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다른 동아시아 국가들처럼 민중들한테 백미가 다른 잡곡밥.보리밥.흑미보다 맛있고 좋은거라는 인식이 퍼져있었음 (난 이해가 안됨. 향이나 맛도 부족해지는데 왜 백미가 더 좋다는건지)


그래서 당시 일본군이 신병 모집할때 꼬드겼던 홍보가 군 입대하면 백미 실컷 먹게해주겠다였음



홍보대로 실제로 일본군에 입대한 병사들한테 하루 3끼 배터지는 양의 백미가 보급됐음 (당시 일본 일반인 하루 쌀 소비량의 1.5배)



그런데 당시 일본군 급양 보급방식이 백미만 보급하고 나머지 반찬이나 부식은 돈으로 줄테니 니들이 알아서 사먹어라 이거였음.


그러나 부식.반찬비를 지급받은 장병들이 이 돈으로 반찬을 사먹는게 아니라 백미를 대충 넘길 소금.미소시루만 최소한으로 사먹고 심지어는 백미만 쳐묵하는 장병들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버림.


즉 부식비를 저축용 + 고향집에 양육비로 부쳐버리고 돈을 아예 안쓰거나 소금.미소시루.간장 등 최소한의 양념만 사서 백미랑 같이 먹는 장병들이 넘쳐나버린거임.






알다시피 쌀을 백미로 도정해버리면 각기병의 결핍 원인이 되는 비타민 B1등 영양소가 엄청나게 깎여나가버림.



결국 압도적인 백미 위주의 식사로 바뀌어버린 일본군 내에선 서양군을 훨씬 뛰어넘는 비율의 각기병 환자가 속출했고 특히 장기항해가 잦았던 일본해군은 각기병으로 치명타를 맞게 되고 사망자가 속출함






이를 본 해군 군의관 타카키 카네히로는 문제의 원인을 찾기 시작했음. 당시에는 비타민 B1의 정체도 알려지기 전이어서 각기병의 원인을 아무도 몰랐음. 


다만 서양군에서 각기병 환자가 적은것을 보고 일본군의 식사 차이가 육류.밀가루 섭취가 결정적이니 여기에 기인하지 않나 추측했음



따라서 처음엔 군 배급주식을 백미에서 서양인들이 먹는 빵으로 바꿀 것을 지시했음.


하지만 빵에 익숙치 않았던 장병들에서 거센 반발이 일어남.


카네히로는 대안책으로 영국군이 역시 군식량으로 많이 먹던 카레에 주목했음. 카레에는 마늘 등 비타민 B1이 풍부한 향신채소들이 많이 들어가고 특히 영국이 인도 오리지날 레시피에서 영국식 커리로 개량하면서 달라진게 밀가루 루를 대량으로 넣는다는 것인데 여기에 집중했던 것임.







여기서 지금의 일본식 카레 라이스가 개량되면서 탄생했고 빵에는 반발했던 일본 병사들이 백미 + 카레 조합에는 환장하면서 쳐묵기 시작했음



그리고 당연히 이전에는 백미만 보급하고 부식은 돈줄테니 니들 알아서해라에서 백미 + 부식보급이 강제되기 시작함



이후에야 일본군에서 각기병 환자는 급속도로 감소하면서 카네히로의 급양 개혁은 완벽하게 성공을 맞이함


그리고 비타민 B1의 존재와 각기병의 원인은 이후 스즈키 우메타로라는 화학자가 1910년에 규명하기에 이름