서 우위를 점했음. 거기다 아리사카와 그 긴 총검은 백병전에도 도움이 됨.

이후 중국군, 적어도 팔로군은 봉천군벌 출신 장군이던 뤼젱차오(吕正操)의 주도로 총검술 훈련을 철저하게 실시했다고 함

하지만 진짜로 도움이 된 건 일본군 포로 출신 전향자들이 전수해준 총검술이었다고 함. 일본인민반전동맹에 가입한 일본군 하급장교와 병 및 부사관 포로들은 직접 팔로군을 훈련시켰음.

일본 포로들은 무슨 사쓰마번 시현류 가르치듯이 하루에 수천 번씩 총을 치켜드는 동작을 연습시키는 등 상당히 엄격하게 총검술을 전수해준 모양인데 체력훈련도 겸해서 가르쳤다나.

1940년부터 팔로군의 순환훈련이 시작되면서 총검술이 빠르게 전파되었다고 함.

팔로군의 백병전술은 고참 1인과 신병 2명이 3인 1조를 이루어 돌격하는 식이었다 함. 고참이 어그로를 끌면 신병 둘이 개돌하는 방식이라나


출처
360do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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