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달주(姜達周, 1880~1960) - 정미의병, 1910년 광주지방재판소에서 징역 5년형 선고. 출소 후에는 3.1운동 참가. 1983년에 건국포장,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 추서

강대근(姜大根, 1891~1957) - 정미의병(의병장 정용기 산하).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 추서

강병욱(姜炳旭, 1871~1957) - 정미의병 당시 의병장 이강년 산하 종사(從事). 일제의 '남한대토벌'로 항쟁이 어려워지자 부대를 해산후 1914년 다시 재봉기를 계획하고 군자금을 모금하다 강원도 영월군에서 일제 경찰에 의해 피체되어 경성지방법원에서 징역 10년을 선고. 1999년 건국훈장 애국장 추서.

강준학(康俊鶴, 1887~1964) - 정미의병, 의병장 정경태(이강년 산하) 휘하. 1909년 교전중 일제 경찰에 의해 피체되어 소위 '폭동죄' 혐의로 대구지방재판소에서 징역 5년형 선고.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 추서.

강필영(姜弼永, 1876~1956) - 정미의병 당시 군자금 모집. 1908년 대구 헌병대에 의해 피체되어 1911년 대구지방재판소에서 소위 '강도죄'혐의로 징역 3년형 선고.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 추서.

고광덕(高光德, 1874~1945.10.17) - 정미의병. 18촌 일가 고광순 의병장 휘하로 종군하여 남원·임실 일대에서 1914년까지 일본군과 교전. 1977년 대통령표창,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 추서.

고예진(高禮鎭, 1875~1952) - 을사의병, 이후 대한독립의군부 활동.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 추서.

고제천(高濟川, 1875~1973) - 을사의병, 숙부를 따라 의병장 최익현 휘하에서 종군. 이후 대한독립의군부 활동.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 추서.

곽덕산(郭德山, 1875~1959) - 정미의병. 1908년 군자금 모집하다 일제 당국에 의해 피체되어 대구지방재판소에서 징역 15년형 선고. 2000년 건국훈장 애족장 추서.

곽이조(郭二祚, 1889~1959) - 정미의병 당시 곽덕산 선생과 함께 군자금 모집. 2000년 건국훈장 애족장 추서.

권석도(權錫燾, 1880~1946) - 정미의병장. 의병장 고광순 순국 후 의병들의 추대로 의병장에 선임. 지리산을 근거로 하동 일대에서 군자금 모집, 유격전을 벌이다 하동주재소에 구금되었으나 탈주, 다시 진주 일대에서 군자금을 모금하다 1909년 12월 부산지방재판소 진주지부에서 무기징역 선고, 1916년 6월 가석방된 후에도 1918년 2월 소위 '요시찰인'이라는 명목으로 옥고를 치룸. 1986년 건국훈장 독립장 추서.

권용일(權用佾, 1883~1971) - 정미의병, 이강년 휘하에서 활약, 이후 고종의 밀서를 휴대하고 중국으로 망명.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협조.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 수여.

권용창(權用昌, 1886~1950) - 정미의병. 이강년 휘하에서 종군 도중 일제에 의해 피체되어 징역 3년 선고.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 추서.

김덕진(金德鎭, 1862~1947) - 을미의병 당시 격문 작성, 을사의병으로 예산군 습격 계획중 일진회의 고발로 공주경찰서 유치장에서 복역. 1963년 대통령표창, 1980년 건국포장,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 추서

김도규(金道珪, 1885~1967) - 정미의병으로 안규홍 의병장의 휘하에서 종군

김맹도리(金孟道里, 1876~1959) - 을사의병, 의병장 양한규(梁漢奎) 휘하로 종군하며 의병들의 무기 확보를 위해 동료들과 죽창과 화승총으로 무장하고 남원진위대 병영을 습격, 총기 및 탄약탈취를 기도하다 체포. 1909년 10월 광주지방재판소 전주지부에서 징역 7년을 언도받고 복역중 1912년 형집행 면제로 출소. 1986년 건국포장,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 추서

김문빈(金文彬, 1883~1957) - 정미의병. 의병장 신경칠(辛景七)의 참모장 및 중군장으로 황해도 해주·신천·평산 등지를 중심으로 항일투쟁을 전개하던 중 일제에 피체되어 황해도 철도(鐵島)에 유배. 1982년 건국포장,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 추서.

김명립(金命立, 1893~1978) - 정미의병. 의병장 이강년 휘하에서 종군하던 아버지를 귀가시키고 본인이 대신 소년병으로 가담. 경북 일대에서 여러차례 전투에 참가하고 1909년부터 1910년까지 군자금 모금. 1916년 일제 경찰에 피체되어 대구지방재판소에서 징역 10년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 1924년 출소. 1986년 건국포장,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 추서.

김시백(金時伯, 1887~1950) - 정미의병, 의병장 김상태 휘하에서 소모장으로 강원도·경상북도·충청북도일대에서 병력 모집. 1909년 6월 충주에서 모병활동중 발각되자 일본군 추격대 2명을 사살하고 피신하였으나 결국 영주에서 일제에 의해 피체되어 징역 10년 선고. 1977년 건국포장,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 추서

김영성(金永聲, 1868~1959) - 정미의병장, 돌산도 돌산 전투에서 일본군에 피체되어 1910년 1월 광주지방재판소 목포지부에서 징역 10년형을 선고, 1986년 건국포장,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 추서




남석광(南錫光, 1881~1952) - 을사의병. 1986년 대통령표창,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 추서.

남석태(南錫台, 1879~1961) - 을사의병. 의병장 정용기 휘하 산남의진에서 종군 중 일제 경찰에 피체되어 징역 1년 선고. 1986년 대통령표창,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 추서.

남정철(南井喆, 1888~1970) - 을사의병. 의병장 정용기 휘하 산남의진에서 종군. 후일 만주로 망명. 1982년 대통령표창,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 추서.

남준이(南俊伊, 1887~1957) - 정미의병 당시 군자금 모집중 일제에 피체되어 대구지방재판소에서 징역 10년형을 선고. 2003년 건국훈장 애족장 추서.

노공일(盧公一, 1882~1950) - 을사의병. 일제 침략의 수단이었던 경부선 철도를 파괴하여 대한제국 경찰에 피체. 백령도로 유배되었으나 탈주. 1977년 건국포장,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 추서.

노원섭(盧元燮, 1877~1950) - 정미의병장. 용당(현 공주)·무주·진산 일대에서 항쟁 도중 일제에 의해 피체되어 전주지방재판소에서 제주도 유배 12년을 선고받고 1910년 해배. 이후 3.1운동 가담. 1977년 건국훈장 독립장 추서.

노인수(魯寅洙, 1875~1954) - 을미의병. 형 노현수(魯玹洙)와 함께 일본군 헌병분견소 및 경찰 주재소 공격. 2006년 건국포장 추서.




마신엽(馬新葉, 1890~1960) - 정미의병. 1908년 부친의 유언을 받들어 의병에 가담 순창·담양 일대에서 활약. 이후 1909년 군자금 모집 중 일제 경찰에 피체되어 광주지방재판소 전주지소에서 징역 2년 선고. 1993년 건국훈장 애족장 추서.

모충이(牟沖伊, 1883~1960) - 을사의병, 이후 군자금 모집 및 친일파 처단 활동. 1908년 영일군(현 포항시)에서 일본군수비대에 피체되어 대구지방재판소에서 종신형을 선고받고 복역중 1916년 9년형으로 감형. 1983년 건국포장,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 추서.

문형모(文亨模, 1875~1952) - 을사의병(최익현 휘하), 이후 대한독립의군부 활동. 1980년 건국포장,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 추서.

민순호(閔舜鎬, 1880~1966) - 을미의병, 을사의병. 의병장 이강년 휘하에서 종군.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 추서.

민시식(閔時植, 1878~1947) - 을사의병. 정용기 산하 산남의진에서 종군. 1982년 대통령표창,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 추서.




박동환(朴東煥, 1882~1965) - 정미의병, 의병장 이석용 휘하에서 연락책 겸 군자금 모금 활약. 1912년 전북 장수군 진전면사무소를 습격, 세금을 금고째로 탈취해 1913년 광주지방재판소 전주지청에서 징역 10년 선고.
1986년 건국포장,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 추서.


박이환(朴駬桓, 1873~1953) - 을사의병, 최익현 휘하에서 의병 가담을 권유하다가 최익현이 체포되자 자체적으로 병력을 규합해 250여명의 의병을 이끌고 소위 '남한대토벌'직후까지 활약. 국권피탈 후 대한독립의군부에 동참. 1983년 건국포장,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 추서

백남규(白南奎, 1884~1970) - 대한제국군 안동진위대 부위 출신, 정미의병. 1907년 대한제국군이 해산되자 경상북도 순흥(현 영주)에서 장병 800여명과 의병을 일으켜 항일투쟁을 전개, 이후 이강년 부대와 함께 제천·문경·영월일대에서 항일투쟁을 전개하던 중 1908년 붙잡혀 1910년 공주지방재판소에서 10년형을 선고받고 1918년 형집행 면제로 출소. 1918년 상하이 망명을 시도하다 일제 당국에 의해 피체되어 징역 15년 선고. 이후 대한민국 국군 출범도 지켜보고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 수여




손기혁(孫琪赫, 1878~1946) - 정미의병, 하동군 일대에서 군자금을 모집 중 1915년 일제에 의해 소위 강도 혐의로 징역 12년을 선고받고 복역 중 1924년 출소. 1992년 건국훈장 독립장 추서.

손수용(孫秀用, 1883~1952) - 을사의병. 의병장 이석이(李石伊) 휘하에서 의병활동을 전개, 1908년 청하군(현 포항시 북구)에서 군자금을 모금하였다가 이 사실이 발각되어 1909년 징역 15년 선고. 1980년 건국포장,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 추서.

신구산(申九山, 1880~1967) - 을사의병. 양윤숙(楊允淑) 의병장 휘하에서 순창군 일대 항일의병운동 및 군자금 모금 활약 하던 중 1909년 12월 1일 광주지방재판소 전주지부에서 징역 7년 선고. 1912년 12월 형집행 면제로 출소. 1986년 건국포장,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 추서.




양동훈(楊東勳, 1884~1968) - 정미의병, 안담사리라 불리우던 안규홍 의병장의 참모장으로 보성·순천·광양·여수돌산·곡성·구례·장흥·남원·순창 등지에서 항쟁.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 추서

양영준(梁永俊, 1882~1951) - 정미의병, 의병장 김인성휘하에서 활약 1909년 전북 순창군에서 군자금 모집 중 일제에 의해 피체되어 광주지방재판소에서 소위 '강도'혐의로 징역 7년 선고.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 추서

유장렬(柳漳烈, 1878~1966) - 을사의병. 의병장 이석용의 부장으로 호남창의소에서 종군. 국권피탈 후 항일 무장세력 광복단을 조직해 군자금 모금, 헌병분견소 습격 등 활약하다 1919년 일제에 의해 징역 12년 선고. 1977년 건국훈장 독립장 추서.

유해동(柳海東, 1891~1981) - 의병장 유인석의 자제. 부친의 비서 겸 참모로 정미의병에 가담, 이후 국내 활동의 어려움을 느끼고 중국과 러시아에서 독립운동에 투신. 1977년 건국포장 수여,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 추서

윤정구(尹正九, 1882~1953) - 대한제국군 출신, 정미의병. 남원·곡성·구례 일대에서 유격전을 전개하며 지방부호를 상대로 군자금을 모집중 1909년 10월에 일본헌병에게 피체, 전주지방법원에서 징역 15년형 선고. 1982년 건국포장,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 추서.

윤치장(尹致章, 1876~1972)- 을사의병, 경기도 광주에서 일본 기병대와 교전, 군자금 확보 중 체포.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 추서.

이기손(李起巽, 1879~1957) - 을사의병. 의병장 전해산 휘하에서 종군하여 일본군으로부터 노획한 총 500정을 가지고 광산·나주·함평 일대에서 활약. 1908년 2월 광주 광산구 용진산에서 일본군 100여 명을 사살하고 총 100여 정을 노획. 같은해 지도군(현 무안 지도읍)의 일본 해군 파견대를 배를 타고 공격해 일본군 수병 몰살. 1909년 '남한대토벌' 작전 당시 일제 당국에 의해 피체되었으나 호송병력을 제압하고 연해주로 망명. 1977년 건국훈장 독립장 추서.

임병국(任秉國, 1882~1957) - 을사의병, 흔히 안담사리라 불리우던 안규홍 의병장 휘하로 종군하여 좌우익부장(左右翼副將)으로 보성·순천·고흥 장흥 일대에서 활약.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 추서.

임용상(林龍相, 1877~1958) - 을사의병장. 1905년부터 1908년까지 영덕·경주·언양(현 울주)·양산·밀양·창녕 등지에서 일본군과 경찰관서를 습격하여 큰 피해를 입힘. 1908년 6월 일제에 의해 징역 3년을 선고받았으나 10개월 만인 1909년 4월 석방, 1910년 4월에 다시 의병부대를 규합해 청송·의성에서 교전 중 일제에 의해 피체되어 징역 10년 선고. 1977년 건국훈장 독립장 추서

임한주(林翰周, 1871~1954) - 을미의병. 1895년 형 임성주가 홍주(현 홍성)에서 의병을 일으키자 가담하였으나 홍주군수의 배신으로 와해. 국권 피탈 후에는 파리 강화회의에서 조선의 독립을 촉구하는 파리장서운동에 참여하여 일제에 의해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 선고. 이후 후학양성. 1983년 건국포장,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 추서




장광옥(張光玉, 1888~1966) - 정미의병. 의병장 유종완(柳宗完) 휘하로 무주를 중심으로 전라북도와 경상남도 일대에서 활약하다가 일본군에 피체되어 광주지방재판소 전주지부에서 징역 10년형을 선고받고 복역. 1986년 건국포장,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 추서.

전응팔(全應八, 1878~1971) - 을사의병 가담, 흥해(현 포항)·영덕·청송 일대에서 활약. 일제에 의해 대구형무소에서 5년간 복역.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 추서.

전재호(田在浩, 1883~1967) - 을사의병, 1906~1908년까지 신돌석 산하에서 종군. 1909년부터 1916년까지 안동에서 총선봉장으로 의병부대 지휘. 1919년 3.1운동시 안동에서 만세운동을 주동, 이후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독립자금 8만원을 송금한 혐의로 9년 7개월간 함흥형무소에서 복역.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 추서

정진한(鄭鎭漢, 1867~1947) - 을사의병, 의 산남의진에서 소모장으로 활약하며 군사모집 및 군수품 확보 맡음.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 추서




한봉수(韓鳳洙, 1884~1972)
정미의병장. 청주진위대 일등병 출신인 김규환 등 해산 장병 100여명과 함께 '왜적구축대'를 결성하고 유격전과 일진회원 처단 병행. 이후 일제 경찰에 위장자수했다 블러핑이 먹히지 않아 피체되어 소위 '내란수괴' 혐의로 사형선고를 받았으나 일제의 경술국치기념 사면으로 출소. 이후 3.1운동 가담.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 수여.
비고: 손자가 한민구 전 국방장관.



마지막 생존자는 1981년 향년 90세를 일기로 별세하신 유해동 선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