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협회 기관지인 독립신문이랑 영국 전보국 사이에 커넥션이 있었음.
독립신문이 원래부터 러시아를 나쁘게 본 건 아님. 아관파천 시기까지만 해도 러시아를 문명진보의 파트너라고 생각하기까지 했고 환궁은 시기상조라고 하기도 했더라
그러던 1897년 3월 독립신문은 영국 전보국과 계약을 맺고 해외정보를 받기로 함. 이때부터 독립신문 구.독자들은 해외소식을 바로바로 받아볼 수 있게 됨
근데 문제는 이때가 그레이트 게임 시절인데 아관파천으로 러시아의 세력권이 남하하는 꼴을 공러증 걸린 영일이 곱게 볼 리 없겠지?
물론 러시아라고 해서 완전히 순수한 선의로 한국을 도운 건 아니긴 함. 누가 제국주의자 새끼들 아니랄까봐 절영도 조차니 하면서 얘네도 나름 이권 획득에 눈이 돌아갔긴 했음.
베베르 등 주한러시아공사들도 민폐 끼친 게 없진 않았고 그래서 고종부터가 아관파천을 단행하던 시기만큼 그들을 믿고 있지는 않았긴 함.
근데 그래도 일단 러시아는 영국을 뒷배로 둔 일본만큼 한국 장악을 공공연히 노리지는 않았단 말임? 그리고 영일이 러시아보다 더 큰 당근을 한국에 제시할 의사가 있는 것도 아니었음.
러시아 군사고문단 역시 160명의 규모로 군사훈련+사관학교 설치+군수공장 설치 패키지를 통해 한국군의 현대화에 실제로 도움이 될 수 있었음.
하지만 러시아군이 한국에 영향 끼치는 거에 배알이 뒤틀린 영일이 이를 두고 볼 리 없었고 고문단의 파견을 저지하려고 여론전을 펼치기 시작했음.
그리고 영국전보국을 통해 들어오는 이런 영일의 입장을 독립신문이 필터링 없이 그대로 낼름낼름 받아먹으면서, 원래 러시아를 좋게 봐주던 논조가 1년 사이에 180도 확 바뀜.
문명개화의 파트너였던 러시아는 어느새 문명개화를 방해하는 적이 되었고, 일본의 침략성은 언급이 전혀 없는 대신 영국은 조선독립을 위해 힘쓰는 나라라는 식의 기사들이 올라오기 시작함.
심지어 "해육군을 많이 길러 외국이 침범하는 것을 막을 까닭도 없고, 다만 국중에 해육군이 조금 있어 동학이나 의병 같은 토비나 간정시킬 만하였으면 넉넉"하다는 기사까지 냈음
사실상 영국과 일본이 정보우위를 바탕으로 펼친 공작에 그냥 놀아난 수준임.
이후 러시아 내에서 만주문제에 집중하기로 하고 군사고문단을 물리면서, 대한제국군은 러시아를 통해 체계적으로 성장할 기회를 놓치게 되었음
출처
아관파천 시기(1896~1898) 조선인의 러시아 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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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독립협회는 해외의 이권을 대변하는꼴 되었네 - dc App
ㄹㅇ - dc App
@HK885 독립협회 정보 보면 과도하게 미화된거 같더라 - dc App
@kisear 정떡 존나게 묻은거같기도 함 특히 독립협회를 한국 풀뿌리 민주주의의 맹아라고 여길수록 좀 그런듯 - dc App
@HK885 동학하고 똑같은 이유지 ㅋㅋ
@ㅇㅇ 동학도 내눈엔 걍 태평천국이랑 의화단 한국버전인데 ㅅㅂ... - dc App
@HK885 근데 정확히 같은 이유로 중국에서 태평천국 존나 중시하거든. 중국사에서 제일 논문이 많이 나왔어
@ㅇㅇ 걔넨 왠지 그럴 것 같았음 - dc App
구한말이 존나 비극인 게 한 새끼도 트롤링 안 하는 새끼가 없다는 거. 법정 올리면 원고는 없고 피고만 있어
ㄹㅇ - dc App
뭔가 하려고하는데 그게 트롤짓 - dc 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