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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이 청전폐지하면서 강화 추세가 팍 꺾인듯??

당시 원납전 징수 및 청전 유통 등은 운현궁에서 관리했는데, 1874년 고종이 친정을 시작하면서 운현궁의 힘을 빼놔야할 필요를 느꼈음

때문에 고종은 대원군기의 증세로 도탄에 빠진 민생을 안정시킨다는 명분으로 청전을 폐지했는데, 이게 여파가 존나 컸던 모양임.

당시 호조 예산이 50~60만 냥이었고 청전 비축분이 자그마치 200만 냥이었는데 이 비축분이 싸그리 날아가며 조선의 재정에는 거대한 빵꾸가 났음

대책이라도 있어야 됐는데 고종은 긴축정책이면 다 된다는 머단한 마인드로 신료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이를 강행했음.

그러자 이중과세가 벌어졌고 각 관청들이 운영난에 빠지면서 고종의 원대한 구상과는 달리 민생은 더욱 악화되었음. 거기다 왕권강화를 위하여 경복궁 재건을 시작하며 돈이 계속 빠져나감.

군대도 예산부족 문제를 피해가지 못함. 호조 예산의 부족분을 채워넣기 위해 진무영, 훈련도감, 금위영 등 군영들의 예산을 차용하기도 했음

ㅅㅂ 존나 골때림


출처
고종 친정 직후 淸錢 관련 정책과 그 특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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