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람은 존 브라운임. 미국 코네티컷 출신의 강경 노예 해방론자였음.

이 사람은 선대부터 노예들을 노예주로부터 데리고 나와 해방시키는 지하조직을 굴린 비범한 사람이었음.

그는 노예의 해방을 위해서는 지하조직을 통해 찔끔찔끔 탈출시키는 거는 한계가 있고 직접 투쟁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됨. 이는
새로운 주로 편입된 캔자스 주가 반노예주의자와 친노예주의자들의 작은 내전으로 개판이 되고 특히 친노예주의자들의 적극적인
백색테러를 목도한 후 무장 투쟁에 대한 의지를 굳힘.

그는 캔자스에서 친노예주의자들을 칼로 썰어버리며 살해하는
등 강경 투쟁을 전개하였고 캔자스 주 사태가 일단락된 후에는 버지니아 주 하퍼스 페리 연방군 무기고를 아들을 포함한 지지자들과 함께 습격하여 중무장하고 농성하게 됨.

이를 진압하기 위해 로버트 리를 포함한 연방군 병력이 소집되어 이들을 토벌하였고 결국 존 브라운은 10여 명의 사상자를 내고 항복하게 됨.

존 브라운은 결국 체포되어 사형을 선고받고 교수형을 당함. 그는 평생 기독교 교리와 윤리에 의거하여 자신의 신념을 정당화했고 자신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탈옥을 권유했지만 자신의 신념에 따라 재판을 받고 ‘순교자‘로 생을 마감하고자 했음.

당연히 이를 두고 반노예 진영과 친노예 진영은 더욱 첨예하게 대립하게 됨. 반노예 진영은 존 브라운의 투쟁을 신격화하고 지지하는 행보를 보이고 그 반대는 사탄이라며 강하게 비난했음.

이 때 쯤 되면 사실상 반 노예 진영과 친 노예 진영의 대규모 무력 충돌은 사실상 기정사실화된 것과 다름 없었음. 결국 그의
사후 1년이 좀 넘어서 섬터 요새의 포격전을 시작으로 미국 내전이
이어지게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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