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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위소(武衛所)의 무기를 만들 때 감동(監董)한 제조(提調) 이하에게 차등 있게 시상하였다. 【자기황 칠연총(自起磺七連銃)과 수차(水車)를 새로 만들었다.】

- 고종실록 1876년 8월 21일



1876년 8월에 조선은 자기황칠연총이라는 무기를 새로 만들었는데, 마침 6개월 전에 수교 선.물로 일본이 개틀링을 주고 갔었음.

그리고 수교 때 조선측 전권을 쥐고 있던 신헌은 개틀링을 보고 제조방법을 배운다면 우리도 복제생산 가능할듯요 하고 고종에게 상신한 바가 있음




...일본의 한문 교육 상태를 파악한 결과 우리가 일본어를 익혀 그들의 사정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 당시까지 전통적인 외교 관계에서 중요시되지 않았던 일본어 학습이 실질적으로 필요해졌다는 인식 하에 상황의 변화에 맞는 대응 방안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같은 자리에서 그는 일본의 농기구가 농사에 편리하고 이로운 것이 기존의 세 배는 이롭다고 하면서 소개하면서 민생에 유리한 것은 우리도 도입해야 한다는 태도를 보였다. 특히 우리에게 없었던 무기 회선포(回旋砲)에 대해 설명하면서 제조가 어렵지 않겠냐는 고종의 질문에 방법을 배운다면 별로 어렵지 않을 것이라는 대답을 하고 있다. 이러한 모습들은 새로운 문물에 대한 개방적인 유연함과 필요하다면 얼마든지 도입하고 상용화할 수 있다는 문화적 자신감을 보여주는 것이다...

- 개항 전후 신헌(申櫶)의 시무개혁론 연구




이로 미루어 보면 자기황칠연총은 일종의 기관총 복제 시도로 보이는데 얼마나 제대로 복제했는지는 모르겠다.

4근 산포 복제시도만 하더라도 강선이랑 유산탄을 못 만들어서 운현궁 화포라는 애매쓰끼한 결과물이 나왔으니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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