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세계대전 발발 직전, 독일과 오스트리아에는 많은 과학자들, 특히 핵 물리학자들이 있었고, 이들 중 다수가 나치 독일의 박해를 피해 미국으로 망명하면서 미국의 과학기술력을 크게 진보시켜줬다.


어떤 사람들이, 미국으로 건너가서 어떤 업적을 남겼는지 알아보자





1.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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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분야의 본좌. 아인슈타인은 원래 독일과 오스트리아에서 학술 활동을 했으나, 나치 독일의 유대인 박해를 피해 미국으로 망명한다.


아인슈타인의 대표적인 업적은 질량-에너지 등가법칙, 특수 상대성 이론, 일반 상대성 이론, 광전 효과 등이 있다.




2. 존 폰 노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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폰 노이만도 역시 오스트리아-헝가리 출신이다. 폰 노이만의 가문은 부다페스트에 자리를 잡고 있었는데, 나치 독일이 집권하자 가족 전부가 미국으로 망명길에 오른다.


폰 노이만의 대표적인 업적으로는 폭축 렌즈 개발, 게임 이론, 오토마타, 폰 노이만 아키텍처 등이 있다. 흔히 디지털 컴퓨터의 아버지라 불린다.




3. 베르너 폰 브라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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폰 브라운은 나치 독일에 협조하여 V1/V2 등의 로켓을 개발하고, 미국의 페이퍼클립 작전에 의해 미국으로 망명한다.


현대 로켓의 아버지라 불리며, 아폴로 계획을 성공시킨 새턴 로켓을 개발한 것으로 유명하다.




4. 에드워드 텔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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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오펜하이머에서 희대의 개새끼로 나와서 일반인에게도 어느 정도 알려진 핵물리학자이다. '수소폭탄의 아버지'로 불리며, 텔러-울람 설계를 개발하였다.


에드워드 텔러 역시 오스트리아-헝가리에서 태어나 유대인 박해를 피해 미국으로 망명한 사람이다.




5. 레오 실라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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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헝가리 출신 핵물리학자로, 역시 유대인 박해를 피해 미국으로 망명하였다.


최초로 핵 연쇄반응의 아이디어를 제시하였으며, 루즈벨트에게 원자폭탄 개발을 촉구하는 서한을 보내 맨해튼 프로젝트를 촉발시킨다.



보면 알겠지만, 독일은 핵물리학 연구의 최선단에 있었지만 나치 독일의 집권으로 인해 대부분의 과학자들을 미국에 갖다 퍼 줬고, 그 과학자들은 미국에서 맨해튼 프로젝트를 성공시킨다.


그 외에도 수 많은 과학자들과 사상가, 철학자들이 독일과 오스트리아에 살았으나, 대부분 나치 독일의 광기를 피해 다른 나라로 망명했다.




괜히 20세기에 나치 독일이 없었다면, 21세기는 독일의 시대였을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오는 게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