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에주 왕립 철제 대포 주조소에서의 주조법(Het Gietwezen in ’s Rijks Ijzer-Geschutgieterij te Luik)



헤르만 울리히 휘게닌이 1826년에 쓴 네덜란드 책인데 데지마 통해서 들여왔음.

사쓰마는 이걸 바탕으로 고로와 반사로를 짓고 거기서 나오는 쇳물로 대포 만들려 했음

다만 사쓰마의 철제대포는 네덜란드인들이 보기에는 영 조악해 보였다나. 그래서 주로 청동대포를 대신 생산했을 가능성이 높음.

고로는 아예 사철과 목탄으로 굴린 바람에 찐빠가 오지게 터져서 제대로 써먹지도 못한 것 같고.


요 150파운드포는 전시도록에는 철제라고 쓰여있는데, 가고시마대학 연구진들은 이것 역시 청동포였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더라



3호로의 존재 여부와 관련해, 이치키 시로(市来四郎)가 쓴 기록(『나리아키라 공 언행록』)에는 “가에이 5년(1852) 반사로(1호로)를 건설했으나 실패. 안세이 3년(1856)에 2호로가 완성되었으나 대규모 대포의 제작은 불가능, 안세이 4년(1857) 3호로에서 150파운드포 제작이 가능해졌다”라는 서술이 있습니다. 따라서 현재 유구로서 확인되는 반사로 기초가 몇 호로에 해당하는지가 문제였습니다.

150파운드포에 관해서는, 여러 자료에서 그 존재가 언급되어 있습니다. 1858년 가고시마를 방문한 카텐디이크(Kattendieke)의 기록에서도, 쓰키노다이(月之台) 포대에 150파운드 피앙(피앙砲)이 있었으며 매우 우수했다고 기술되어 있어, 존재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당초에는 150파운드포를 제작하려면 2기 4로(較大規模)의 반사로가 필요하다는 견해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발굴조사와 병행해 문헌조사를 심화한 결과, 이치키 시로의 일기에서 실제 건설된 것은 2호로까지이며, 3호로는 계획에 그쳤을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 확인되었습니다. 발굴조사에서도 3호로의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150파운드포 자체도 청동제인지 철제인지는 단정하기 어렵습니다. 다만 아마도 청동제였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즉, 150파운드포의 존재와 3호로의 존재는 반드시 연결되지 않으며, 청동포라면 사쓰마번이 보유한 기존 기술로 제작이 가능하고, 1기 2로 구조의 2호로로도 충분히 제작할 수 있습니다.


라고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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